“세계 표준이 돼라”
“세계 표준이 돼라”
  • 임성희 기자
  • 승인 2020.12.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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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희 기자]

“세계 표준이 돼라”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비파괴검사는 공업제품 내부의 기공이나 균열 등의 결함, 용접부의 내부 결함 등을 제품을 파괴하지 않고 외부에서 검사하는 방법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비파괴검사는 원자력 발전과 그 맥을 같이 해왔다. 특히나 보수적이고 예민한 원자력 발전이기에 첨단의 표준 기술이 더 요구된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비파괴검사 기술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서울대 권동일 교수를 만나봤다.

 

 

사진=임성희 기자
사진=임성희 기자

 

국가지정연구실(NRL)로 시작해 N-LAB까지

1994년 서울대에 부임해 전자제품의 신뢰성을 연구하는 마이크로 신뢰성 연구실(현 소재·부품 신뢰성 연구실)을 시작한 권동일 교수. 당시만 해도 마이크로라는 단어는 현재의 나노만큼 굉장히 뜨거운 단어였다. 재료의 신뢰성 연구(평가연구)는 제조, 공정 연구보다 주목을 받지 못해 연구비를 지원받기가 힘들었지만, 권 교수는 1999년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가지정연구실(NRL)로 선정되며 연구의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부교수 1년 차에 운 좋게도 좋은 사업에 선정돼 5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우리 연구실만의 차별화된 기술을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5년의 밑거름이 지난 20년 넘게 제가 관련 연구를 지속해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권동일 교수가 말하는 차별화된 기술이 바로 재료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비파괴기술인 압입 기술이다. 재료의 표면에 구형 또는 각진 압입자로 하중을 가해 이에 대한 변위 값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로부터 얻은 정량적인 데이터를 통해 비파괴적으로 기계적 물성 및 잔류응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법이다. 특히 구조 건전성이 가장 요구되는 원자력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으며, 대형 구조물, 수송기기, 작은 전자제품까지 멀티스케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권 교수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의 특징이다.

 

이 기술로 2018년 미국 원자력 기술표준으로 인증받았고, 현재는 미국 용접학회 핸드북에 잔류응력 측정 표준 기술로 소개될 정도다. 제일 보수적이고 민감한 미국 원자력 기술표준으로 인증받았다는 것은 세계적인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ASME(미국기계학회)에 저희 기술을 선보인 게 2013년이니까요, 무려 5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이지만 그 기술만큼은 우수하다는 것을 인정받기까지 오래 걸린 것이지요. 이제 고삐를 더 당겨 미국을 넘어 ISO(국제표준화기구) 인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019년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로 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소재부품산업에 비상이 걸렸었다. 이에 정부는 소재부품의 자립화를 화두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그 결과물이 바로 N-LAB인데, 작년 정부 출연연구원부터 시작해 올해 대학까지 선정이 진행됐고, 선정된 5개 대학 중 유일한 서울대 연구실이 바로 권동일 교수의 소재·부품 신뢰성 연구실이다. “정년을 1년 반 앞둔 와중에 국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구사업에 선정돼 정말 영광입니다. 국가에서 소재·부품 자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저도 재료의 범위를 폴리머 소재로 확장하고 요즘 이슈인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측정기법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제가 교수로 활동하면서 초창기 NRL에서 마지막 N-LAB까지 선정되어,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마지막 정년까지 연구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하며 롱런하고 있는 권동일 교수는 많은 제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임성희 기자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하며 롱런하고 있는 권동일 교수는 많은 제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임성희 기자

 

“논문보다는 특허, 특허보다는 표준! 세계 표준이 될 비파괴검사 기술 보유”

권동일 교수는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며 항상 학생들에게 “논문보다는 특허, 특허보다는 표준”을 강조했다. 그만큼 엔지니어로서 현장 중심의 연구를 진행했던 것인데, 그 결과물을 볼 수 있는 것이 그가 2000년 설립한 벤처기업 ㈜프론틱스이다. ㈜프론틱스는 재료 물성 평가 장비 전문기업으로 권 교수가 설립자로서 현재는 그의 제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당연히 권동일 교수의 기술이 녹아있는 회사이다. 미국의 지사를 두고, 미국, 중국, 일본, 체코, 영국 등 주로 원자력 발전을 많이 하는 나라로 수출하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이밖에도 2010년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공동연구기반구축사업에 선정돼 서울대 복합환경제어 멀티스케일 시험평가센터를 설립했다. 기업들의 용역을 받아 시험평가를 진행했으며 지원사업이 끝난 현재도, 센터는 자립성을 갖고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우리 센터를 찾는 수요가 계속 있어서, 지원이 끝났음에도 수익창출이 가능했습니다. 그 덕에 현재도 센터를 운영하며 기업들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2013년에는 사단법인 법안전융합연구소를 설립해 권동일 교수가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사단법인은 다변화된 재난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는 권 교수의 판단으로 설립됐다. ㈜프론틱스, 서울대 복합환경제어 멀티스케일 시험평가센터, 사단법인 법안전융합연구소는 권동일 교수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얼마 전 권동일 교수는 대한민국 학술원상(자연과학 응용부문)을 받으며 학술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논문을 중시하는 학술원이지만,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저희 기술을 높게 평가해주신 것 같습니다. ‘표준’의 가치는 대단한 것입니다. 즉, 그 분야를 리드할 수 있다는 뜻이죠. 우리나라가 관련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저같이 굉장히 공학적인 사람이 선택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권동일 교수를 거쳐 간 제자들이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 바로 “너의 생각의 방법을 만들라”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약점을 강점화 해 남들과 차별화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로서 스스로 체득한 것이기에 제자들을 향한 그의 바람은 더 간절해보였다. 사진=임성희 기자
1994년부터 현재까지 권동일 교수를 거쳐 간 제자들이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 바로 “너의 생각의 방법을 만들라”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약점을 강점화 해 남들과 차별화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로서 스스로 체득한 것이기에 제자들을 향한 그의 바람은 더 간절해보였다. 사진=임성희 기자

 

“너의 생각의 방법을 만들라”

1994년부터 현재까지 권동일 교수를 거쳐 간 제자들이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었을 말이 바로 “너의 생각의 방법을 만들라”이다. “약점이 발견되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약점을 강점으로 바꿀 수 있다면 새로운 방법론을 창출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강점화하길 바랍니다. 고비를 넘기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입니다. 이것이 저의 연구철학이자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입니다” 덧붙여 그는 정부의 지원과 관심 속에서 자신이 관심 있는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었다며 “관심을 갖게 되면 이득이 생기고 이 이득은 곧 풍요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에 풍요로움이 생기면 항상 나누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제가 몸담았던 모든 기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 연구의 풍요로움을 제 마지막 대학원생들 그리고 다양한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제 제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권동일 교수는 인터뷰하며 “운이 좋았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미 준비됐기에 그는 그 행운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곳에 한눈팔지 않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매진하며 롱런하고 있는 권동일 교수는 많은 제자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일 년 반을 앞둔 교수 퇴임은 그에게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비파괴검사 기술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릴 그의 행보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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