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적, 과잉입법 경제 상황 무시하고 전과자 양산하는 의원 입법
민주주의의 적, 과잉입법 경제 상황 무시하고 전과자 양산하는 의원 입법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10.19 0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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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경제 상황 무시하고 전과자 양산하는 의원 입법 

 무리수 입법, 제도적 정치 마련 필요… 국민 참여를 통한 정화도

 

 

국회가 삼권분립 원칙을 위반한 행정권 침해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기본권마저 과도하게 침해하는 과잉입법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할 뿐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어 위헌 논란에 휩싸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과잉입법은 국가적 고비용을 양산하는 통로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법제처에 따르면 9개 법안이 헌법의 과잉입법금지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 

 

‘김영란법’부터 ‘메르스’까지, 포퓰리즘 과잉입법 논란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 제출된 건수를 보면 제16대 국회에서 1682건, 제17대 국회에서 4399건, 제18대 국회에서 1만672건에 이른다. 지난 2012년 출범한 제19대 국회에 들어서는 벌써 2만건을 넘어섰다. 이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입법 수요가 늘어난 측면도 있겠지만, 의원 입법 수가 급증한 것에 기인한다. 제19대 기준 의원 입법이 전체 발의 법안의 93.5%를 차지한다. 의원 입법이 이렇게 급증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입법 발의 ‘건수’라는 정량적 요소에 있다. 대외적으로 보이는 실적을 높이기 위해 ‘건수’ 중심으로 법안을 발의한 결과 졸속, 부실 내지는 과잉 입법이 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입법 당시 행정부와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아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예산상 문제 등 집행이 어려운 내용의 법안도 다수 발의되고 있다. 과잉입법의 근본적 원인은 표와 여론을 의식한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남발하고 졸속 심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탓이다. 사회적 이슈가 된 문제에 대해서 ‘긴급처방’ 식으로 일단 법안을 발의한 뒤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사례가 많다. 이들 법안 상당수가 추상적이어서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재산권을 침해하는 법안 상당수가 추상적이어서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입법 때문에 추가로 들어가는 예산만 연평균 82조원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는 만큼 과잉입법에 대한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김영란법’이 과잉입법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 법은 현직 여검사가 내연관계인 변호사로부터 벤츠를 선물 받고 사건 처리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금품수수와 부정청탁을 막기 위한 것으로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과잉 입법이란 논란이 제기됐다. 김영란법에 의하면 공직자는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대가성이나 직무연관성과 관련없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금품에는 돈과 부동산은 물론 숙박권·입장권·할인권·초대권 등 경제적 이익 일체가 포함된다. 금품수수와 부정청탁 금지의 주체는 공직자의 가족도 포함된다. 하지만 국회가 국가보조금을 받지 않는 언론사와 사립학교 직원들도 법 적용 대상에 포함해 과잉입법 논란이 일었고 여야는 위헌 소지를 인정하면서도 처리를 강행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대형마트 영업제한 확대 조치도 우려스러운 과잉입법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이 제한됐고, 최근에는 영업제한 시간이 2시간 더 늘어났다. 하지만 이 법안 시행 이후 오히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매출이 동시에 하락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해 12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위법이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나왔지만 무용지물이다.
 

  최근 전 국민적 우려를 낳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도 과잉입법의 대상이다. 메르스 감염 의심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채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됨에 따라 논란이 일었다. 전염병 감염이 의심된다고 해서 성범죄자에게 부착하는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해 관리하는 것은 인권을 침해하는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지난 6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광역·기초단체장들이 감염 전파의 위험성이 인정되는 사람에 대하여 이 법에 따른 감염병관리시설 또는 적당한 시설에 즉시 격리하거나 격리기간 동안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이 조항에 대해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은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할 소지도 있다며 “이러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부착을 위한 구체적 절차를) 하위법령이 아닌 법률에서 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잉입법으로 인해 막대한 국가·사회적 비용 낭비


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된 과잉금지 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의 경우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판례와 학설에 따라 이를 위배할 경우는 위헌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르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그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입법을 함에 있어서 준수하여야 할 기본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위배하고 국회가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남용해 ‘입법 독재’로 치닫자 국민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4월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9대 국회의원들을 적극 심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는 ‘규제범죄에 대한 과잉범죄화(over-criminalization)’ 보고서를 통해 한국에서 벌금 이상의 형벌을 1회 이상 받은 전과자 수가 1100만명(2010년 기준)에 근접해 15세 이상 전체 성인 인구의 26.5%나 된다고 발표했다. 2000년대 들어서만 1.5배 증가해 OECD 국가들 중 최상위권이다. 전과자가 급증한 것은 행정규제 위반을 범죄화한 결과, 단순 과태료가 아닌 징역·벌금 등 형벌을 내리도록 규정한 법률이 700여개, 형벌조항 수는 5000여개로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김 교수의 분석이다. 실제 전과자의 70%가 일반형법이 아닌 행정규제 위반이었다. 과잉입법, 과잉규제가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비용도 막대한데, 특히 행정범죄가 증가하면서 일반범죄도 급증세다. 행정범죄 기소율이 평균 67.4%로 일반범죄 기소율(35.8%)의 거의 두 배나 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단속인력 등의 쏠림으로 인한 구축효과다. 입법권을 휘두르는 국회와 법을 집행하는 정부의 소위 ‘갑질’과 부정부패는 늘고, 세금은 낭비된다. 과잉규제는 그에 상응하는 재앙을 초래했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우유가격 통제는 우유를 아예 못 먹게 만들었고, 금주법 도입은 밀주를 보편화시켰다. 세수를 늘리겠다고 세율을 올리는 것은 탈세 등을 불러 세수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연구결과가 수두룩하다. 세계 석학들이 하나같이 탈범죄화, 처벌수준 정상화 등으로 과잉규제를 없애라고 주문하는 이유다.
 

  국회가 쏟아낸 법률들은 기업활동을 범죄화하는 증오의 악법이 즐비하다. 경제민주화는 거의 모든 경제행위를 예비범죄 목록으로 규정했다고 할 정도다. 최근에는 단통법, 도서정가할인법 같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식의 섣부른 감성 법률까지 나왔다. 규제 대상을 넓히고 규제 수준을 높일수록 준법은 더 어려워지고, 법을 경시하는 풍조는 확산된다. 과잉입법으로 인해 법치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과잉입법 해결의 돌파구는 없나

의원 입법을 통해 신설, 강화되고 있는 대다수의 규제 법률안들이 규제관리제도 적용대상에서 벗어나 규제관리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의 경우 잘못된 규제의 신설을 막아 얻은 이득이 100억달러에 달한다고 지난 1997년 OECD가 밝힌 바 있다. 해외의 사례를 보면 과잉 의원입법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결국 근본적 처방은 국회가 입법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법안 제출권이 의회와 정부 모두에 있는 독일의 경우, 법률안의 80%가 정부 법안이며 법안 제출권이 의회에만 있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대부분 정부에서 기초를 잡아주고 있다. 미국과 영국 모두 정부의 규제개혁기관과는 별도로 전문적인 규제개혁기구를 의회 내에 두고 규제 관련 정책에 관한 각종 조사, 연구, 평가를 수행한다.
 

  법안 제출권이 의회와 정부 모두에 있는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의원 발의 법률안에도 규제평가를 도입하는 추세다. 독일은 행정비용 평가기관이었던 국가규범통제위원회의 기능을 확대해 의원 입법안의 사전검토를 맡고 있다. 프랑스 역시 2008년 헌법을 개정해 입법평가(규제영향평가)를 필수화하고 의원 발의 법률안을 국사원에 제출해 의견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위헌 가능성을 걸러내는 장치가 뒷받침돼 있는 것이다. 
 

 한편, 문제가 있는 입법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에서 정량적 요소 외에 정성적 평가가 중시되는 사회 전반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올 2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19대 국회 법률을 대상으로 입법평가보고서를 발간했다. 한국입법학회에서도 매년 10대 좋은 입법을 선정하는 입법평가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은 의원 입법을 검토, 평가하는 바람직한 수단이라고 법조계 대내외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법조계 전문가들은 국회의 입법절차가 실시간으로 국민들에게 공개되도록 함으로써 문제점을 보완해 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가 해당 법안을 언제 심사하는지, 소관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심사위원회, 본회의 단계에서 수정된 내용이 무엇인지 등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각 단계별로 법안의 개정사항을 국민들이 전혀 모르기 때문에 입법절차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론에서 계속 다뤄지고 국민들의 관심이 첨예한 법안일수록 회의록도 늦게 공개되는 등 사실상 비공개로 운영되는 경향이 있다. 국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내용이 반영되는 절차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국회 법제실의 위상을 높여서 발의 단계부터 부실한 입법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한 변호사에 따르면, “국회의원실의 고압적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요구하는 법안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각 상임위원회마다 법제 전문인력을 충실하게 확보함으로써 문제가 있는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중단 단계에서 충분히 걸러지도록 조정과 여과 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법률안 발의 전 심사 절차를 통해 국회가 과잉입법에 대한 우려를 해소시킬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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