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박명환 야구 아카데미 감독
[이슈메이커_ 단독 인터뷰] 박명환 야구 아카데미 감독
  • 김갑찬 기자
  • 승인 2020.02.17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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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닥터 K 박명환, 제2의 인생 스트라이크를 던지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프로야구 레전드가 유튜버가 된 까닭은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대한민국 1호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스승으로도 알려진 토미 라소다 전(前) LA 다저스 감독 남긴 이 말은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다. 따스한 봄 플레이 볼을 외치며 시작되는 야구는 한여름의 뜨거운 승부를 거쳐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만들며 긴 겨울 방학을 맞이한다. 선수들에게는 휴식이자 다가오는 시즌을 위한 준비 기간인 11월에서 3월까지의 시간이 야구팬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0년 겨울, 야구팬들은 야구 없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지난 연말 새롭게 시작한 한 편의 드라마가 야구를 향한 팬들의 갈증을 완벽히 해소해줬기 때문이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방영 전부터 많은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야구가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프로 스포츠임은 분명하나 사랑 이야기와 막장 전개가 배제된 채 오롯이 야구만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대중에게 얼마나 흡입력 있을지 방송계뿐 아니라 야구계에서도 관심이 이어졌다. 첫 방송 후 5%대의 무난한 시청률은 시작에 불과했다. 단순히 야구와 경기에 초점을 두기보다 야구팬에게도 낯설었던 프런트 직원들의 업무와 비시즌의 모습을 그리며 일반 대중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갔다. 또한, 신인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는 필력과 스토리 전개, 그리고 실제 선수와 프런트 직원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스토브리그는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는 이른바 대박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조금은 식어버린 야구 열기도 2020년 시즌을 앞두고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반등하리라 야구계는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에피소드가 이어지며 이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으며 당시 선수들이 야구팬 사이에서 다시금 소환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두산과 LG, NC를 거치며 2000년대 초반 손민한, 배영수와 함께 우완 트로이카를 형성했던 프로야구 레전드 박명환도 드라마 속 장진우 선수의 캐릭터와 비교되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유소년 야구 지도자이자 프로야구 선수 출신으로는 최다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로 제2의 인생 도전에 나선 박명환 야구 아카데미 코치를 2020년 3월 이슈메이커가 만나보았다.

 

 

사진제공=유튜브 박명환TV 캡쳐
사진제공=유튜브 박명환TV 캡쳐

 

최근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인기다. 본 적 있는가

“물론이다. 유튜브 촬영과 유소년 강습 등으로 바빠 생방송으로 보진 못했으나 다시 보기로 챙겨보고자 한다. 드라마 속에서 한때는 최고의 스타 선수가 은퇴의 갈림길에서 최저 연봉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받지만, 현역 연장의 의지가 강해 이를 수락한 장진우 선수의 캐릭터가 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해줘 더욱 더 흥미롭게 보고 있다. 물론 드라마의 모든 내용이 현실 야구와 똑같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70% 정도는 비슷하다고 본다. 작가나 연출자가 야구 공부와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한 것 같다. 요즘 야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며 위기라는 의견도 있는데 이번 드라마의 인기가 프로야구 개막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명환 야구 아카데미를 설립한 이유가 있다면

“은퇴 이후에 향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이 많았다. 평생 야구만을 했기에 야구판을 떠날 순 없었다. 그러던 중 교육사업과 관심이 생겼다. 최근 야구뿐 아니라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가 학원 스포츠와 생활 스포츠가 맞물리며 과도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가 가진 노하우와 올바른 방향으로 후배들을 가르치는 것이 야구로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학부모와 선수들도 이런 저의 뜻에 공감해주고 팬들도 많은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다. 지난해에는 얼마 전까지 가르쳤던 제자가 신인 드래프트 2차 5순위로 프로에 입단하기도 했다. 물론 엘리트 선수들만을 육성하진 않지만 제가 가르친 선수가 프로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기분에 지도자를 한다고 생각했다. 엘리트뿐 아니라 취미반 아이들을 위해서도 눈높이 교육을 지향하며 이들에게 야구의 재미를 심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당장은 아니지만 이러한 과정을 차근차근 모아 2~3년 안에는 많은 유소년 선수 혹은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야구 서적을 만들고자 한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야구 선수 박명환이 아닌 교육자로서 철학은 무엇인지

“제가 어렸을 때는 야구도 공부도 모두 주입식 교육이었다. 주입식 교육의 단점은 창의력이 결여된다는 점에서 지양하려고 한다. 더욱이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엘리트 선수들은 학교 교육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학생 야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수이다. 첫째가 공부가 둘째가 야구여야 한다. 1%도 되지 않는 프로의 길을 위해 수많은 유소년 선수가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 중이지만 냉정히 말해서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다. 기본적 학교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유니폼을 벗는다면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다. 따라서 이곳 아이들에게도 항상 학교 수업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고 있으며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야구도 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야구장에서의 모습뿐 아니라 유튜브 방송에서의 모습도 익숙하다

“저도 야구 아카데미를 시작했으나 수많은 선후배 선수도 각 지역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야구 교육기관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공간들이 선수들의 제2의 인생 터전이며 이들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도록 돕고자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8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정수근 선배의 영상을 비롯해 야구인 출신의 게스트를 섭외해 야구계 썰을 푸는 ’야구 썰전‘도 구독자들에게 관심이 높다. 하지만 재미 위주의 자극적인 콘텐츠보다 앞으로는 교육과 비야구인의 근황 토크 등도 더 강화할 예정이며 중국 야구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맞춰 우리나라 야구를 중국에 알리는 기회도 마련하고자 한다.”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연봉과 맞바꾼 명예 회복

앞서 언급한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장진우 선수는 구단이 제시한 5천만 원의 터무니 없는 연봉에도 자존심을 버리며 1년 더 야구를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수락한다. 실제로도 이런 경우는 존재했다. 2011년 LG 소속 당시 박명환 선수는 5억 원의 연봉이 이듬해 5천만 원으로 90% 삭감됐다. 프로야구 역사상 초유의 연봉 삭감률이었지만 그는 받아들였다. 최근 키움의 이택근 선수 역시 박명환에 이어 두 번째로 90% 연봉 삭감을 현역 생활 연장의 목표로 받아들였다. 반면 얼마 전 FA를 신청한 롯데 손승락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계약에 이르지 못하자 과감히 은퇴를 선언했다. 프로는 돈으로 증명한다는 말이 있다. 연봉이 자신의 가치이고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도 분명 존재한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문방구에서 공을 사고 분필로 스트라이크 존을 그려서 혼자 던지는 연습도 많이 했고 동네 야구도 즐겼다. 야구부에 입단하고 싶었는데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2년 넘게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겨우 승낙을 받았다. 청구 초등학교 당시 감독님께 어려서부터 많은 것을 배웠고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 중 한 분이다. 특히 야구를 즐겁게 하라며 축구도 시켜주고 라면도 직접 끓여주셨던 모습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프로 데뷔 이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는가

“2001년 두산 소속 당시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 선발 등판이 기억에 남는다. 노장진 선수와 선수와의 맞대결을 펼쳤는데 이날 승리를 거두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뒀다.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의 선발 등판이었다는 점이 기억에 남고 팀 역시도 OB가 아닌 두산이라는 이름으로 거둔 첫 우승이기에 감격은 배가 됐다. 다음으로는 데뷔 첫 선발 경기다. 전주 야구장에서 쌍방울과의 경기가 첫 선발이었는데 당시 19살의 나이로 프로 무대 선발 등판이 쉽지 않았다. 난타를 당했다는 기억밖에 없으며 이후로도 내리 몇 경기에서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들이 더 큰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무래도 은퇴를 앞두고 1,789일 만에 거든 103번째 승리가 아닐까? 부상이 이어지며 재활을 거듭했고 모두가 힘들 거라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들을 이겨내며 프로 통산 103승이자 커리어의 마지막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사진제공=유튜브 박명환TV 캡쳐
사진제공=유튜브 박명환TV 캡쳐

 

2011년 초유의 연봉 90% 삭감 당시를 돌아보자면

“당시 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 5천만 원도 직장인 연봉과는 비교하면 큰돈이다. FA 계약으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돈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갑작스레 연봉이 줄어들면 계획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돈보다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물론 저는 끝까지 명예 회복을 하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이택근 선수도 90% 삭감을 받아들였는데 당시 저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지난해 좋지 않은 일도 많았지만, 워낙 실력 있는 선수이니 올 시즌은 잘 준비해서 좋은 성적으로 팬들에게도 보답하고 명예도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라며 응원한다.”

 

은퇴 당시 아쉬움은 없었나

“아쉬움이 없었겠나? 부상 이후 시속 140 이상의 공도 던지기 쉽지 않았는데 은퇴 직전 39살의 나이에 시속 149를 기록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예전의 공을 되찾았고 내년에는 더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지만 구단에서는 재계약이 어렵다는 통보를 내렸다.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당시 구단이나 감독님께 불만은 없다.

 

야구팬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선수로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6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둔 적도 많았으나 부상이 많았다. 에이스라는 중압감에 아픈 것을 참았던 것이 마이너스였다. 특히 엘지 팬들은 저를 좋지 않게 보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종목은 다르지만 예전에 베트남에서 박항서 감독님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당시 감독님께서 인기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며 팬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와 같은 생각이다. 덧붙이자면 프로야구 선수가 아닌 유튜버로서 교육자로서는 다른 유명인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이기보다 유연하며 사람 냄새나는 친근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와 유튜브의 인기로 다시금 야구팬의 추억에서 소환된 프로야구 레전드 박명환. 현역 시절 그가 던진 공 하나하나가 대한민국 야구팬을 울고 울렸듯 교육자로서 유튜브로서 그가 그리는 인생 2막도 멋진 스트라이크로 모두에게 감동을 전하길 진심으로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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