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디지털 성범죄 II] 국민의 우려와 법제도의 엇박자
[이슈메이커_ 디지털 성범죄 II] 국민의 우려와 법제도의 엇박자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0.05.1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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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국민의 우려와 법제도의 엇박자

 

 

ⓒ pixabay.com
ⓒ pixabay.com

 

2018년 10월, 경찰청과 여성가족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심의위원회는 DNS(도메인 네임 시스템) 차단 방식을 적용해 외국에 서버를 둔 음란사이트 접속을 차단했다. 당시 방송심의위원회는 차단 이유 중 하나로 ‘음란물 게시 또는 디지털 성범죄 정보(일반인 불법 촬영물) 등이 포함’을 꼽았다. 이후 많은 이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근절까지는 아니지만, 더 이상 피해자가 늘어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n번방’ 사건 이후 이 ‘희망’은 ‘실망’으로 변했다.

 

음란물 vs 디지털 성범죄물

지난해 여름, 소라넷 운영자의 2심 선고 때 운영자 송 모씨는 징역 4년 형을 받았고, 14억 1천만 원의 추징 명령이 파기됐다. 무려 17년간 성폭력 범죄를 전시 및 조장하며 사회에 암적인 존재였지만, 결국 추징금 0원, 처벌은 단 1명에 그쳤다. 아직 공동운영자와 100만 명에 달하는 회원 대부분은 아무런 처벌도, 제재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되는 플랫폼과 함께 지금의 ‘n번방’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는 ‘고담방’, ‘웰컴비디오’ 등이 있었고, 주요 피의자는 각각 구속 및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웰컴비디오의 운영자 손 모씨의 판결이 난 후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다른 나라에서는 중형의 처벌이 이뤄졌는데 가장 많이 업로드되고 많이 본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표현한 바 있다. 참고로 미국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초범이라도 징역 15~3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으며, 영상물을 보기 위해 접근하거나 소지만 해도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지난 3월 26일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처벌받지 않은 소라넷의 후예들이 ‘박사들’이 됐다”며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현재를 만들었듯 2020년 현재와 제대로 단절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같은 달 2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2월까지 방심위가 심의한 디지털 성범죄물은 8만 5,818건에 달했는데, 이 중 트위터나 구글(드라이브),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 플랫폼이 방심위의 ‘자율규제 요청’에 따라 자체적으로 삭제한 디지털 성범죄물은 2만 7,159건으로 총 심의 건수의 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방심위가 나머지 68%에 대해서 접속차단 조치를 진행했지만, 보안프로토콜(https)과 우회 프로그램으로 인해 조치가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의 방치이자 누구나 쉽게 디지털 성범죄물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달 6일, 사단법인 오픈넷은 ‘n번방 사태 재발방지를 위해 국회는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상 음란물 관련 규정을 재정비하여 음란물과 디지털 성범죄물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후자에 대한 법적·문화적 경계심을 고양시키고, 사법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신설할 것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논평을 실었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디지털 성범죄물에 관대한 한국사회의 문화’라고 꼬집으며 ‘성범죄에 관대한 문화의 뿌리 중 일부는 음란물과 디지털 성범죄물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 형사법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포르노그래피, 소위 [야동]은 대부분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지만, 엄격한 청소년유해매체물 규제에 의해 마치 불법 영상인 것처럼 삭제·차단되는 상황이 혼돈을 가중시키고, 심지어 디지털 성범죄물도 [야동]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사방’,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게시글에 많은 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박사방’,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게시글에 많은 이들이 동의를 표했다.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이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성착취물을 소비하는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착취물 시청은 ‘야동’을 보는 행위가 아니라 엄연한 성범죄 행위다. 현재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은 소지 자체가 불법(1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 벌금)인데 이에 대한 처벌 기준 강화와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때문에 스트리밍 시청이나 온라인 그루밍 등에 대한 처벌 등 입법의 빈틈을 메우고, 여러 범죄로 흩어진 법을 모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정책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성범죄전담법원 설치’, ‘여성가족부 내 디지털 성범죄 특별사법경찰 신설’,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 실시’, ‘플랫폼 규제 방향 전환’, ‘신고포상금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대안을 내놓았고, 민중당의 김종훈 의원은 “n번방 사건 관련해 국회와 정부가 빠르게 대처하고 처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차원의 결의안을 채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 3월 25일 개최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 긴급현안보고에서 ‘n번방 금지 결의안’을 상임위 차원에서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같은 달 23일 국회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성폭력 처벌 강화를 위한 긴급 간담회’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Project ReSET)의 대표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구속수사 의무화’, ‘사이버성폭력 수사인력 증원’, ‘불법촬영물 촬영대상자의 삭제 요구 거부에 대한 처벌’ 등과 함께 플랫폼 사업자의 인공지능을 이용한 성범죄영상 필터링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 글들의 참여 인원이 매우 높게 형성되고 있으며,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의 청원 동의 참여 인원의 수는 각각 2,715,626명, 2,026,252명을 기록했다.

 

한편 20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권이 ‘n번방 방지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원내대표단‧상임위간사단 연석회의에서 n번방 입법은 국회 1호 입법청원의 결과다. 그런데도 입법이 이뤄지지 않는 건 20대 국회의 명백한 과오로 기록될 것”이라며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이 문제만큼은 꼭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정의당 역시 4‧15 총선 선거운동 기간 동안 ‘n번방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서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예방 및 대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법제도 마련이나 행정적 기준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 어딘가에서 불법 성착취 행위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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