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Ⅱ]재중국한국교포, 공생의 길을 찾다
[Special ReportⅡ]재중국한국교포, 공생의 길을 찾다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06.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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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대한민국 2등 시민으로 전락한 재중국한국교포


노동력 우선한 정책으로 사각지대 놓이고 차별도 여전



생김새는 같은 데 말투가 다르다. 식당이나 건설공사 현장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재중국한국교포들이다. ‘조선족’으로 불리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발 딛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부터로, 한국 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지 20여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국내에서 2등 시민 혹은 미등록 체류자로 차별받고 있다. 누가 그들을 2등 시민으로 만든 것일까.

 

 

비인권적인 차별대우를 받는 재중국한국교포

  재중국한국교포, 일명 조선족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로 주로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출신이다. 우리 정부의 공식용어로는 한국계 또는 조선계 중국인이며, 중국의 공식용어로는 ‘중국조선족’이다. 이렇듯 한국 혈통을 가졌지만,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조선족은 한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2011년 ‘위대한 탄생’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백청강도 조선족이다. 그들의 부모 혹은 조부모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전후 중국으로 이주했다. 지금 조선족의 조상은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일제의 강제 이주 정책 등 자의와 타의로 중국으로 옮겨간 이들이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조선족이라는 멸시와 사기, 미등록체류자라는 낙인이었다. 한중수교 후 한국에서 살기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조선족들의 한국 입국 붐이 일게 됐다.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의 벽은 높았다. 한 조선족 회원에 따르면 한국 입국 당시 집과 땅을 팔아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는데 3개월은 브로커 비용을 갚기에도 너무 짧았다며 그 돈을 갚기 위해 부득이하게 불법체류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브로커들에게 사기를 당한 조선족 인구만 현재까지 약 3만 가구, 10만여 명 가량에 이른다.
 

  조선족들을 서럽게 하는 것은 비단 한국인 브로커 뿐만이 아니다.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은 국내에 정착한 조선족들의 설 자리를 더욱 좁아지게 만들었다. 이들은 한때 한국으로의 이주와 체류 과정에서 매우 불안정한 위치에 서게 됐다. 김대중 정부가 1999년 제정한 ‘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재외동포법)’이 실제로는 ‘노동력 관리’에 중점을 두는 법안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997년 한국 경제는 거품이 빠지면서 IMF 경제 위기에 빠졌고 그 결과 방안을 내놓은 것이 저렴한 노동력 확보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정된 것이 재외동포법이다. 물론 조선족과의 국제결혼으로 인한 피해 사례 증가 등도 재외동포법 제정에 한 몫 했다. 조선족들은 미등록체류자가 되어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없다보니 3D산업으로 몰리고 임금체불도 잦아졌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 조선족들은 산업재해는 물론 고용주들로부터 각종 모욕 등을 당하며 비인권적인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선족 단체에 따르면 2000년 들어서 정부는 미등록 조선족을 고용한 업주에게 2000~3000만 원 가량의 벌금을 물리고 조선족은 강제 추방하는 ‘인간사냥식’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조선족 방문취업 및 자진출국 길을 터주고, 조선족에 불리한 재외동포법을 개정한 이래 정부의 조선족 정책은 사실상 무관심과 배제 원칙으로 일관해왔다. 2007년부터는 연고가 없는 조선족 동포에게도 최장 5년까지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하여 취업할 수 있게 하면서 조선족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비자발급 등의 현실적인 차별은 여전한 상태다. 소수민족 통합정책을 중시하는 중국과의 외교 마찰을 고려하고 가난한 동포들의 국내 노동시장 교란을 우려해서다. 이들 조선족에 대한 사회의 시선 역시 여전히 차갑고, 보이지 않는 차별도 아직은 엄연하다. 오원춘, 박춘봉 등 최근 입길에 오른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교롭게도 조선족으로 밝혀지면서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김형식 전 서울시의회 의원 살인청부 사건의 주범도 조선족 팽모 씨였다. ‘조선족 아줌마가 없으면 서울시내 음식점 중 80%는 문 닫아야 한다’는 우스개가 무색하게 중국동포의 강력범죄 뉴스가 한번 뜨면 직업소개소에는 “조선족은 무서워서 못 쓰겠다. 차라리 돈도 적게 요구하는 동남아나 중동 사람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고 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과거 있었던 중국동포의 페스카마호 사건(선상 반란 살인), 인신매매 소재 영화 등을 거론하며 “추방하라”, “일자리를 뺏으라” 등 폄훼하는 글로 도배되는 게 현실이다.

  

저임금 노동력 관리에 초점을 맞춘 정부 정책

  한편, 이명박 정부부터는 방문취업제도를 도입해 조선족 입국 인원을 조절했다. 일할 능력을 증명하거나 제조업·농축산업 등에서 일정 기간 근무한 조선족에게만 영주권·초청권을 부여하는 등 관리 정책을 시행했다. 특히, 내국인이 기피하는 업종으로의 조선족 동포 인력을 유도하기 위한 방안이 정책들이 추진됐다. 한 조선족 단체 회원은 “지난 2012년 오원춘 사건 이후 단순노무분야 취업자에게 범죄경력증명서와 건강진단서 제출 등을 의무화하는 등 여러 관리제도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자체가 노동력 특히 저임금 노동력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내국인이 기피하는 단순노무직에 종사했고 직업에 따른 차별을 고스란히 ‘조선족’이라는 낙인과 함께 받아들이게 됐다. 
 

  이들 조선족들은 주로 취업과 자녀학업을 목적으로 들어와 가족들을 불러 국적을 취득하여 서울시 대림동, 구로동, 가리봉동. 안산시 원곡동에 집단적으로 모여 살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조선족의 국적 취득자가 현재 50만 명 넘어섰고, 불법체류자를 포함하면 60만 명에 육박한다. 그들 절반 이상이 단순노무 종사자다. 이들은 소위 3D업종에 대부분 종사하고 있는 데, 식당과 건축공사장, 파출부와 공장 등이 이에 속한다. 이 때문에 서울 구로구의 새벽 인력시장은 일거리를 찾기 위한 조선족 동포 수천 명이 매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안타까운 사고들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3년 발생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상수도관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인부 7명 중 3명이 조선족이었다. 연이어 발생한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남단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3명도 역시 조선족이었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이미 조선족들의 노동력에 크게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 현장 인부의 60~70%가 조선족으로 채워진 지도 오래전 일이다. 이처럼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들은 대개 가장 험한 일을 맡지만, 다쳐도 산재인정을 못 받고 건강보험 혜택조차 기대하기 힘든 실정에 놓여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재중국한국교포 2세들

  한편, 일자리도 일자리지만 국내 거주 조선족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의 하나는 바로 자녀 교육이다.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온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낯선 세상과 맞닥뜨려야 하고, 이들을 돌봐야 할 부모는 녹록지 않은 교육 현실에 신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족 동포들은 자신들의 힘겨운 삶을 후대에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녀 교육에 더 힘을 쏟는 모습이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청소년 센터는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곳의 수강생은 70% 이상이 조선족 청소년이다. 한국에 먼저 들어와 살고 있던 가족의 초청으로 최근 1년 내 입국한 아이가 대부분이다.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많은 동포가 한국으로 오면서 현지 동포사회의 해체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면서 “조선족 학교가 줄어드는 데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가 많다 보니 특히 젊은 세대는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조선족 아이들은 말이 안 통해 지하철조차 탈 수 없는가 하면 학교를 가려고 해도 한국어가 안 되고, 입학 절차가 복잡해 집에서 숨어 지내는 아이가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중도입국 조선족 청소년들은 한국어가 서툰 탓에 외부 생활 자체가 어렵고, 또래 집단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다. 부모가 일을 나가면 종일 집에 홀로 남겨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중도입국 청소년의 경우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국내 거주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들을 제출해야 하는 데다 학교마다 요구 서류가 달라 고충을 호소하는 조선족들이 적지 않다. 어렵사리 학교에 들어가더라도 언어 문제는 계속 발목을 잡는다. 듣고 말하는 데 문제가 없는 아이들도 읽고 쓰는 능력이 부족해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 아이들은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가 없지만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버거워한다”며 고학년일수록 그런 현상이 심하다고 전했다. 한편, 경제적인 문제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넘어온 동포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자녀 교육에도 관심을 기울이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이인 데도 학교 밖에 머무는 조선족 청소년이 상당수에 이른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는 뜻이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거주하는 만 19세 미만 조선족 동포 4만 3천890명 가운데 취학 연령대인 만 7∼18세 청소년 수는 2만 6천299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교육부 조사 결과 지난해 4월 기준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조선 동포 학생 수는 9천215명에 불과했다.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보면 세 명 중 두 명은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되고 있는 셈인데, 이마저도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부처별로 집계 방식이 다르고,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인가 학교 재학생과 불법체류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안 되는 상황에서 방치되는 동포 청소년들의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스마트폰, 인터넷, TV 등에 빠져들곤 한다. 심각한 중독 증세에 우울증까지 더해져 관련 기관의 전문적인 심리 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산업 현장으로 내몰리는 아이들도 있다. 조선족 단체 관련자는 이에 대해, 경제적 이유로 공부보다는 취업에 관심을 갖는 조선족 청소년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교육도 받지 못한 아이들이 바로 일에 뛰어들 경우 그들의 부모처럼 저임금과 고된 노동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또 “조선족 청소년의 특수성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한국과 중국 두 나라를 이어주는 다리로 성장하려면 아이들을 양국에 적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선족은 우리나라 경제와 각 산업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포용이 한국 사회의 주된 화두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족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관심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조선족에 대한 비자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따라 정부는 올해부터 재외동포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에 들어갔다. 국무총리실 산하 재외동포정책위원회는 복수국적법 개정과 함께 국내외 거주 중인 조선족을 포함한 재외동포 비자 문제 등에 대한 정책 변경을 단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중국한국교포들이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고 낯선 한국 땅에서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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