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악플 I] 제어되지 않는 묵시적 살인
[이슈메이커_ 악플 I] 제어되지 않는 묵시적 살인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11.25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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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제어되지 않는 묵시적 살인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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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4일, ‘당당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가수 겸 배우 고(故) 설리(본명 최진리·25)가 스스로 숨을 거뒀다. 또래의 여성들과 비판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갖고 ‘탈브라’를 선언한 그녀에게는 ‘성희롱’과 ‘조롱’이 이어졌고, ‘노출증’이라는 공격도 서슴없이 가해졌다. 다수의 언론은 이를 퍼 나르기 바빴고, 한 여성의 마음엔 치유될 수 없는 멍이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설리는 세상과의 이별을 강요받았나 보다.

 

사회적 불안 요소이자 공포의 대상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발생되는 ‘악플’의 피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악성(惡性)과 리플(답변·reply)의 합성어인 악플로 인해 이미 수많은 공인이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례를 접해왔고, 우리의 주변 누군가도 악플로 인해 상처받고 힘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으로 의례 짐작하고 있다. 점점 도가 지나쳐감에 따라 피해자들은 고소도 해보고 호소도 해본다. 하지만 한번 타깃이 된 이들이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하이에나가 사냥감을 궁지로 몰아넣듯 숨통을 더 강하게 옥죄고 든다. 고(故) 최진실, 고(故) 최진영, 고(故) 안재환, 고(故) 정다빈, 고(故) 유니, 고(故) 종현, 그리고 고(故) 설리까지. 이 외에도 많은 유명인들이 일면식도 없는 이들로 인해 받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악플로 인한 피해는 비단 연예인이나 공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1인 방송이 대중화되며 일반인과 공인의 경계에 선 이들도 악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이와 성별, 지위를 막론하고 말이다. 실제로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방송하던 한 중학생은 자신의 콘텐츠에 달리는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해명 영상을 올리기도 했는데,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던 중 ‘저 때문에 저희 어머니가 욕을 먹고 있는데 모두 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또 다른 중학생 스트리머는 ‘부모님 욕까지 하고, 찾아와 죽인다는 등 협박을 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악플러를 고소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연예인, 공인, 일반인을 넘나드는 악플에 대한 피해 소식은 국내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최충웅 경남대학교 석좌교수는 “인터넷 사이버 범죄로 명예가 훼손돼 자살한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은 아예 언론에 드러나지도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결코 표현의 자유로 포장될 수 없는 흉악 범죄인 악성 댓글은 유명인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기에 사회적 불안 요소이자 공포의 대상”이라고 한 칼럼을 통해 꼬집었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악플은 아동과 청소년의 인격권과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들에게 온라인 윤리 교육 등을 통해 인격권이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을 알려주고, 어떻게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알려줘야 한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14일 고(故) 설리의 사망설 보도와 사망 확인 보도가 나온 뒤 당일 자정까지인 6시간 56분 동안 검색포털 네이버 기준 약 1,440건의 설리 사망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캡처
지난 10월 14일 고(故) 설리의 사망설 보도와 사망 확인 보도가 나온 뒤 당일 자정까지인 6시간 56분 동안 검색포털 네이버 기준 약 1,440건의 설리 사망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 캡처

 

악플의 재생산, 언론 생태계의 변화 시급

악플의 재생산에 대한 언론의 행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특정 고인의 사망 이유를 추정하며 악플이 재생산되거나 확대·해석되는 형태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고(故) 설리의 사망설 보도와 사망 확인 보도가 나온 10월 14일 당일에 검색포털 네이버 기준 약 1,440건의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17시 04분 연합뉴스 1보를 통해 [경찰 “연예인 설리 사망 신고 접수…확인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온 뒤 6시간 56분 동안이다. 약 17초당 1개의 기사가 올라간 셈이다. 이 과정에서마저도 언론의 보도윤리를 잊은 듯한 기사 헤드라인을 찾아볼 수 있었다. 기사 메인 사진을 이전에 논란이 됐던 노출 사진이나 자극적인 사진을 내건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러한 어뷰징 기사에는 또 다른 악플이 달렸다. 심지어 고인의 빈소를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유가족의 부탁을 뒤로한 기자도 있었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미투(#MeToo) 때도,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자극적이고 조회 수를 높일 기사 소재만 찾게 하는, 언론 생태계의 변화가 시급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신문·방송 모니터보고서에서는 “자살 보도 권고기준에 따르면,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권고 사항”이라며 “그런데 현재 한국 언론들이 보여주는 보도 윤리는 과연 이들이 일말의 양심이 있는지를 의심하게 한다.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성댓글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사망 이유를 마음대로 재단한다. 악성댓글도 문제지만, 언론의 보도 행태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설리의 안타까운 소식은 그래서 우리에게 두 가지 숙제를 남겼다. 하나는 악플이라는 ‘정신적 폭력’에 대해서고 다른 하나는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문제들을 보다 일상적으로 받아들여 비극을 미연에 예방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며 “‘표현의 자유’를 거스르지 않는 조건하에서 강력한 법적 틀이 마련돼야 하고 동시에 문화적 차원의 자정 또한 필요하다 여겨진다”고 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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