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간 역사를 담은 우리의 소리를 담아내다
수천 년간 역사를 담은 우리의 소리를 담아내다
  • 한태윤 기자
  • 승인 2011.11.1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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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대한민국의 울림, 세계로 뻗어나가
[이슈메이커=한태윤 기자]

[1% Power & The Craftsman]   
성종사 원광식 대표
 
종은 악기로, 부장품으로, 의식구로, 신호도구로, 권력의 표시로, 심지어 도량형기로까지 예로부터 인류의 삶이 녹아든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이다. 금속으로 빚은 최초의 소리도구이자 인류문명의 탄생과 진화의 이기인 셈이다. 예나 지금이나 종을 사용하지 않는 민족은 드물다. 불교가 전래된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프로방스의 호젓한 바닷가에서도 어김없이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편, 제야의 타종식 같은 성대한 퍼포먼스로 새해를 맞는 민족은 드물다. 그만큼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타종 의식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종을 가장 많이 만드는 제종강국이 된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에 국내 유일의 범종 인간문화재(제112호) 성종사 원광식 대표의 발자취는 우리나라 종 역사에서 의미가 크다.

 

천 년의 소리를 되살리다
천 년을 갈고 다듬은 종체에 또 다른 무언가가 거세게 부딪히는 순간, 세찬 경련과 요동의 일각을 타고 파르르한 진동으로 파생되는 쇳소리가 사방에 번진다. 바람을 타고 장인의 거친 숨결과 이내 깊은 번뇌를 사르르 녹이는 참회의 소리, 그리고 삼매경 속 여음으로 만물을 깨치는 묘법의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이것이 우리가 전통 종소리의 울림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다. 그러나 그 소리보다 더욱 심오한 경지는 형체, 곧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구상 어디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한국 종만의 조형미라고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에 위치한 성종사 입구에 들어서자, 한 눈에 아름다운 한국 종의 조형미를 느낄 수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커다란 범종은 단연 장엄하고도 웅장한 기운을 뿜어냈다. 
성종사는 국내 최초 범종제작사로써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범종 주조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 같은 명성은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1997년 원광식 대표가 10여 년간의 독자적인 연구 끝에 전통범종 제작 기법인 밀랍주조법을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부터 시작된다. 에밀레종이라고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상원사종 등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 종을 대표하는 국보급 범종 대부분은 이 공법으로 제작됐다. 또한 2005년에는 대형범종 제작을 위한 새 밀랍주조법을 개발해 특허를 내 주목을 받았다. 원 대표가 재현한 범종제작 전통 기술은 전문 분야의 교수 등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범종연구회’와 제자들을 통해 전수되고 있다.
그동안 그가 제작한 범종은 신라 상원사 동종 복원을 비롯해 서울 보신각종, 화재로 소실된 강원 낙산사 동종 등 전국에 7000여개가 넘는다. 뿐만 아니라 해외까지 수출영역을 넓히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현재 일본, 싱가포르, 대만, 미국,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원광식 대표의 손길이 깃들어 있다.
원광식 대표가 지금의 위치에 서기까지는 결코 순탄치마는 않은 과정이 존재했다. 1969년 작업 도중 쇳물이 튀어 한 쪽 눈이 실명했고, 가까운 친구의 배신으로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들은 원 대표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했다. 땀과 수고로 종 제작에 한 평생을 보낸 그이기 때문에 제자들을 대하는 마음도 각별하다. 그는 스승을 넘어선 인생의 선배로서 ‘자만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원 대표는 “자만할 때가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면 그 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항상 자신을 뒤돌아보고, 꾸준히 투자하고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시대의 소리를 찾아서
성종사 내부에 전시된 종들은 얼핏 보면 비슷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기별 국가별 각기 다른 곡선미와 장식으로 각각의 특징을 뽐내고 있었다. 원광식 대표에게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무엇인지 묻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아직 없다’는 답이었다. 순간 원 대표의 앞으로의 계획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과거에 얽매여 작품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 시대의 종’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은 마음에 드는 진정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입니다”라고 밝혔다.  
오롯이 한 길 만을 묵묵히 걸어온 그에게 ‘장인’ 이상의 표현은 찾기 힘든 듯 했다. 그의 손에 셀 수 없는 주름은 그동안 원 대표의 세월의 흔적과 그 안의 숨결을 대변해주었다. 올해로 고희(古稀)를 맞이한 나이가 무색할 만큼 꿈을 이야기할 때 더욱 빛나는 눈. 그 에너지야말로 원광식 대표를 대한민국 최고의 주철장(鑄鐵匠)으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태국 지사를 설립함으로써 다시 한 번 도약의 발판을 다진 성종사. 앞으로 원광식 대표가 만드는 이 시대의 종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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