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I] 한국 커피의 역사
[Special Report I] 한국 커피의 역사
  • 오혜지 기자
  • 승인 2015.10.19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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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오혜지 기자]

 

 

커피를 탐한 한국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인들의 커피 사랑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의「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Chos?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는 책에 따르면 커피라는 음식문화는 일찍부터 조선에 자리 잡혀있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 “1884년 1월,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한강변 별장에서 겨울 한강의 정취를 즐기며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라고 기록했다. 이처럼 조선은 서구문물에 눈을 뜬 세도가와 고관대작 그리고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보급돼 있었다.




1880년대 커피에 관한 기록

커피에 관한 기록에 따르면, 커피가 있는 곳엔 늘 당대 최고의 인물이 함께했다. 한말의 개화 운동가이자 최초의 국비 유학생이었던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의하면, 조선의 국왕이었던 고종황제도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기록돼 있다. 고종이 커피 애호가가 된 시점은 1896년 2월 21일 아관파천 사건이 발생한 이후이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일본군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공사관으로 피신 온 고종에게 러시아 공사관인 웨베르가 커피를 소개했고, 이후 고종은 1년간의 공사관 생활을 하며 커피 애호가가 됐다. 이후,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1900년, 덕수궁 내에 정관헌이라는 최초의 양관을 세우고 그곳에서 대신들과 커피와 다과를 즐겼으며, 조선을 방문하는 외국 사신들을 접대했다.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커피로 인해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서 쫓겨난 것이 사건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는 고종에게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발각돼 흑산도 유배가 결정됐다. 이에 고종에게 앙심을 품은 김홍륙은 1898년 9월,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사인을 매수하여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고종과 순종에게 전달했다. 커피 마시기 전, 커피 향 맡는 것을 즐기던 고종은 평소와는 다른 커피 향에 소량의 커피를 마셔 큰 해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커피를 단숨에 마신 순종은 불구자가 되었다는 기록과 치아 18개를 잃었다는 기록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895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기간, 자신에게 커피를 대접하던 손탁에게 서울 정동의 건물 한 채를 하사했다. 1902년 손탁은 그 공간에 현대식 건물을 재건축하여 ‘손탁호텔’을 세웠다. 그는 손탁호텔 1층에 ‘정동구락부’라는 최초의 커피숍을 선보였다. 커피값을 비싸게 판매하던 정동구락부는 고종과 대신 등 특권층만 입장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국내 최초의 다방이라는 점에서 한국 커피 역사에 의미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1900년 대한제국 시절, 고종은 다과를 들거나 외국 사신들을 접대할 목적으로 덕수궁 안에 정관헌을 지었다. ⓒ 淸 岩 美 術 블로그

 
 

1920년대 이후 커피 시장 

1920년대부터 충무로와 명동, 종로 등에 다수의 다방이 선보여졌다. 당시의 다방은 예술과 문학, 철학의 중심지였으며 주로 예술인들이 모여 삶과 사랑, 예술을 토론하는 장소였다. 1927년, 한국의 최초 영화감독이었던 이경손이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종로의 관훈동에 ‘카카듀’라는 다방을 개업했다. 또한 1928년, 영화배우 복혜숙이 종로 2가에 ‘비너스’라는 다방을 개업했다. 8년 동안 운영된 비너스는 ‘윤보선 전 대통령’ 등 다수의 단골손님을 보유한 다방이었다. 1930년 이후, 한국은 동양의 차와 서양의 커피, 술을 함께 파는 다방이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예로 1932년, 이상이 소공동에 개업한 ‘낙랑파라’를 들 수 있다. 낙랑파라는 프랑스의 살롱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문인, 화가 등 예술가와 예술가 지망생들의 집회소로 이용됐다. 
 

1950년 6·25전쟁이 발생하며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던 한국인들의 커피 문화가 바뀌었다. 전쟁이 발생하자 커피가 무역보호 상품으로 지정돼 수입이 금지됐다. 따라서 한국에 보급됐던 커피는 한국에 파견됐던 미군들에 의해 6·25전쟁 군사 보급물자로 이용됐던 인스턴트  커피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또한, 커피의 수량이 부족한 점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고,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1968년 5월, 동서 커피를 설립했다. 동서식품은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했으며, 1975년 세계최초로 커피믹스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1978년 커피 자판기가 출현하며 다방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커피 자판기는 빨리빨리를 외치던 한국의 경제발전 전략과 맞아떨어져 커피 시장에서 급속히 성장했다. 다방보다 저렴하고 편리한 자판기 커피문화는 이후 대학생과 직장인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1987년, 한국의 커피 수입 자율화가 이루어지며 원두커피 소비가 급속히 상승했다. 당시 백화점에는 수입된 원두커피가 진열됐고, 거리 곳곳에 원두커피 전문점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1999년 7월, 이화여대 앞에 오픈한 스타벅스 1호점을 들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이 커피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며 커피의 맛과 품질을 중요시하는 커피 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국산에서 로스팅 된 국산 원두커피 전문점들이 국내 곳곳에 자리 잡았다. 또한, 가정에서도 자신만의 커피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나며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과 커피 용품의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커피는 130년 동안 우리 역사의 흐름과 같이 공존해온 문화 산물이다. 시대의 흐름에 관계없이 꾸준히 사랑받아 온 커피는 앞으로도 지속해서 국민의 곁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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