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반복되는 비극, 패러다임 전환 절실
[이슈메이커] 반복되는 비극, 패러다임 전환 절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08.19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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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반복되는 비극, 패러다임 전환 절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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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전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 선수가 팀 내에서 자행된 상습적인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비극적인 선택 이전 최 선수가 끊임없이 관계당국에 피해사실을 호소했음에도 외면당한 사실이 밝혀지며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관행’과 선수 관리 빌미로 반복된 체육계 폭력
사망 이후 공개된 최숙현 선수의 훈련일지와 녹취록은 ‘갑질’과 폭력 등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가해자들은 슬리퍼로 뺨을 때리는가 하면 갈비뼈에 실금이 갈 정도로 구타를 자행했고, 체중조절을 핑계로 사흘간 굶으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탄산음료를 주문했다는 이유로 빵을 먹이는 ‘음식 고문’도 했다. 선수 관리와 지도를 빌미로 한 폭력이 아무런 제지 없이 자행됐다.
 
참다못한 최 선수는 지난 2월부터 소속팀이던 경주시청의 감독과 팀닥터를 비롯해 일부 선수들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고, 상급기관인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와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 기관을 통해 피해사실을 신고하며 법적 절차를 진행했다. 하지만 신고를 접수한 대한체육회는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관했고, 수사당국은 훈련 일정과 가해자 부인 정황 등을 들며 시간을 허비했다.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가 외면당한 셈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수백 번씩 맴돈다”는 절박한 심경을 일기에 남기기도 했던 최 선수는 끝내 6월26일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관계기관이 신고 즉시 신속한 조사를 통해 엄정한 조치를 내렸다면 참담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더 컸다.
 
체육계에서 ‘관행’이란 이름 아래 폭력이 자행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8년 펜싱 국가대표팀 전지훈련 중 일어난 코치의 폭행 사건과 2009년 배구 국가대표 박철우 선수가 태릉선수촌에서 벌어진 폭행을 폭로한 사건, 그리고 지난해 1월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코치에게 상습적인 폭력 및 성폭행을 당한 일이 밝혀지며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또한 9월에는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최인철 감독은 과거 폭행 사실이 드러나 자진 사퇴하는 일도 있었다.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는 재발 방지를 외쳐왔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실제 지난해 빙상계 폭력·성폭력 사건 이후에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 구조 혁신을 도모해 1년간 7차례에 걸쳐 관련 권고안을 발표하고 각 부처의 권고 이행 계획과 이행 상황을 점검한 바 있다.
 
 
정부와 체육계는 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마다 재발 방지를 외쳐왔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정부와 체육계는 폭력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마다 재발 방지를 외쳐왔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침묵의 카르텔’ 무너뜨려야 근본적 해결 가능
그럼에도 충격적인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로는 ‘침묵의 카르텔’이 원인으로 꼽힌다. 일부 체육 단체들은 선수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게 무마시키는 데 급급하고, 선수 보호 기관이라는 명분으로 감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피해 사실이 밝혀져도 단순히 가해자로 지목된 선수나 코치진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경우도 많다보니 피해자들은 폭로에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실업팀 선수 인권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살펴보면 설문조사에 응답한 1,251명 중 현재 소속팀 내에 신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26.1%(326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326건 중 대처방안에 대해 응답자의 절반 이상(67%)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움을 요청해 폭력행위가 중단됐다는 응답은 1명에 불과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거나(40.0%), 상담으로 종결(40.0%)된 사례가 훨씬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황대호 경기도의원은 “안타까운 사건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스템에 있다”면서 “지도자든 협회 직원이든 징계를 받아도 징계 이력이 공유되지 않는다. (잘못을 해도) 학교와 협회, 실업 프로 팀으로 재취업에 제약이 없다. 이런 구조에서 어찌 폭력과 비리가 근절되겠느냐”고 꼬집었다.
 
 
8월5일 체육인 인권보호 및 스포츠비리 근절을 위한 전담기구 스포츠윤리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8월5일 체육인 인권보호 및 스포츠비리 근절을 위한 전담기구 스포츠윤리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는 재차 불거진 스포츠 폭력 사건을 추방하기 위해 특별 조치를 마련했다. 가해자를 엄중히 징계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를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인권상담사를 통한 심리 상담치료 지원 및 법률상담 제공 등 제도적 지원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국회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스포츠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신설된 스포츠인권센터의 조사권을 대폭 강화시켰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회에서 열린 고 최숙현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근본적으로 폭력이 만연한 것은 성적 지상주의와 온정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 뒤 “체육계와 분리된 스포츠윤리센터 등을 통해 스포츠 혁신의 기회로 삼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이 실제 병폐를 없앨 수 있는 초석이 되려면 계획의 실질적 이행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안착되어야 지도자들에겐 경각심을, 선수들에겐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랑의 매’와 같은 경기력 향상을 빙자한 어떤 폭력도 용납되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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