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실패의 두려움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만들다
[이슈메이커_ Cover Story] 실패의 두려움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만들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6.04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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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실패의 두려움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만들다
액션카메라의 대명사 되어 세계인 사랑받아
 
 
ⓒTechCrunch/Wikimedia Commons
ⓒTechCrunch/Wikimedia Commons

 

액션카메라는 수영이나 자전거, 카레이싱 등 아웃도어 활동을 할 때 옷과 헬멧, 운동기기에 부착해 영상을 촬영하는 미니 캠코더를 말한다. 카메라 앵글이 촬영자 시점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시청자는 직접 익스트림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프로(GoPro)’는 이러한 아웃도어 액션캠의 대명사로 꼽힌다. 후발주자들의 매서운 추격 속에서도 여전히 글로벌 액션캠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며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서핑 덕후’, 취미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다
고프로의 CEO 닉 우드먼은 ‘서핑 매니아’로 유명하다.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8살이 되던 때 친구의 방에 붙어 있는 서핑 사진을 보고 취미로 시작해 고등학교 시절에는 매일 새벽 5시부터 서핑을 하다가 학교에 등교할 정도로 푹 빠졌다고 한다. 언제나 바다에서 파도를 가르면서 살다시피 했던 그를 두고 친구들은 ‘열정이 넘치는 아이’로 기억했다. 심지어 대학교도 서핑을 즐기기 좋은 바닷가에 위치한 샌디에이고의 UC 샌디에이고로 진학할 정도였다. 대학생 시절에도 강의실과 해변을 오가는 것이 그의 주된 일상이었다.
 
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우드먼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2달러 이하의 저렴한 물건만을 취급하는 ‘엠파워올닷컴(EmpowerAll.com)’이라는 전자제품 판매업체를 설립해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에 비해 유통망 확보 실패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후 1999년에는 ‘펀버그(Funbug)’라는 IT 마케팅 기업을 설립했다. 현금 경품을 미끼로 사용자를 모으는 플랫폼이었는데, 실리콘밸리에 불었던 IT 기업 투자 열풍에 힘입어 390만 달러의 투자금을 유치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이듬해부터 닷컴버블 현상이 꺼지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다.
 
두 차례나 사업에 실패하며 좌절감을 느낀 우드먼은 재충전을 위해 5개월간 호주와 인도네시아로 서핑 여행을 떠났다. 이때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남기려고 했지만 기존의 디지털 카메라가 너무 크고 무거워 만족스러운 촬영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실제 당시만 하더라도 많은 서퍼들은 일회용 방수 카메라를 손바닥에 고무줄로 묶어 사용했는데, 카메라가 파도에 휩쓸려 분실하거나 얼굴을 맞아 부상을 당하는 일이 빈번했다. 여기서 착안해 그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게 된다. 초기 구상은 카메라 고정용 밴드 개발이었다. 제품 개발을 위해 여행지에서 조개껍질 목걸이를 사서 미국으로 돌아가 판매하며 자본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격렬한 운동을 자신의 시점으로 촬영할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기 시작했다.
 
 
고프로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어 아웃도어 액션캠의 대명사로 불린다. ⓒPixabay
고프로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체험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어 아웃도어 액션캠의 대명사로 불린다. ⓒPixabay

 

틈새시장 공략한 ‘프로슈머’
2002년 고프로를 창업한 우드먼은 2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2004년 첫 번째 제품인 ‘고프로 35mm 히어로’를 출시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코닥의 필름을 이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였지만 익스트림 스포츠 도중에도 이용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이 개량했다. 당시 미국에서 열린 스포츠 박람회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더니 일본의 기업은 100대를 발주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2006년 디지털로 전향한 ‘고프로 디지털 히어로’를 내놓았다. 사진 촬영뿐만 아니라 짧은 동영상 촬영 기능까지 갖춘 제품이었다. 이어 출시된 디지털3와 디지털5를 통해 매출도 급격히 상승했다. 그리고 2009년 풀HD 해상도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고프로 HD 히어로’가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2012년에는 전 세계 웨어러블 카메라 시장에서 95%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어 같은 해 궈 타이밍 폭스콘 회장으로부터 고프로의 지분 8.88%를 2억 달러에 넘기며 대규모 투자유치도 받았다. 보다 입지를 굳히기를 원했던 우드먼은 기업공개(IPO)와 함께 2014년 JP모건체이스를 주관사로 선정해 나스닥에도 상장했다. 당시 시가총액만도 99억 6,000만 달러에 달했는데, 이로 인해 창업 당시 3만 달러로 시작한 우드먼의 재산도 39억 달러로 증가했다. ‘가장 나이어린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라는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10년간 고프로가 시장을 잠식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다는 점이 꼽힌다. 격렬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디지털 카메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화질의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에 열광했고, 휴대도 간편하고 몸 어디에나 부착 가능한 확장성도 장점이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통해 쉽게 영상을 편집할 수 있게 하면서 동영상 플랫폼 시장의 성장과도 맞물려 인기가 치솟았다. 무엇보다 우드먼 본인이 자사 제품의 개발자이며 동시에 소비자이인 ‘프로슈머’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그는 휴일 없이 4년간 하루 18시간을 투자하는 열정을 통해 고프로의 시장 안착을 이끌어냈다. ⓒTechCrunch/Wikimedia Commons
두 번의 사업 실패 후 그는 휴일 없이 4년간 하루 18시간을 투자하는 열정을 통해 고프로의 시장 안착을 이끌어냈다. ⓒTechCrunch/Wikimedia Commons

 

‘건설적인 두려움’이 열정의 바탕이 되다
하지만 우드먼은 막연히 서핑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고 무턱대고 3번째 창업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 두 번의 실패로 인한 두려움이 있었던 그는 고프로를 창업한 뒤 마지막이라는 절실한 심정으로 숨 쉴 새도 없이 일에 몰입했다. 제품 개발을 위해 쉬는 날도 없이 하루 18시간씩 일했고 물을 마시는 30초의 시간조차 아끼기 위해 물주머니 가방까지 들고 다녔다. 초기에는 1인 기업으로 스스로 제품 디자인부터 영업, 운송과 사후관리까지 모든 업무를 직접 처리했다. 컴퓨터 자동설계 프로그램인 CAD를 다룰 줄 몰라 샘플 제품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 공장에 제작 요구를 했고,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몇 번이고 납득할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이 나올 때까지 반품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우드먼은 한 인터뷰에서 “고프로가 이전의 사업처럼 실패하거나 공중분해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며 “또다시 실패했다면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또 한번 실패하면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공포가 있었던 셈이다. 단순한 여가에서 출발한 사업 아이템이 세계 최고가 되기까지 남모를 고통과 노력이 있었음을 반증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절실함에 대해 ‘건설적인 두려움’이라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이는 자연스레 열정으로 연결되었다. 우드먼은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열정을 좇다보면 반드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열정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과거 서핑에 열정을 바쳤고, 그 열정은 내 인생의 진로를 알려줬다”고 말한 바 있다.
 
투자자들은 이와 같은 우드먼의 완벽주의를 사랑했다. 주요 투자자인 리버우드 캐피털의 마이클 마크스는 “우드먼은 엄청나게 열정적이며 저돌적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말한 것을 그대로 실현해 내었다”며 “우드먼이 이렇게 하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조만간 실현된다”고 평가했다.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간 고프로는 액션캠을 넘어 드론과 수중로봇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을 도모하며 하드웨어 기업에서 콘텐츠 기업으로의 진화를 도모하게 된다.
 
 
영역 확장을 위해 도전한 고프로의 드론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Wikimedia Commons
영역 확장을 위해 도전한 고프로의 드론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Wikimedia Commons

 

위기와 반등의 기로에 놓인 고프로
하지만 고프로는 2017년 드론 사업을 중단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해 전체 직원의 20%인 250명을 내보낼 것이라고 밝힌다. 2016년 말 1,552명이던 임직원은 지난해 말에는 800여명으로 감소했다. 사실 고프로의 위기 신호는 주가 변동을 통해 꾸준히 나타났었다. 한때 1주당 86달러에 이르렀던 주가는 꾸준히 하락을 거듭해 1주당 6달러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원천기술의 부재와 그로 인한 경쟁자들의 부상을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 기업 소니는 카메라 센서 기술을 바탕으로 액션카메라 시장에 진출해 고프로의 가장 큰 경쟁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손떨림 보정 기능에서 고프로에 비해 훨씬 좋은 성능을 보이고 화질 역시 뛰어나자 기능과 가격 경쟁력에서 고프로는 열세를 띌 수밖에 없었다. 프리미엄 제품군 외에 보급형 제품은 샤오미와 DJI 등 중국 제조사들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더욱이 스마트폰이 강력한 방수 및 방진 기능과 짐벌과 같은 다양한 액세서리로 무장해 발전하며 액션카메라의 효용 가치도 점점 떨어져만 갔다.
 
시장 축소와 경쟁사들의 등장 외에 내부적으로는 오너 경영 체제의 한계도 노출했다. 창업자인 우드먼은 위기 상황에서 회사 구조 재편이나 경쟁사 인수합병과 같은 전략이나 전문경영인 영입에 주저했다. 자신의 회사는 자신이 경영해야 한다는 판단이 위기의 악순환을 불러온 것이다.
 
업계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고프로는 지난해에는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히어로7 블랙’을 출시하며 2018년 4분기에 5개 분기 만에 처음 흑자로 돌아선 것이다. 사진과 영상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고프로 플러스’ 서비스에 집중하며 회원수를 늘리는 데도 성공했다. 더불어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조정하면서 회생 의지를 다져온 우드먼은 드론 분야와 같이 판을 벌렸던 사업 영역을 다시 줄이고 과감한 인력 감축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그는 지난 실적 공개 후 투자자들과의 콘퍼런스 콜에서 “고프로라는 브랜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며 “올해는 위기 진압이 아니라 성장에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동안의 롱런과 갑작스러운 위기, 그리고 다시금 성공한 반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프로는 성공과 위기의 기로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회광반조’가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드먼은 고프로의 슬로건인 ‘Go Pro, Be a Hero(프로처럼 하라. 영웅이 돼라)’처럼 창업 때의 열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그가 즐겨 말하는 “진화하지 않으면 죽음 밖에 없다”는 신념과 같이 고프로와 우드먼이 또 어떤 혁신을 통해 세계인들을 만나게 될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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