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방역’ 명분에 우려 커지는 ‘감시사회’
[이슈메이커] ‘방역’ 명분에 우려 커지는 ‘감시사회’
  • 손보승 기자
  • 승인 2020.06.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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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방역’ 명분에 우려 커지는 ‘감시사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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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은 개인의 일상은 물론 정치와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기존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안전과 방역을 명분으로 개인을 통제하는 정부의 역할도 재정립되며 ‘빅브라더’ 출현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전자출입명부 도입 인한 사생활 감시 논란

코로나19가 전국 단위로 급격히 확산한 뒤 각 지방자치단체는 홈페이지에 대응 현황을 통해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고 있다. 동선 추적은 방역 당국은 물론 경찰관으로 구성된 신속대응팀을 통해 휴대전화 위치와 기지국 접속 기록, 카드 결제 내역과 CCTV 분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 집단감염 사태나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발생 당시 수 천 명에 달하는 신도와 방문자의 위치 정보를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이러한 추적을 뒷받침하는 장치다. 당국은 이동통신사나 관계 기관에 확진자나 의심자와 관련된 각종 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을 빠르게 차단해 후속조치에 나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국민들 역시 대체로 이에 적극 동참했다.

 

이처럼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국가의 정보 수집이 사회 안전에 필요한 부분이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디지털기술과 데이터가 공동체 감시와 시민들의 통제수단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시스템이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일부 교회와 도서관, 노래방, 클럽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출입자 명부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QR코드 기반의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시설 관리자는 이러한 QR코드를 스캔해 방문기록을 저장하게 된다.

 

정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명부를 수기로 작성하게 했으나 허위 작성 사례가 잇따르며 방역에 구멍이 생기자 이 같은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한 사생활 논란을 의식해 코로나 19 위기 단계에서만 한시적으로 운영하고, 수집한 정보는 4주 후 폐기한다는 방침도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사생활의 비밀 침해가 심각하고 새로운 개인감시시스템이 될 우려가 크다”며 제도의 도입 중단을 강하게 촉구한 바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정보가 유출되거나 수집이 일상화될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는 반면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체로 공감하고 따르고자 하지만 전자출입명부에 대해선 비판적인 입장”이라며 “내가 어디에 가는지 국가가 다 알게 된다는 사실이나 정보가 철저하게 관리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출입자 명부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QR코드 기반의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출입자 명부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QR코드 기반의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슈퍼 정부’ 시도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코로나19가 가장 먼저 확산되었던 중국은 공항과 기차역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중시설에 발열측정기와 안면인식기를 설치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도시에선 시민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감시를 위한 드론을 띄우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법원 영장 없이 잠재 감염자들의 휴대폰에 접근해 실시간 위치를 빼낼 수 있는 긴급명령까지 발동했다. 영국은 코로나19 비상법안을 통해 정부가 코로나19를 전파시킬 위험이 있는 사람을 경찰이 구금 및 격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헝가리는 지난 3월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코로나19 방지법’을 제정하고, 정부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인이게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을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코로나19가 유발한 국가적 위기를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구축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국제비영리법률센터(ICNL)는 코로나19 발생 후 각 정부의 법률적 조치가 자유와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현재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는 6월5일 기준 86개국이다.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34개국, 국민에 대한 감시가 개인 정보 보호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인 국가도 29개국, 집회 등에서 규제를 도입한 국가는 112개국에 이른다. 뉴욕타임즈는 “각국 정부가 국경을 폐쇄하고 이동 자유를 제한하는 게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권위주의적인 통치자들의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슈퍼 정부’의 등장에 대해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위기 상황에서 꺼내든 각국의 주요 통제정책을 두고 “모든 사람을 24시간 감시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며 “인류의 감시체제 역사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되고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신뢰와 견제의 균형이다. 재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에 동참하되, 독단적인 정보 활용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정부를 끊임없이 감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지나간 후에도 스스로 ‘판옵티콘(panopticon)’에 자신을 가두는 우를 범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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