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의 고행과 노동으로 잉태한 ‘생명예술’
구도의 고행과 노동으로 잉태한 ‘생명예술’
  • 박종진 선임기자
  • 승인 2020.07.1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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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종진 선임기자]

구도의 고행과 노동으로 잉태한 ‘생명예술’

 

몸과 혼으로 빚어낸 ‘만물의 본질’… ‘결’의 미학

독창적 생명예술에 미국, 프랑스, 일본 등 구애 나서

 

 

무제, 100x10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년
무제, 100x10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년

 

봄을 맞기엔 아직 쌀쌀한 기운이 가득한 2월의 뉴욕, 화운당(花雲堂) 박종용(67) 화백은 14시간의 비행 끝에 새로운 예술세계와 마주할 도시에 도착했다.

 

뉴욕은 120여개의 뮤지엄과 1000여개의 화랑,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사, 수많은 미술관련 재단 및 단체, 그리고 아트인 아메리카를 포함 100여종의 미술관련 출판 및 잡지사 등이 몰려 있는 세계현대미술의 중심지다.

 

박 화백의 이번 뉴욕 방문은 세번째로 미국의 세계적 화랑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화랑의 한국 담당 조셉 밥티스타 부사장은 박 화백과 인사한 후 "한국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당신(박종용)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외람되지만 당신의 역량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자료와 재료를 준비했는데 특히 관심이 많은 불화 중 고려 불화(수월관음도)를 제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박 화백은 인사동시절(1969〜1979) 불화 창작에 심혈을 기울인 바 있고, 작년 3월 KBS춘천총국 전시 후 박종용 문화산책 드라마제작에 필요하다고 해 1시간 내 작품 3점을 완성시킨 적이 있다.

 

 

무제, 162x13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년
무제, 162x13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년

 

화랑은 박 화백 초청에 앞서 그에 대한 필모그래피와 작품세계를 파악하고 있었고,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박 화백은 예상밖 요청에 난감했지만 이를 수용하고 제작에 들어갔다. 3시간 이상 걸려 밑그림을 완성시켰고, 옷칠을 입힌 후 다음날 금분을 입히고 채색(단청 등)을 작품을 완성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화랑 관계자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연신 감탄하며 만족해했다.

 

완성된 작품을 본 조셉 부사장은 “당신은 극동의 보석”이라고 칭송하며, "내년 12월 전시예정이니 잘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전시는 추상미술인 무제(결)를 중심으로면서 100호 이상을 최소 10여점 이상 창작해 달라고 했다. 또한 “우리 화랑은 초청하는 작가들의 일생과 작품들을 기록하고 있다. 금년에 관계자들이 한국으로 건너가 작업과정을 촬영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할 것이다”고 전했다.

 

박 화백은 미국에 머무는 동안 브루클린 미술관을 비롯한 유수의 갤러리 관장, 맨해튼에 거주하는 각국 유명예술인, 평론가, 컬렉터 등과 교분을 쌓았다. 박 화백은 귀국 전날 프랑스 유명화랑 관계자로부터 프랑스에서 전시하고 싶으니 3월 중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전 세계가 지속된 경제불황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팬데믹으로 예술계마저 위축된 상황에서 박 화백이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과 전통의 프랑스에서 전시를, 그것도 세계적 명성을 지닌 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 것은 작가 자신은 물론, 미술계에도 신선한 낭보가 아닐 수 없다.

 

 

무제, 130x16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9
무제, 130x160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9

 

박 화백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새로운 예술세계를 열어가는 데는 지난한 삶과 함께한 예술혼으로 다져진 60년 가까운 화업(畵業)이 바탕을 이룬다.

 

박 화백은 서예가, 화가이며 부산 송도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형 종헌(동양화 작가)과 함께 8살부터 그림을 그렸다.

 

12살 무렵 화투 그림 등으로 ‘그림 신동’이란 소리를 들은 박 화백은 대화가(大畵家)가 될 것을 결심하고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해 양정고에 다니면서 조계사 건너편 고려민예사 전속작가가 돼 창작에 매진했다.

 

박 화백은 조계사의 단청을 보고 본격적으로 불화를 시작했고, 삼각지에서 미군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또한 시간이 날 때 마다 청계천 만물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각종 그림과 골동들을 관찰해 자신의 그림으로 체화하면서 스스로를 단련시켜나갔다.

 

박 화백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얘기는 당시 한국화단에 은연중 퍼졌고, 풍곡(豊谷) 성재휴, 남농(南農) 허건, 내고(乃古)박생광,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 등 당대의 거장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호랑이 그림을 본 성재휴 화백은 “표효하는 기상이 참으로 대단하다. 좀 더 노력하면 경지에 이를 것 같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이렇듯 화가를 꿈꾸던 ‘고향시절’(1953〜1969)과 본격 활동에 나선 ]인사동시절‘(1969〜1979)을 거친 박 화백은 1980년부터 각종 도예(자기) 및 조각(탈, 불상 등의 목조각과 석조각 등) 등 입체 및 설치 예술을 시도하는 한편, 각종 민화 창작과 호랑이 그림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줬다(용인시대, 1979〜1990).

 

이어 박 화백은 평면·도자·조각 등 전 장르로 경계를 확장하고 2000년대 들어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천안시대, 1990〜2006).

 

 

무제, 30호-90.9x72cm.7(3)-2018년
무제, 30호-90.9x72cm.7(3)-2018년

 

박 화백은 2006년부터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서 백공미술관 건립 작업을 맡으면서 수시로 미술관 아틀리에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쳐다보며 그토록 어려웠던 시절에 그렸던 수많은 그림들이 산천에 흩어져 사라져 버린 안타까움에 상심하며 영원이 살아 숨 쉬는 ‘생명예술’을 갈구했다.

 

이때부터 박 화백은 10여년에 걸쳐 자연이 생성되는 원리를 찾아 이를 물성 언어로 풀어내기 위하여 모진 수행과 노동을 거듭했다.

 

이런 수행과 노동 과정에서 크고 작은 ‘결’의 오브제들이 탄생됐다. ‘결’은 나무나 돌, 살갗 따위에서 조직의 굳고 무른 부분이 모여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짜인 바탕의 상태나 무늬를 말한다.

 

세상의 만물은 각기 자신만의 고유한 결을 지니고 있다. 결은 세상 만물이 태어나 오랜 시간,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결과이다. 결은 단순한 외면상의 패턴이 아니라 그 물체의 역사이며 그 자체이다.

 

침묵수행과 노동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면서 사물의 이치에 근접하려는 ‘결’은 박 화백의 예술에 있어 우주의 운행원리와 사물의 본질을 뜻한다.

 

박 화백이 10년 수행 끝에 탄생시킨 ‘생명예술’은 작년 1월 19∼27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에선 선보이며 큰 반향을 불러왔다.

 

전시 오픈식엔 30년 한가람미술관 개관 이래 최대 관람객들이 모였으며, 다음날 1000여명의 방문을 비롯해 전시기간 내내 유명 인사와 수많은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며 명상에 잠기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작가와 대담을 했다.

 

 

무제, 30호-90.9x72cm.7-2018년
무제, 30호-90.9x72cm.7-2018년

 

전시작의 경우 재료도 붓·물감(아크릴)·캔버스나 먹과 종이 대신 흙, 마대천 등이고 작업 방식도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있다. 마대, 흙, 나무, 돌 등으로 연출되어 공간, 평면, 설치예술이 환상적으로 교합하는 ‘결’은 사물의 근원에 대한 탐험이며, 영원의 갈구하는 ‘생명예술’의 또 다른 표현이자, 시간(역사)의 흔적이며 노동으로 잉태된 ‘점의 미학’이다.

 

박 화백은 전시작과 창작 창작배경 등과 관련해 “생의 매 순간마다 지탱하기 힘든 중압감 속에서도 ‘(미술)작품 창작은 운명’임을 절실히 깨닫고, 살아 숨 쉬는 동안 역사의 언덕에 예술가로서의 작은 흔적이나마 남겨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우주만물의 진리를 표현해 보겠다는 무모한 도전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작품들이 저절로 표현·창작된 것이다. 고독과 고통의 절해고도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정직하고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또 그렸을 뿐이다.

 

이어 박 화백은 “오로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작품들이 영감의 확충과 마음의 평화를 얻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생명을 간직하면서 영원히 살아 쉼 쉬길 바랄 뿐이다”고 했다.

 

 

박종용 화백(왼쪽)과 조셉 밥티스타 부사장
박종용 화백(왼쪽)과 조셉 밥티스타 부사장

 

관람객에 깊은 울림을 준 ‘결’의 전시 열풍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KBS 춘천방송국 개인전(2019년 3월), 인사아트플라자 전시(2019년 6월), 조형아트 서울 전시(코엑스, 2019년 6월), 당진 문화원 전시(2019년 6월), 중국 상하이 아트페어(2019년 9월), KIAF 아트서울(코엑스, 2019년 9월), 여수 아트디어션 갤러리 개관전(2019년 11월), 창원경남 국제아트페어(2019년 11월) 등의 전시회로 이어졌다.

 

박 화백은 독창적인 창작 활동 등으로 최근 몇 년간 국민대 행정대학원 해공 지도자상(2016), 제39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예술창작부문, 2019), 제7회 창조문화예술대상 대상(국회, 2019), 한국경제문화대상 미술부문 수상(한국경제문화연구원, 2019) 등을 수상했다.

 

박 화백은 ‘예술가의 운명’과 ‘예술가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 주며 창작을 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예술활동을 넘어 묵언(默言)의 수행이자 노동의 기록이기도 하다.

 

코로나와 팬데믹으로 세계가 혼란스럽고 생명의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오늘날 박 화백의 ‘생명예술’ 작품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미국 유수의 화랑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10여년 구도(求道)의 길을 걸으며 창작된 우주만물의 생성원리를 탐구하는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에 매료돼 연이어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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