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위험한 ‘낙인’ 찍으며 심각한 폐해 낳아
[이슈메이커] 위험한 ‘낙인’ 찍으며 심각한 폐해 낳아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09.24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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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위험한 ‘낙인’ 찍으며 심각한 폐해 낳아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인 ‘디지털교도소’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사법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성범죄자와 살인범 등의 신상을 공개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왔지만, 엉뚱한 피해자가 생겨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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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범죄자 신상 공개 인한 피해자 속출
디지털교도소에는 그동안 100명이 넘는 개인 신상이 올라왔다. 사진은 물론 생년월일과 출신학교,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까지 공개한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흉악범들의 재판 결과에 분노한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디지털교도소에는 방문자가 쇄도했다. 운영자는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고,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 운영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디지털교도소의 신상 공개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하자 여론이 반전되기 시작했다. 밀양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004년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명이인을 지적한 것이다. 뒤늦게 정보를 삭제했지만 피해자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게시되면서 엉뚱하게 네티즌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채정호 가톨릭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지난 6월 허위로 조작된 범죄 내용이 개인정보와 함께 그대로 게시돼 피해를 입었다. 휴대전화로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받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그를 처벌해 달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채 교수는 경찰 수사를 통해 디지털교도소에 게시된 것과 같은 내용은 없었음이 나타나 결백이 입증되고 억울함도 풀게 됐지만 이로 인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당해야 했다. 최근에는 급기야 디지털교도소에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적 제재 논란으로 비판 직면
증거와 증인도 없는 ‘사적 응징’에 대한 비판이 불거지자 경찰은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미 지난 7월부터 “개인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며 수사에 나섰다가 최근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속도를 내고 있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아동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 ‘개인정보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된 상태다. 아동청소년보호법에 따르면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는 여성가족부의 ‘성범죄 e알림’ 사이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지방경찰청은 운영자 IP와 서버 접속 기록 등을 확인해 일부 운영자의 소재지를 확인했다. 현재 운영진 중 1명을 특정해 가장 높은 단계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수배인 적색수배령이 내려져 있다.
 
경찰이 수사 이후 사이트는 접속이 차단되었지만 최근 ‘2기 운영자’를 자처하는 이가 등장해 다시 사이트를 열었다. 그는 공지문에서 “디지털 교도소가 현재 사적 제재 논란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고 사이트 폐쇄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사라지기엔 너무나 아까운 웹사이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2기 운영자 역시 범죄 행위에 개입했다고 판단, 내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회의를 열고 사이트 차단을 하지 않는 대신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7개 페이지와 성범죄자신상정보 10개 페이지에 대해 폐쇄를 결정했다.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은 현행 사법 체제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류호정 의원실
디지털교도소의 등장은 현행 사법 체제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류호정 의원실

 

솜방망이 처벌로 인한 ‘사법 불신’ 해소 방안도 절실
디지털교도소는 충분한 검증 없는 폭로로 인해 한계를 명확히 드러냈다. 무고한 사람을 범죄자로 둔갑시켜 응징의 대상으로 삼으며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또한 채정호 교수의 경우와 같이 누군가 원한을 품고 허위 제보를 하는 등 악용될 소지도 많았다. ‘법치주의’가 사라지고 사적 제재의 위험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디지털교도소는 사적 처벌을 하는 것이고, 내용 자체가 명예훼손이다”며 “문명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디지털교도소’의 등장과 일부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사법부의 불신이 초래한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사법 체제에서는 국민의 분노를 유발하는 악성 범죄자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불가능하다는 무기력이 깔려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솜방망이’ 제재로 인한 사법부 불신이 해결되지 않는 한 또 다른 응징과 낙인의 방법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 우려한다.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디지털교도소는 사법기관에 대한 일각의 불신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현상”이라며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복수하는 행위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국가와 사법부가 사적 응징에 나서는 세태에 대해 각성하고 사법부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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