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리퍼트대사의 집 130년 만에 열린, ‘비밀정원’
[Inside] 리퍼트대사의 집 130년 만에 열린, ‘비밀정원’
  • 이경진 기자
  • 승인 2015.08.0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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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이경진 기자]

130년 만에 열린, ‘비밀정원’


한국 근·현대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곳

 

서울 중구 정동 10-1번지에 위치한 주한 미국대사관저는 1970년대 미국대사를 지낸 필립 하비브의 이름을 따서 ‘하비브 하우스’라고 불리고 있다. 1884년 조선 왕실이 서양인에게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자 미국 정부가 해외에 갖고 있는 공관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이끼와 담쟁이가 덮인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어 실제로 관저를 본 사람은 드물다. 한국 근대사의 숨결이 배어 있는 이곳이 일반 시민들에게 최초로 공개되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양식, ‘하비브 하우스’

조선 정부가 조선 주재 미국 초대공사인 루셔스 푸트에게 알선한 집은 경운궁 서쪽에 바로 붙은 민계호와 민영교의 집이었다. 민계호의 집은 건물 125간, 공대(空垈) 300간, 민영교의 집은 건물 140간, 공대 150간으로 둘 모두 당당한 저택이었다. 푸트는 이 집들을 2,200달러에 구입했고, 주변 집도 몇 채 더 사들였다. 이듬해 미국 정부가 주조선 공사의 지위를 전권공사에서 변리공사 겸 총영사로 강등시키자 푸트는 이에 반발해 사직하고 귀국했다. 1887년 미국 정부는 집값과 수리비로 푸트에게 4,400달러를 지급했다. 푸트의 뒤를 이어 조지 클레이턴 포크, 휴 A. 딘스모어, 오거스틴 허드 주니어, 존 M. B. 실이 이 집에서 공사 업무를 수행했다. 영국·러시아·프랑스 등 열강이 잇달아 유럽식 공관을 짓는 동안에도 미국 공사관과 관저는 한옥 건물을 그대로 유지했다.  

 

 

 

 

을사늑약 이후 미국공사관은 영사관이 되어 1940년까지 미국인들과 미국에 유학하려는 조선인들을 지원했다. 1940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조선 내 미국인들을 다 쫓아내고 이 집을 압수했다. 해방 뒤 이 집은 다시 미국 총영사관이 되었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대사관이 되었는데, 1952년 을지로에 새 미국대사관이 준공된 뒤로는 대사관저로만 사용했다. 이후 역대 미국 대사들은 한국인들도 불편하다고 헐어버리는 한옥 건물을 수시로 개·보수해가며 꿋꿋이 버텼다. 

 

1972년, 관저 건물이 붕괴될 조짐이 나타났으며 당시 미국 대사 필립 찰스 하비브는 끝까지 건물을 살려보려 했으나 이미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비브는 새 관저도 한옥 양식으로 짓기로 결정했다. 1976년, 목재는 미국산 더글러스소나무를 쓰고 외관은 한옥, 내부는 양식으로 한 절충형 한옥 대사관저가 완공되었다. 하비브하우스 경내에는 공사관으로 썼던 한옥도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친 상태로 남아 있다. 1976년 5월 완공된 전통 한옥 기와집으로 세계 미국 대사관저 중 최초로 주재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랐다. 건축가이자 ‘도깨비 박사’로 유명한 민속학자인 조자용이 설계하고 인간문화재 이광규 대목장이 총감독을 맡았다. 1883년 고종의 명으로 건축된 것으로 알려졌고, 조선이 서양인에 매각한 최초의 부동산이며 미국 정부가 해외에 소유한 공관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곳이다.

 

현지 양식을 따른 유일한 건축물

오랫동안 도심 속 섬과 같았던 하비브 하우스가 처음으로 시민에게 문을 열었다. 하비브하우스는 전 세계 미국 대사관저 중 현지 양식을 따른 유일한 건축물이다. 지난 5월 마지막 주말인 29~30일 서울 중구청이 주관하는 ‘정동 야행(貞洞 夜行)’ 축제 행사의 하나로 정원을 보여주었으며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풍운과 애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하비브하우스 ‘ㅁ’자 구조의 한옥 관저 안뜰에는 포석정을 재현한 연못이 있다. 내부는 한옥과 서양식을 결합한 형태다. 솟을대문과 격자창, 문고리 등은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었다. 아이젠하워와 카터 등 방한한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1970년대 관저 신축 당시 미 국무부 반대를 무릅쓰고 한옥을 고집한 필립 하비브 당시 대사 이름을 따 '하비브 하우스'로도 불리고 있다. 1989년엔 전대협 소속 대학생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총 1만여평 규모로, 대사가 주거하는 관저, 옛 미 공사관 건물(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2호), 텃밭, 수영장, 정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 고종 때 건설된 옛 공사관은 2004년 복원된 것으로, 현재 미 대사관저에 손님이 오면 머무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미국 대사관에 세 번 요청한 끝에 우리 전통 양식으로 지어졌고 정원이 굉장히 아름다워 한국 국민들과 교류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개방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강화된 우호적 한미관계

리퍼트 대사는 지난 5월 30일에 편안한 트레이닝 셔츠와 반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개방시간 중 두 차례 문밖까지 나와 손님을 맞았다. 지난 3월 피습으로 다친 왼손에 붕대를 감은 리퍼트 대사는 오른손으로 시민들과 악수를 했다. 다가온 시민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도 찍었다. 안부를 묻는 말에는 “좋습니다”고 한국말로 답했다. 애완견 그릭스비를 데리고 나와 아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한옥으로 지어진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와 사랑채로 쓰이는 옛 공사관을 둘러봤다. 

 

 

 

정원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의 모형을 전시한 포토존이 마련돼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틀 동안 6시간 개방한 대사관저에는 6,000여 명의 시민이 다녀갔다. 리퍼트 대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측근 실세란 평가 때문에 부임 전부터 이목을 받았다. 그는 하비브하우스에서 광화문 대사관까지 주로 걸어서 출근한다. ‘실세’의 털털한 모습은 한국인에게 ‘반전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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