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5년 시한부’ 선고받은 자사고·외고·국제고, 논란과 쟁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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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11.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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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5년 시한부’ 선고받은 자사고·외고·국제고, 논란과 쟁점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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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5년 고교학점제 시행에 맞춰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초 설립 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의 서열화를 조장하고 사교육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해 이들 고교를 사실상 폐지하고, 일반고의 교육역량을 강화해 미래교육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자율형사립고·외국어고·국제고 일반고 일괄 전환

지난 11월 7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교서열화 해소 및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2025년 3월부터 자율형사립고(자사고) 42개와 특수목적고(특목고)인 외국어고 30개, 국제고 7개교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올해 안에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으로 현재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이번 개정안이 적용되며, 전환되기 전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학생 신분은 유지된다. 일반고로 전환된 이후 학생의 선발과 배정은 일반고와 동일하게 운영되고, 학교의 명칭과 특성화된 교육과정 역시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유 부총리는 “그동안 고교 체제는 설립취지와 다르게 학교 간 서열화를 만들고 사교육을 심화시켰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교육 격차가 사회 계층 격차로 이어진다는 국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였다”고 정책 추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사교육을 심화시키고 부모 소득에 따라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며 “입시 공정성을 확보하고 미래 고교교육을 준비하고자 일반고 전환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자사고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고 일괄 폐지 정책은 국면전환용, 책임회피용일 뿐이다”고 비판했다. 자교연은 “자사고는 교육의 수월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는 공교육의 모범”이라며 “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선점하고 입시 위주 교육과 고교 서열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은 자사고 교육 현장을 도외시한 터무니없는 모함이다”고 주장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역시 입장문을 내고 “교육부의 이번 정책은 헌법 정신 훼손이자 교육 다양성 포기 선언”이라며 “고교체제라는 국가교육의 큰 틀이 정권과 교육감에 따라 시행령 수준에서 만들고 없어지기를 반복해서는 교육현장의 혼란만 되풀이 된다”고 꼬집었다.

 

 

교육부는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
교육부는 2025년부터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

 

반면 고교서열화 철폐를 요구해 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이들 학교는) 고교 서열화의 핵심으로 한 칸이라도 더 높은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있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학생과 학부모의 고입경쟁과 사교육 고통, 사교육비 격차로 심화한 교육 불평등 문제의 원인이었다”며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치권 역시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양새다. 자유한국당은 ‘일괄 폐지는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정부가 시행령 개정만으로 정책 변경을 추진하는 것에 제동을 걸기 위해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는 한편 헌법소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불공정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며 지금이 교육에서 공정성 가치를 바로 세울 적기임을 강조했다.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 등 자사고 단체들은 일괄 폐지 정책은 국면전환용이자 책임회피용일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 등 자사고 단체들은 일괄 폐지 정책은 국면전환용이자 책임회피용일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YTN 뉴스화면 갈무리

 

강남 8학군 선호 현상 강화 우려

자사고의 시초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내놓은 ‘자립형 사립고’이다. 고교평준화로 획일화된 교육을 보완하고 다양한 교육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입한 뒤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아 문제점을 개선해 존치 여부를 결정해왔다. 이후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9년부터 학교의 자율성과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더 다양화하기 위해 자립형 사립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해 대거 확대되었다. 교육은 다양성과 수월성이 있어야 하고, 좋은 학교를 많이 만들어서 외국으로 유학 갈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확대 취지였다.

 

자사고는 그동안 꾸준히 설립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정 분야 인재 양성과 학교의 자율성 추구라는 본래 취지를 상실한 채 우수한 학생들을 싹쓸이해 사교육 중심으로 입시에 집중하며 고교 서열화와 일반고의 질적 저하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최근 2016~2019년 주요 13개 대학의 고교유형별 합격률은 과학고·영재고가 20.3%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는 외국어고·국제고(10.0%), 자사고(6.8%), 일반고(6.6%) 등의 순이다. 더욱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 등의 학비는 연간 천만 원을 넘을 정도로 비쌌는데,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학비는 일반고와 비교해 평균 3배 이상이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귀족학교 논란에 휘말리며 이 때문에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들어선 2014년부터 폐지 논쟁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일반고 전환이 오히려 강남 8학군 등 유명 사립고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교육 특구’ 선호 현상이 부활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강남 8학군의 집값을 가라앉히는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이 자사고와 특목고였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외고·자사고가 일괄폐지되면 명문 일반계 고등학교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명문 일반계 고등학교, 강남 등의 교육 특구 지역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 부총리는 “과도하게 우려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실제보다는 심리적인 것이 반영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고교 유형별 격차가 일반고 간 격차로 모양만 바뀌며 새로운 고교 서열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과 혈세 부담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쟁점이다. 정부는 일반고 일괄 전환 비용과 관련해 2025년 첫해는 800억여 원, 2년 차에는 1,700억여 원, 3년 차에는 2,600억여 원이 각각 투입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더 큰 문제는 일반고 전환이 무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유 부총리는 “정권이 바뀌어도 학교 현장을 무시하고 다시 원래대로 뒤집기 어려울 것이다”고 밝혔지만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뤄지는 정책이기 때문에 실제 실행하는 차기 정부의 결정에 따라 다시 계획이 바뀔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혁신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정부 방침이 차별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Pixabay
일각에서는 ‘혁신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정부 방침이 차별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Pixabay

 

혁신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

일각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의 핵심 정책인 ‘혁신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이 경기도교육감 시절인 2009년 도입한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해 토론·참여식 수업을 강조하는 학교 모델이다. 지난 9월 기준 총 1,721곳으로 2009년 13곳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130배 넘게 증가했고, 2010년 0.4%에 불과했던 전체 초·중·고교 대비 혁신학교 비율은 지난해 15% 정도로 늘어났다.

 

문제는 자사고·외고·국제고와 마찬가지로 ‘교육 다양성’을 위해 도입됐지만 혁신학교가 ‘기초학력 저하’ 우려로 학부모들의 기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부 조사에서 주요과목의 기초부문을 20%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13.6~15.4%로 최근 6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혁신학교 확대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의 거부감도 크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단지 내 신설 학교 3곳을 모두 혁신학교로 직권 지정하려다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최근에는 2015년 혁신학교인 송정중학교를 폐교한다는 결정 대신 마곡2중학교와 합쳐 혁신학교 지위를 유지하려다가 학부모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폐지키로 했던 송정중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라면 교육제도 전반의 정밀한 보완책 마련이 함께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Pixabay
전문가들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라면 교육제도 전반의 정밀한 보완책 마련이 함께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Pixabay

 

그럼에도 혁신학교를 둘러싼 온도차는 제법 큰 편이다. 지난 9월 기준 총 1,721곳으로 2009년 13곳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130배 넘게 증가했고, 2015년부터 2019학년도까지 5년간 재지정 평가를 받은 혁신학교 1,012곳 중 탈락한 학교는 1.5%인 15곳에 불과할 정도로 혁신학교 위주 정책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자사고나 혁신학교나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며 “혁신학교는 육성 차원에서 유지하면서, 자사고·외고·국제고는 왜 취지를 살리도록 관리·지원하지 않느냐.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의 방침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라고는 하지만 넘어야 할 부작용과 과제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백년지대계’라 할 수 있는 교육이 정파적 이익에 따라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경쟁력을 잃고 황폐화 된 공교육에 대한 교육당국의 깊은 반성과 교육제도 전반의 정밀한 보완책이 함께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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