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Issue Ⅲ]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International Issue Ⅲ]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5.07.06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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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반성하지 않는 전범 국가

국제 사회 비난의 귀 닫은 아베 정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일본 아베 정부의 과거사 왜곡이 도를 넘고 있다. 독도 영유권 침탈, 종군 위안부 부정, 역사 교과서 왜곡에 이어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일본 산업유산인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추진 중이다.  




귀신 섬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둔갑할 위기

최근 일본 정부는 군함도를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의 증거물이라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군함도는 1890년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매수해 석탄을 캐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졌다. 총면적 6만3000m²에 불과한 작은 섬이지만 석탄 채광으로 인구가 늘면서 주위가 매립되면 총면적이 늘어났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을 대거 강제 징용했다. 이렇게 채취된 석탄은 일제의 침략 전쟁의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당시 이곳 탄광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이를 통해 수많은 사망자가 속출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다른 징용지와는 달리 섬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바다를 건너지 않는 한 탈출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이에 징용된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지옥 섬, 귀신 섬’이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 군함도에는 500여 명 이상의 조선인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25년부터 20년간 질식, 외상, 변사 등으로 한국인 사망자가 속출한 가운데 그 규모는 확인된 것만 해도 122명에 이른다고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위원회’ 보고서 결과 밝혀졌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침략 전쟁 종전이 선언된 이후 이 섬은 1970년대까지 채굴활동을 이어왔지만 석탄 수요가 급감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폐광되어 무인도가 전락했다. 이후 사람의 왕래가 끊어졌다가 2009년 일본이 군함도를 관광지로 개방하면서 방문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조선인 강제징용의 슬픈 역사가 새겨진 이 시설을 포함해 모두 23개의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 신청했다. 23개 시설에는 나가사키 조선소 등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노동에 시달린 현장 7곳이 들어 있다.

  현재 군함도에서 강제징용에 대한 역사와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군함도 팜플렛에는 ‘1891년부터 1974년 폐광까지 해저탄광에서 석탄을 채굴하면서 군함도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당시 아파트·극장·학교를 세워 근대문화를 꽃피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전지식 없이 군함도를 방문하면 누구라도 일제 강제징용 흔적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5일 한국인 방문단이 현장을 답사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을 때도 당시 징용자들의 숭고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전방위 외교전에 나선 대한민국 정부

2차 대전에 대한 독일의 철저한 반성과는 달리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일본 정부의 행동은 반성과 사죄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요지부동이다. 한국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6월 9일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놓고 2차 양자협의회의를 거쳤지만 양국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2차 협의가 끝난 뒤 아직 양국 간 이견이 남아있으며 향후 협의를 통해 이를 해소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협의는 우리 측의 입장이 담긴 문안을 제시하고 일본이 입장을 제시하는 순서로 진행됐고, 합의할 문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측은 문안에서 일본이 강제징용 시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서는 강제징용 역사가 명백하게 명기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담았다. 반대로 일본 측은 일본 측은 앞서 군함도 등 7개 조선인 강제 징용시설이 ‘메이지 시대 산업혁명의 증거물’이라고 주장하며 해당 시설물의 등재 기간을 대한제국 강제합병 전인 ‘1850~1910년’으로 한정하겠다는 입장을 펼친 바 있어 이날 협의에서도 이 같은 견지에서 우리 측의 문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이와 관련해 본격적인 외교전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할 세계유산위원회 개최가 7월로 다가온 가운데 윤 장관이 위원국을 상대로 전방위 설득전에 나섰다. 윤 장관은 지난 6월 13일 자그레브에서 베스나 푸시치 크로아티아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을 가졌다. 크로아티아는 세네갈, 카타르, 자메이카, 인도와 함께 세계유산위원회 부의장국이며, 한국 외교 장관의 크로아티아 방문은 1992년 수교 이후 처음이다. 윤 장관은 회담에서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추진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비롯해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한일 간 협의, 대다수 위원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분위기 등을 전달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등재 시기를 1850년에서 1910년으로 설정, 1940년대 조선인 강제노동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푸시치 장관은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크로아티아로서는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면서 "세계유산협약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한일 간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크로아티아 방문 이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인 말레이시아의 아니파 아만 외교장관과 14일께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동에서는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문제가 비중 있게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파 외교 장관은 말레이시아의 이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국 수임에 따라 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뉴욕에 머무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장관은 앞선 지난 6월 12일에도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을 방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교 장관과 한·독 외교 장관 회담을 갖고 한·독 양국관계 등 주요 지역·국제현안을 협의했다. 윤 장관은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설명하고 세계유산위원회 의장국인 독일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했다. 이에 슈타인마이어 장관은 "한국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며 세계유산협약의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한·일간 합의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담 후 윤 장관은 베를린 브리처 슈트라세에 있는 나치 강제노동 문서센터도 방문했다. 이곳은 과거 강제노동자 2천 명을 수용했던 숙소였으나, 현재는 일부가 독일 내 나치 강제동원의 역사 자료를 모아둔 곳으로 바뀌었다. 윤 장관의 이곳 방문은 부정적인 역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일본은 물론 국제사회에 발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이 산업시설 등재 명분으로 내세운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의 이면에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는 우리 입장과 맞닿는 대목이다. 윤 장관은 관람을 마치고 방문록에 "2차대전 기간 강제노역 희생자, 그리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며 미래로 향하는 독일 국민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남겼다. 일본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6월 28일부터 독일 본에서 21개 위원국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다.


일본 내 혐한, 혐중 이어 연독 정서까지 퍼져

지난 3월, 7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을 문제 삼는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후 일본 내에서 독일을 껄끄럽게 여기는 ‘연독(煙獨)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일본 주요 언론들은 전했다. ‘연독’은 거북해하다, 불편하게 여긴다는 일본어 단어인 ‘게무타가루(煙たがる)’와 독일을 합쳐 만든 말이다. 한국·중국을 향한 혐한(嫌韓), 혐중(嫌中) 정서보다 수위는 낮지만, 상대국에 뚜렷한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 독일은 한국·중국과 달리 일본과 과거사 및 영토를 둘러싼 분쟁이 없다. 오히려 2차 대전을 일으킨 국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이 독일을 껄끄러운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메르켈 총리의 최근 발언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방일 기간 중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화해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독일이 국제사회에 다시 받아들여진 것은 과거를 똑바로 마주 봤기 때문이다. 일본도 주변국과 화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예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은 일본 내에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상당수 일본인은 발언의 타당성을 가리기 전에 메르켈 총리의 연설에 무조건적 거부 반응을 보였다. 발언 직후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일본과 독일의 전쟁 이후 상황 처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일본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도 독일에 대한 각종 비난이 거세지며 반발이 계속됐다. 일본 보수 언론도 연독 정서에 편승해 ‘독일 때리기’에 나섰다. 일본 산케이 신문은 “나치와 일본을 혼동하지 말라”며 “일본은 나치 독일처럼 조직적으로 특정 인종을 박해하거나 말살하는 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최근 일본에 번지는 연독 정서가 정상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사 전문가인 다쿠쇼쿠대 사토 다케오 교수는 “독일이 전쟁의 모든 책임을 나치에 지우려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아무런 죄가 없는 현재의 독일인들조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 전쟁의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흔들림 없이 지켜 왔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운 나라지만, 심정적 거리는 멀다. 이처럼 양국은 멀고도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다. 시기와 사안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간 양국이지만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성장 시대를 맞아 양국은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침략의 역사를 왜곡하고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난과 규탄의 목소리에 일본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국제 사회 전문가들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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