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精 III] 정의 상품화
[한국의 精 III] 정의 상품화
  • 임성지 기자
  • 승인 2015.07.06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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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지 기자]




상업화되는 정, 데이 마케팅의 수단이 되다

보여주기 식의 정이 아닌 진정성 있는 정이 필요한 시점



 



데이문화는 특정일에 의미를 부여해 사랑하는 연인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을 일컫는다.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데이문화는 한국인의 정(精) 문화와 결합해 연인은 물론 남녀노소가 평소의 감사함을 나누는 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데이문화 특수를 노리는 업체 간 경쟁으로 상업화가 가속화되며 점차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정을 나누는 트렌드의 변화

프랑스 작가이자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가 “정이란 개념이 참 오묘하고 독특하다. 영어, 불어 사전을 뒤져봐도 변역할 길이 없다”고 언급했을 만큼 한국의 정 문화는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정 문화의 출발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과거부터 이웃 간에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자치적인 규약을 만들어 시행했다. 조선 중기에는 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꾀하기 위해 향약을 보급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계, 두레, 품앗이 등을 만들어 서로 교류를 했다. 공동체 의식에서 함양된 정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런 정 문화는 한국사회에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부정적 모습으로 표출되기도 했지만, 개인과 집단 간의 결속을 돈독히 해주는 역할을 했다.

  상부상조의 개념이 있던 한국의 정 문화는 현대사회로 접어들며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특정일에 맞춰 선물을 주고받는 데이문화이다.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데이문화는 한국화되며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정을 나누는 것이 특수문화로 정착했다. 

  밸런타인데이는 그리스도교의 성인 ‘발렌티노’의 축일을 기념하는 날로 연인들이 카드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이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날로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한다. 밸런타인데이가 역사적 유래에서 비롯되었다면 화이트데이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유명 제과회사에서 마시멜로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생소한 제품이라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밸런타인데이에 받은 초콜릿을 3월 14일에 마시멜로로 보답하라는 광고를 시작했다. 이후 1987년 나고야 총회에서 전국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이 화이트데이 위원회를 조직했고,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80년 화이트데이가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빼빼로데이는 1994년 부산 여중생들이 숫자 1이 네 번 겹치는 11월 11일에 친구끼리 우정을 기념하고자 빼빼로를 교환한 데서 유래되었다. 이와 같은 연인, 친구끼리의 나눔문화는 한국 특유의 정을 바탕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음을 전하는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과도한 상술로 빛바랜 ‘정’

L제과를 대표하는 과자 빼빼로는 1983년 4월 출시돼 31년간 1조 300억 원어치가 판매됐다. 하지만 2014년, 빼빼로데이를 기점으로 3개월간의 4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소소한 나눔으로 시작한 데이문화는 기념일을 이용해 수익을 창출하려는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데이 마케팅이란 매월 14일을 기념일로 정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유행하면서 성행하는 마케팅 방식으로, 매월 14일은 10대들이 주도하는 기념일이라고 해서 흔히 ‘포틴데이’라고 부른다. 이에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돈을 벌려면 청소년을 공략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0대들은 데이 마케팅의 타겟이 되고 있다.

  데이 마케팅의 문제점은 대기업부터 동네 작은 마트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포틴데이’ 마케팅이 중요한 판촉 전략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기간을 통해 기업이 단기간에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제품홍보를 위한 각종 '데이'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 현상에 한 마케팅 전문가는 “대중들이 신종 기념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중의 심리를 사업으로 연결해 특수를 누리는 비정상적인 판촉행위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L제과는 2014년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기존 500~700원짜리 ‘빼빼로’ 외에 이들 제품의 포장과 구성을 바꿔 4~10배 이상 비싼 가격에 기획상품을 내놓았다. L제과는 작은 동전지갑, 팬시다이어리, 휴대폰 액세서리 등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선물을 추가로 넣고, 포장을 달리해 10,000원 이상의 제품으로 판매했다. 이런 판촉행위에 인천에 사는 주부 신 모 씨는 “요즘은 애들끼리 생일 말고도 챙기는 날이 너무 많다”며 “친구들끼리 어울리는데 혹시 문제가 될까 봐 무슨 날만 되면 용돈을 더 챙겨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데이 마케팅의 또 다른 문제점은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유통되면서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하면 지난해 7월 루마니아에서 수입한 초콜릿에서 3cm 크기의 칼날이 발견되었으며, 11월에는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에 세균수가 기준치를 초과하기도 했다. 또한, 유명브랜드 제품을 모방한 짝퉁 초콜릿과 저가의 원료를 사용한 제품, 허위 유통기한 표시 등으로 소비자 피해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최근 OECD의 ‘2015 더 나은 삶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11개 세부 평가부문 가운데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연계’에서 최하위에 해당했다. 이처럼 점점 각박해져 가는 현실에 각종 데이마케팅을 통한 ‘보여주기식 정’이 아닌, ‘진정성 있는 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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