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pley Syndrome] 리플리 증후군 가면을 쓴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Ripley Syndrome] 리플리 증후군 가면을 쓴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 민문기 기자
  • 승인 2015.10.20 06: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메이커=민문기 기자]

 

 

가면을 쓴 채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주위의 관심과 도움 필요



 

 

 
 

지난 6월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에 동시 합격을 하고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크버그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한인 천재 소녀’ A양의 거짓말이 들통 나며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은 ‘한국형 리플리 증후군’이라 불리며 학벌을 우선시 여기는 우리 사회에 작지 않은 충격을 안겨줬다. 이와 관련해 ‘리플리증후군’이라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가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며, 대중의 이목이 쏠렸다.


허구의 세상을 믿는 마음의 병

사람은 하루 평균 200번쯤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대다수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 속에서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이 아닌 자신이 하는 거짓말은 인지하지 못하고 거짓된 세상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고 거짓된 말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는 주로 성취 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플리(Ripley) 증후군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쓴 ‘재능 있는 리플리 씨(The Talented Mr. Ripley)’(1955)라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톰 리플리가 재벌의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서, 죽은 친구로 신분을 속여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소설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1970년대 정신병리학자들에 의해 새로운 연구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면서 새로운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한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에 따르면 리플리 증후군을 겪는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을 들으면서 사람들이 반응을 보일 때, 이 사람한테 엄청난 심리적 보상을 주는 것”이라며 “이 보상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거짓말의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전문가들은 리플리 증후군을 단순히 거짓말을 심하게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5년 전에는 한 여대생이 화장실에서 주운 지갑에 들어 있던 신분증을 이용해 신분을 사칭하며 대출까지 받다가 구속된 경우나, 처음에는 경찰서 형사과장을 사칭하다가 신분을 사칭한 진짜 경찰관이 승진하자 자신도 경찰서장이 됐다며 주변을 속여 돈을 가로챈 범죄 행위까지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소한 거짓말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더 큰 범죄에 이른다는 것이다. 
 

  SNS가 등장하면서 남들을 속이는 신분 사칭이 더 쉬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바로 타인의 SNS에서 사진 등을 그대로 가져와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행세하는 ‘신상 도용’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SNS 도둑질’을 리플리 증후군 탓으로 봤다. 블로그나 SNS가 발달하면서 타인의 정보를 쉽게 접하게 됨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이 갈수록 사회문제화되는 추세다. 남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꾸미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버젓이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 ‘재능 있는 리플리 씨’

 

 

사회의 변화도 필요한 시점

이번에 이슈를 불러온 A양 사건은 단순한 언론의 보도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 특히 중요하다. 천재 소녀의 거짓말은 학벌 지상주의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민낯을 보여줬다. 조기유학을 떠나서도 공부를 잘했던 A양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고에 다니면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과도한 기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이 좌절되면서 시작된 사소한 거짓말이 결국에는 공문서위조 등의 범죄로 돌아왔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면서 겪게 된 소통의 부재, 똑똑한 아이들을 품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한국의 교육 현실, ‘최고’만을 바라는 학벌주의도 이번 사건의 비극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학벌 콤플렉스는 아이들에게 자신을 투영하는 부모들과 주변의 잘못된 시선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대다수가 인정하는 명문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면 인생에 있어 실패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는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경쟁을 강요하고 남보다 앞서기 위해 잘못된 행동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리플리 증후군이 발현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라며,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행동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나타나면 사기와 절도, 심각하게는 살인 등 강력 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다”라고 경고 했다. 
 

  많은 심리학자는 이러한 리플리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선 가정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특히 성공하는 법보단 행복하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한 치료도 있지만, 실제로 치료의 시간이 길거나 완치 여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어려움 때문에 약물치료를 주로 이용한다. 한 전문가는 “정신분열증이나 망상 장애는 대화로만 치료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허구의 세상을 진짜로 믿고 있는 아이는 설득만으로 꺾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경쟁 사회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가치를 초라하게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의 인생을 자신이 살 수는 없다. 반대로 자신의 삶 역시 남이 살아 주지는 않는다. 리플리 증후군은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절규일지도 모른다. 천재 소녀의 거짓말에 분노하기보단, 1등만 기억하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를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8길 11, 321호 (여의도동, 대영빌딩)
  • 대표전화 : 02-782-8848 / 02-2276-1141
  • 팩스 : 070-8787-8978
  • 청소년보호책임자 : 손보승
  • 법인명 : 빅텍미디어 주식회사
  • 제호 : 이슈메이커
  • 간별 : 주간
  • 등록번호 : 서울 다 10611
  • 등록일 : 2011-07-07
  • 발행일 : 2011-09-27
  • 발행인 : 이종철
  • 편집인 : 이종철
  • 인쇄인 : 김광성
  • 이슈메이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이슈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1@issuemaker.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