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이상훈 MBC스포츠 플러스 야구 해설위원
[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이상훈 MBC스포츠 플러스 야구 해설위원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0.10.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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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마운드 위의 영원한 야생마, 그가 전하는 18.44m의 이야기
 
 
©MBC 스포츠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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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잡은 야생마, 중계석에서 바라본 야구 이야기
우리가 스포츠에 울고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치열한 승부 속에 승자와 패자가 나뉘며 그 속에서 영화보다 더 짜릿한 감동과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때론 환호하고 때론 좌절하게 만드는 스포츠를 우리의 인생과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기자 역시 어린 시절 야구를 했었던 사람이자 지금도 그 누구보다 야구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적극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우리 내 인생과 꼭 닮은 야구, 그래서인지 유독 야구계에서는 유명 선수들의 수많은 명언이 전설처럼 전해지며 팬들에게 오랜 시간 회자 된다. 특히 요기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톰 글래빈의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크리스티 매튜슨의 ‘승리하면 조금 배우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이승엽의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임창용의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이만수의 ‘Never Ever Give Up’ 등 국내외 야구 레전드들의 이야기는 야구팬을 떠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현역 시절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남다른 카리스마와 강력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KBO의 레전드이자 지금은 MBC스포츠 플러스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야상마’ 이상훈 해설위원. 그의 명언 역시 야구팬 혹은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야구 명언을 꼽을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가 2002년 한국시리즈 당시 남겼다는 ‘나갈 수 있냐고 묻지 말고 나가라고 해주십시오. 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이 왜 아직도 야팬 사이에서는 울림으로 다가올까? 당시 LG트윈스 소속이었던 그는 연속된 출전으로 지친 상태였지만 야구장을 찾은 팬과 승리가 간절한 소속팀을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출전 준비를 마친 그의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상훈 해설위원 스스로도 KBO에서의 누적 스탯은 내세울 것이 없다지만 이는 LG트윈스를 비롯한 국내 야구팬들이 그를 KBO 레전드로 주저 없이 꼽는 이유 중 하나다. 홈플레이트와 마운드 사이인 18.44m의 거리에서 그가 던져온 수많은 공이 이제는 전설로 기억되며, 마운드 위에서 강력한 카리스마 뽐낸 야생마는 이제 슈트를 차려입고 마이크를 잡으며 새로운 야구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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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별다른 건 없다. 작년부터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 2년째 야구 해설을 맡고 있다. 방송사와 계약된 상태이니 해설 스케줄이 메인이고 이외에 시간이 맞으면 라디오나 강연 등의 출연 요청에 응하고 있다.”
 
선수 시절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마이크를 잡은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저 역시도 야구를 하며 해설을 하리라 생각한 적이 없다. 2017년 지도자로서 LG와의 계약이 끝난 후 MBC 스포츠 플러스에서 방송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이후 내가 해설을 잘 할 수 있겠냐는 고민도 많았지만, 그보다 방송국에서 누군가를 섭외할 땐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렇다면 나도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방송국 관계자를 3번 정도 만난 후 계약했다. 선수와 지도자로서는 야구장에서 나의 역할은 명확하다. 그러나 방송은 처음이니 유니폼이 아닌 정장을 입고 선후배 동료들을 만나는 것도 어색했으며 모든 것이 낯설었다. 계약했음에도 고민이 많았던 이유이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시간이 교육도 받고 리허설도 진행하며 점차 익숙해졌고 이제는 적응을 마친 것은 물론 해설의 매력도 느끼고 있다. 2년째 해설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지금도 적응하지 못하고 하기 싫었다면 2년째 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슈트를 입고 마이크를 잡으니 떨리진 않았나
“야구 이외에도 밴드 생활을 오래 했기에 그라운드 이외의 무대가 생소하지 않았다. 물론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익숙하지는 않다. 시청자들은 어떻게 봤을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떨리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 부분이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그 역시도 팬들의 선택이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라운드가 아닌 중계석에서 보는 야구는 어떤가
“높은 중계석에서 보면 야구가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와 벤치에서 보는 야구가 더 정확하다. 물론 중계를 하면 상황 속에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야구를 본다. 그러나 해설자는 상대를 이기려고 야구를 보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고 어떻게 경기를 풀어가며 상대를 이기기 위한 심리적인 분석과 노력 등이 더 정확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해설자는 깊이 야구를 파고들어도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다. 만약 팬의 입장으로 혼잣말을 하며 야구를 본다면 모를까 해설자의 입장보다는 그라운드 위에서 바라본 야구가 맞다고 본다.”
 
최근 스포테이너가 대세다. 예능이나 방송 출연도 생각하는지
“해설을 시작할 때도 이게 맞는 옷일까 걱정했다. 편안한 옷을 입어야 자신감도 생기듯 어느새 해설도 내게 맞는 옷이며 지금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하고 싶은 일이 됐다. 방송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다만 무조건 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국과 계약된 상태이기에 해설이 무조건 1순위이다. 따라서 방송국과 협의도 해야 하고 개인적으로도 해당 콘텐츠가 타당성이 있는지, 스케줄이 맞는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출연할 마음은 있다.”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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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마의 해외 도전과 끝나지 않은 야구 이야기
‘최초’라는 타이틀은 어느 분야에서나 낙인이 될 수도 있지만, 평생 기록될 영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다. 더욱이 팬들의 사랑을 받는 프로 스포츠 선수라면 최고의 기록 못지않게 최초의 기록도 역시 남다른 가치가 있다. 이상훈 해설위원은 90년대 중반 LG트윈스의 신바람 야구의 중심이자 1995년 한국프로야구 최초 선발 20승을 기록한 투수가 됐다. 그의 최초 기록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일본 프로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를 모두 밟으며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야구 모두를 경험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이자 KBO 출신의 최초의 메이저리거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야생마 이상훈의 일본과 미국 도전기, 그리고 미처 전하지 못한 그의 야구 이야기가 궁금해 질문을 이어갔다.
 
1994년 프로야구 첫 우승 당시의 기분이 궁금하다
“당연히 좋았다. 그러나 5년 정도 지난 후 우승했다면 기쁨이 남다르지 않았을까? 1994년 우승 당시는 프로 2년 차에 불과했기 때문에 우승을 향한 간절함이 그리 크지 않았다. 더욱이 당시 LG트윈스는 이른바 신바람 야구로 막강한 전력을 뽐냈기에 3연패 이상의 경기도 거의 없었다. 이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한국시리즈 역시 4전 4승을 우승하며 싱겁게 우승을 차지했다. 조금 더 간절하고 치열하게 우승했다면 더 큰 의미로 남았을 것 같다.”
 
당시 실력뿐 아니라 삼손을 연상케 하는 파격적 헤어스타일이 화제였다
“시대를 앞섰다고 평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당시 긴 머리는 나를 어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냥 자르지 않고 놔둔 건데 이상훈의 캐릭터가 되었다. 머리를 기르는 건 자유지만 머리를 기르면서 야구를 못 하면 안된다. 정상적인 헤어스타일보다 머리를 기르고 야구를 못 하면 몇 배의 비난을 받게 된다. 지금도 머리를 기르는 선수가 많은데 자신이 책임질 수 있으면 상관없다.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책임이 아니라 내 모습에 책임져야 한다.”
 
처음 섰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는 어땠나
“당시 해외 진출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선동열 감독님께서 일본 진출이 첫 사례이며 좋은 길을 닦아 놓으셨기에 저 역시도 일본 진출을 할 수 있었고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지만 30살의 늦은 나이였기에 몇 승을 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는 없었다. 그들과 함께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클 뿐이었다.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지금 생각해도 좌충우돌이었다. 메이저리그 콜업 통보를 받고 시카고에서 홈구장인 보스턴까지 비행기와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경기는 이미 3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루에 비행기를 두 번 탔기에 정신도 몽롱했는데 샤워조차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다. 그러한 상태로 불펜 대기 중 등판 지시가 떨어졌다. 그렇게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처음 올랐고 홈런까지 허용했다. 그날 경기가 시리즈 마지막 경기였기에 다시 시카고로 이동했고 다시 마이너리그 통보를 받으며 또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러한 일의 반복 속에 3박 4일간 7번의 비행기를 탔다. 이후 9월 확장 엔트리 때 다시 메이저리그 무대에 섰다.”
 
 
©MBC 스포츠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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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자리 잡지 못한 부분이 아쉽지는 않았을까
“앞서서도 이야기했지만,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는 것이 목표였지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어떤 부분이 부족했냐는 질문도 많이 하는데 부족한 부분보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출신 1호 메이저리거로서의 길을 닦았다는데 만족한다. 비록 미국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단기 연수가 아닌 선수로서 활동했기에 비시즌에는 개인 생활도 즐기고 미국 문화도 접하며 개인적으로도 많이 보고 느끼며 성장한 시기였다.”
 
지도자로서 다시 현장에 복귀하고픈 마음은 있는가
“지금은 해설이 내 일인데 마음속으로 지도자 복귀를 꿈꾸는 것은 내가 살아온 방향성과 맞지 않는다. 그래도 지도자 오퍼가 올 수 있으니 준비는 해야 되지 않겠냐고 물으면 오히려 되묻고 싶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공부를 해야 하나? 지금 이 순간 내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삶 자체가 인생 공부이지 않냐. 해외 연수를 다녀온다고 팀을 우승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자신이 느끼고 배운 것을 파악할 수 있다면 지도자도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가 생각하는 야구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상훈 해설위원은 ‘야구는 야구다’라며 복잡하게 따지고 후벼파기보다 야구 자체를 야구로 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한다. 지도자로서도 투수는 공을 던지게 타자는 공을 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단순하고 바보 같은 대답이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야구는 결과로 말하는 스포츠며 있는 그대로 편안히 바라볼 때 더 순수하고 청결한 야구가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친 마운드의 영원한 야생마. 때론 부드럽게 때론 날 선 그의 평범하지 않은 야구 이야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진심이자 울림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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