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Special Interview] 마해영 탑베이스볼클럽 감독
[이슈메이커_ Special Interview] 마해영 탑베이스볼클럽 감독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0.08.14 15: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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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꿈꾸는 한국야구의 레전드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명문 구단 삼성라이온즈의 시작, 2002년 한국시리즈
2002년 그해 여름은 한일월드컵의 4강 신화의 뜨거운 열정과 환희가 가득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여운은 여전히 가시질 않았고 당시 모두가 만나면 축구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야구팬 그중에서도 삼성라이온즈 팬이라면 2002년을 월드컵이 아닌 새로운 가을의 전설로 기억할 것이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원년부터 지금까지 팀 명칭을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은 삼성라이온즈다. 삼성라이온즈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이만수, 김시진, 류중일, 양준혁, 이승엽, 오승환 등을 배출하며 자타공인 KBO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한국야구사와 함께했다. 더욱이 2000년대 중반에는 투수와 타자 모두 막강한 전력을 뽐내며 5년 연속 리그 우승과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며 삼성 왕조를 구축했다. 그러나 전통의 명가 삼성라이온즈도 2002년 이전까지 한국시리즈 우승은 거둔 적이 없었고 이는 명문 구단의 이미지에 오점으로 기억됐다.
 
삼성라이온즈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결연한 목표로 2002년 한국시리즈가 펼쳐졌다. 삼성라이온즈와 LG트윈스는 당시 치열한 승부를 펼쳤고 6차전에서 마침내 우승팀이 가려졌다. 6차전 당시 9회까지 패색이 짙어 홈팀인 삼성라이온즈 팬들조차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새로운 가을의 전설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당대 최고의 홈런타자 이승엽은 주자를 두 명 둔 상황에서 당시 최고의 마무리 투수 이상훈을 상대한다. 이날 타석에 들어서기 전까지 부진한 타격 성적을 거뒀던 이승엽은 거짓말처럼 승부의 균형을 맞추는 3점 홈런을 기록한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마포’ 마해영, 그는 바뀐 투수 최원호를 공략해 끝내기 홈런을 기록했으며 이 홈런으로 삼성라이온즈는 감격스러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이뤘고 유니폼에 첫 번째 별을 달 수 있었다.
 
명문구단 삼성라이온즈의 시작을 알렸던 한국 프로야구의 레전드이자 홈런타자 ‘마포’ 마해영. 그는 롯데자이언츠에 입단 후 삼성라이온즈를 팀을 옮겼고 FA로 기아타이거즈 이적 후 LG트윈스를 거쳐 은퇴 직전 고향 팀인 롯데자이언츠로 돌아왔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과 독립구단을 이끌며 제2의 야구 인생을 살아온 그게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최근 인천 지역에 새로이 문을 연 탑베이스볼클럽의 감독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갈 레전드의 거침없는 야구 스토리를 함께해 보았다.
 
관중석에서 2002년 우승 당시 지켜본 사람으로서 오늘 인터뷰의 감회가 새롭다
“저 역시도 당시 관중석에 있었던 팬을 이렇게 다시 만나니 기분이 묘하다. 인터뷰에 앞서 17년 전 팬과 선수로 찍었던 사진을 보여줬는데 기자와 감독으로 다시 만나니 색다른 경험이다. 시간이 많은 흘렀다는 게 느껴진다.”
 
야구 해설과 독립야구단을 거쳐 올해부터 탑베이스볼클럽 감독을 맡았다
“탑베이스볼클럽 대표님과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다. 이곳 대표님은 단순히 스크린 야구장의 개념을 뛰어넘어 직접 공은 던지고 받고 타격할 수 있는 야구 연습장도 만들고 레슨도 받으며 물리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신개념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야구 산업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모델이기에 이곳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친다면 보람될 것 같다는 생각에 새로운 도전을 나섰다. 최근 탑베이스볼클럽에 재활시설까지 들어섰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게임의 베타버전처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야구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가능하며 앞으로 탑베이스볼클럽과 함께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현장으로의 복귀는 고려하지 않았나
”솔직히 말하면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 은퇴 후단 한 번도 프로팀 지도자 제의를 받지 못했다.“
 
프로야구 레전드에게 지도자 제의가 가지 않았다는 점이 의문이다
”은퇴 후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도자로 현장에 돌아가고 싶어 주변 야구인에게 부탁도 많이 했다. 실전은 물론 이론까지 준비된 지도자가 되고자 석·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프로팀에서의 제의는 없었다. 여전히 프로 지도자로서 야구로 받은 사랑 야구로 돌려주고자 하는 바람이 크다. 지금도 물론 불러만 준다면 언제든 갈 준비가 되어있다.“
 
 
최근 탑베이스볼클럽에 재활시설까지 들어서며 야구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가능해졌다. ©탑베이스볼클럽
최근 탑베이스볼클럽에 재활시설까지 들어서며 야구의 모든 것이 이곳에서 가능해졌다. ©탑베이스볼클럽

 

현역 시절 KBO 최고의 타자로 활약했는데 매 경기 어떤 자세로 임했나
”사실 학창 시절까지는 특별히 야구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성장통도 있고 부상도 많았지만 잘 버티며 그 시기를 넘겼다. 프로 입단 후 당시 롯데자이언츠 선배가 프로 의식을 심어줬다. 그 선배가 홈런 타자 혹은 슈퍼스타는 아니었지만, 항상 자기 관리에 집중하고 팬들에게 사인도 잘해줬다. 선배의 프로 의식을 배우고자 했고 이후 야구장에 가면 항상 마해영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팬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위한 몸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며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다면 선수로서 본인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일까
”레전드로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아 감사하다. 그러나 사실 누적 기록을 살펴보면 그리 뛰어나지는 않다. 대학 졸업 후 프로에 입단하고 군대까지 다녀왔기에 고졸 출신의 선수들과 비교하면 누적 스탯은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제가 프로 선수로 활약하며 남긴 임팩트 있는 경기들이 많았기에 더 많은 팬이 잘했다고 기억해주는 것 같다. 현역 시절 찬스에 강한 이유는 성실함이지 않을까? 항상 준비되어 있기에 극적인 순간을 여러 차례 만들 수 있었다.“
 
 
마해영 감독은 탑베이스볼클럽과 함께 새로운 인생 도전을 펼치고자 한다. ©탑베이스볼클럽
마해영 감독은 탑베이스볼클럽과 함께 새로운 인생 도전을 펼치고자 한다. ©탑베이스볼클럽

 

야구는 곧 마해영이다
앞서도 잠깐 언급됐지만, 삼성라이온즈 팬들에게 2002년 한국시리즈는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자 한국 프로야구사에 기록될만한 명승부였다. 기자 역시도 당시 수능을 마치고 친구들과 현장에서 그 경기를 지켜봤기에 마해영 감독과의 인터뷰가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기적에 비견되는 당시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질문을 이어갔다.
 
2002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기분이 어땠나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사실 경기 전날 지금은 돌아가신 임수혁 선배가 꿈에 나왔다. 당시 선배는 오랫동안 의식 없이 병상에 누워있을 때였다. 그런 선배가 건강한 모습으로 유니폼을 입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꿈에 나타나니 기분도 컨디션도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될수록 경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9회 말까지 팀은 지고 있었다. 앞선 타석에서 승엽이가 거짓말 같은 동점 홈런을 친 이후 투수는 교체되고 타석에 들어섰다. 당시 최원호 선수의 공을 받아쳤는데 맞는 순간 홈런임을 직감했다. 베이스를 돌며 그냥 멍했다. 심지어 끝내기 홈런인데 혹시 8회가 어쩌지라는 생각에 몇 번이나 전광판을 확인했다. 당시에 경기가 질 것 같은 상황이라 팬들이 대부분 빠른 퇴장을 위해 1루와 3루 출구 쪽에 모여있었다. 3루 베이스를 통과할 때쯤 관중석과 더그아웃을 바라보니 동료들도 팬들도 울며 기뻐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제 인생에 다시 경험할 수 없을 잊지 못할 경기이자 순간이었다.“
 
2002년 우승 이외의 본인의 커리어에서 BEST 3를 꼽자면
”아마도 첫 번째는 프로 첫 안타와 타점이지 않을까? 첫 안타를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뽑아냈으며 첫 타점은 KT 이강철 감독에게 기록했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2명에게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니 자신감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순탄한 프로 생활을 이어갔다. 다음으로는 1995년 롯데자이언츠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기록한 시즌이다.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였지만 아쉽게 패하며 상대 팀의 우승 헹가래 장면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더 노력해서 꼭 우승을 차지하리라 마음을 다졌다. 세 번째 역시 롯데자이언츠 소속으로 맞이한 1999년이다. 당시 타율과 최다 안타 1위를 기록하며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며 개인 성적만으로는 최고의 시즌이었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 당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었나
”FA 계약 후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둬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많다. 은퇴 당시 더 뛰고 싶은 마음은 강했다. 그럼에도 다행히 최동원 선배의 뒤를 이어 지금의 선수협을 만드는 데 힘을 쏟았고 고향 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할 수 있었기에 그리 나쁘지 않은 선수 생활의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제가 프로야구선수라는 타이틀로 오랜 시간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팬들의 응원 덕분이다. 저 역시도 이들에게 가식 없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중요한 순간 안타나 홈런을 기록할 수 있는 믿음을 전하고자 했다. 지금도 팬들이 열심히 했던 선수, 찬스에 강한 선수라고 기억해줄 때가 좋다.“
 
최근 프로의식이 결여된 선수들의 사건 사고가 이어진다
”지금 프로야구는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스포츠다. 사회적 포지션과 영향력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제가 데뷔한 1995년 해도 프로야구선수는 전문직 종사자보다도 연봉이 적었다. 지금은 반대다. 야구만 잘하면 최고의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지만, 반대의 경우 국민적 비난의 중심이 된다. 따라서 구단과 KBO는 선수들의 도덕성 함양을 위한 소양 교육에 더 집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여주기식의 교육과 프로그램이 아닌 신인 때부터 은퇴할 때까지 가슴에 새길 수 있는 실질적 소양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해영에게 야구란
”예전에는 이런 질문에 ‘야구는 가족이며 내 인생의 전부’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많이 했다. 지금도 크게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야구만을 생각하며 살아왔고 앞으로도 야구만을 바라보며 살아갈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병상에 누워서도 야구 중계를 보고 야구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어쩌면 야구는 그냥 나 자신이지 않을까?“
 
인터뷰를 마치며 마해영 감독은 최근 코로나 사태로 힘들어하는 팬들과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마 감독은 ”얼마 전 뒤늦게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 양준일 씨를 봤어요. 사실 저도 양준일 씨가 활동 당시 이상한 가수라고 생각했기에 그분이 나와서 힘들었던 시간 상처받은 순간을 이야기하니 미안한 마음에 마음이 아팠고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양준일 씨도 저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도 인생의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그 자리를 지키고 버티며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빛을 보지 않겠냐고 생각합니다. 비록 일련의 코로나 사태가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잘 버티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면 앞으로 희망찬 미래가 다가오리라 확신합니다”라는 말을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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