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Issue] 혐오문화에 빠진 대한민국
[Social Issue] 혐오문화에 빠진 대한민국
  • 민문기 기자
  • 승인 2015.12.04 0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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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민문기 기자]


 

혐오문화에 빠진 대한민국

 

당신은 무슨 충(蟲) 이십니까?


 

 

 

최근 2~3년 동안 대중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한자어 중 하나는 ‘벌레 충(蟲)’이다. 자신이 혐오하고 비하하고 싶은 특정한 단어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 결합한 호칭인 일명 ‘00충’이란 단어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단어는 혐오의 대상이 아닐 때도 일반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타인의 혐오를 넘어서 자신까지 낮춰 일컫는 ‘혐오문화’에 봉착했다.



혐오의 일상화 시대


최근 상대를 비하하는 일명 ‘충(蟲)’ 문화는 사실 지금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표현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공부밖에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공부벌레’, 일에 중독되어서 일밖에 모르는 ‘일벌레’, 돈만 밝히는 ‘돈벌레’를 등이 있다. 과거의 이러한 표현들이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을 농담조로 일컫는 단어였다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쓰이는 ‘00충’이란 표현은 어떤 곳이든 충(蟲)이란 한자만 가져다 붙여 손쉽게 혐오를 표현하는 단어로 바뀌었다.


‘00충’은 2000년대 초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명 ‘무뇌충’이라는 단어가 그 시작이었는데, 이 단어는 뇌가 없는 벌레란 뜻으로 흔히 머리가 텅 빈 사람을 빗대어 일컫는 말로 사용됐다. 무뇌충은 2002년 국립국어원의 신어 자료집에 포함될 만큼 당시 널리 사용됐다. 이후 사라지는 듯했던 충(蟲) 문화는 의학전문대학원 학생들을 비하하는 표현인 ‘의전충’이라는 단어가 생겨나며 다시금 부활했다. 


최근에는 보수 커뮤니티 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 ‘일베충’에서 시작해 ‘맘충’ ‘애비충(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아빠들을 비하하는 용어)’ 등 혐오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모든 단어에 충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타인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의 의미를 담았던 충(蟲)이라는 단어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사회 속 자신을 비하하는 의미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됐다. 그 예시로 직장인을 뜻하는 ‘출근충’, 학생들을 뜻하는 ‘급식충’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충(蟲)이라는 단어는 혐오, 차별의 의미를 넘어 대중들이 거부감 없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농담으로까지 변질됐다. 탕수육을 먹을 때 소스를 부어 먹느냐 찍어 먹느냐에 따라 ‘부먹충’과 ‘찍먹충’으로 부르기도 하며, SNS의 아무 게시글에 ‘좋아요(추천)’을 누르는 ‘따봉충’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젊은 층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이 같은 표현은 한 집단을 넘어서 냉소적인 국가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는 ‘헬(hell·지옥)’과 ‘조선(朝鮮)’의 합성어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비관적 국가관을 지닌 표현이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살인적인 실업난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기준 국내의 청년 실업률은 9.4%로 청년 10명 중 1명은 실업 상태다. 이 때문에 청년들 사이에서는 결혼, 출산, 취업, 내 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 세대’를 넘어서 꿈과 희망까지 접은 ‘7포 세대’라는 안타까운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 NO Kids Zone과 함께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부모들에 대한 혐오현상이 생겨났다. ⓒ KBS2

 

 

암울한 우리 현실을 대변하는 현상

대한민국 사회가 벌레로 가득한 사회로 돌변하며, 상대를 벌레로 낙인찍는 현상은 이제 공동체와 민주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혐오문화가 유행하는 배경으로 한국사회에 퍼지고 있는 경제적 불황과 청년 세대의 불안감을 꼽았다. 어두운 현실에서 궁지에 몰린 청년들이 자조적인 공격성과 적대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자기 생각이나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이기적 시민문화’가 ‘00충’이라는 말을 범람하게 된 사회적 배경”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 교수는 “타자에 대한 공격인 혐오의 감정이 자신에 대한 부정인 모멸의 감정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며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업신여김 당한다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자기 삶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라는 심리적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상대방 혹은 타 집단을 혐오하는 역사는 사실 한국에서 그리 짧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좌빨(좌파+빨갱이)’, ‘우꼴(우파+꼴통)’ 등 정치 성향에 따른 편 가르기부터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차별적 용어도 흔하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와 맞지 않거나 불편한 집단에 대해서는 우선 낙인을 찍고 보는데, 태평성대일 땐 문제없다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불만이 생길 때 그것을 표출하는 것”이라며 “한국 사회의 노동 시장 양극화, 소득 불평등 등 여러 구조적 문제가 심화되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사회 소통망의 부재를 이러한 혐오 문화의 이유로 꼽았다. 그는 “사회가 변화하며 여성, 노인, 청소년 등 각계각층이 사회 전반에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새로 등장한 구성원들과 기존 구성원들이 대화할 수 있는 소통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라고 진단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부재가 무조건적인 혐오를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혐오문화 현상은 팍팍하고 어두운 현실이 계속되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서로에 대한 혐오와 거부감만을 키우기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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