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Focus] 기초학문의 위기, “문송합니다!”
[Social Focus] 기초학문의 위기, “문송합니다!”
  • 김문정 기자
  • 승인 2015.05.18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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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문정 기자]



“문송합니다!”


인문학과 통폐합, 누구를 위한 것인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요즘 인문계 출신들의 취업난을 자조적·사회풍자적으로 표현한 유행어다. 또한 기업들이 단기적 성과를 위해 인문계 직무에 이공계를 배치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인구론(인문계 출신 90%가 논다)'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대학 진학이 쉽지 않고 취업 시장에서 홀대받는 인문계의 비애를 자학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여기에 정부와 대학마저 나서 이들의 설 자리를 앗고 있다. 



기초학문 위협하는 대학구조조정

 

  교육부가 지난 2월에 대학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다수의 ‘강한’ 대학을 육성하는 특성화 사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산업수요’에 따라 입학정원 재조정을 하는 대학에 예산을 대폭 지원하겠다는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매치가 되지 않는데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며 교육제도의 취업중심 재조정을 시사했다. 전국의 대학, 특히 기초학문과 예술계 학과가 이에 따른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정책에 발맞춰 각 대학에서 학사구조 개편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중앙대는 지난달 26일 학과제 폐지 계획을 발표했다가 반발이 이어지자 비인기학과를 단과대학 단위로 모집하는 등 다소 완화한 학사조정안을 내놨다. 중앙대를 시작으로 이화여대와 건국대, 한국외대 등도 학사구조 개정안을 내놓았다. 대학별로 개정 내용에 차이가 있지만, 결국은 취업에 유리한 인기학과를 늘리고, 비인기학과를 통폐합해 비중을 낮춘다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국가가 앞장서 잘못된 풍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 방침은 학문 단위 특성에 관한 고려 없이 ‘취업률’을 지표로 삼아 인문·예술계열이 주된 구조조정 대상이 된다는 비판에도 직면해 있다.

 

 

문(文)·사(史)·철(哲)은 왜 기피되나

 

  문과 기피, 이과 선호가 ‘시대적 흐름’이 된 것은 인문계의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인문·사회계열 졸업생 가운데 3명 중 1명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이 현장에 바로 투입시킬 수 있는 기술형 인재를 선호하게 되면서 70~80%를 이공계에서 뽑고, 현대자동차는 공채에서 인문계를 배제하는 등 인문계 채용을 확 줄인 탓이다. 

 

  인문계 취업이 최악을 기록하면서 문과 경시 풍조가 커지고 있다. 이미 강남권 자사고는 이과 비중이 월등히 높다. 휘문고는 고3 문과와 이과반 비율이 4:10, 세화고는 4:8로 이과가 압도적이다. 송파구 정신여고는 여고 특성상 13개 반 중 3반이 이과였는데 올해 고2부터 이과가 4반으로 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나타났던 것과 비교하면 대반전이다. 

 

▲기초학문 위주의 구조조정에 대한 항의의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걸려있다.

 

 

 

학생들 거리로 나와 시위, 연예인들도 가세

 

  한강대교 고공 시위 등 구조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극렬저항은 과거 노사투쟁의 또 다른 버전으로 인식될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며 외부인들도 중앙대 구조조정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중앙대 측은 이번 구조조정 반대 시위과정에서 교직원에게 폭언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철학과 김주식 씨(전 학생회 교육국장)를 4월 19일 자로 퇴학시키는 등 구조조정 반대 움직임에 강하게 맞서왔다. 

 

  “안녕하세요. 건국대학교 영화과 7기 연기전공 최민호입니다. 영화과와 영상과의 통합을 반대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26일 건국대 영화과 7기 정시현의 인스타그램에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최민호의 글이 올라왔다.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학생들이 학과 통합에 아이돌 그룹 멤버 등 연예인도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배우 고경표도 자신의 SNS에 두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피켓을 들고 건국대 영화과 통폐합 반대 시위에 나선 자신과 배우 신주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기초학문 소홀히 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어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은 미래를 이끌 상상력의 토양이자 응용학문의 기초체력인 만큼 국가에서도 기업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이다. 구글이 신입사원 중 50%를 인문학 전공자로 채우고, IBM이 인문학 전공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위기를 치유하는 가치관, 통일을 바람직하게 이룩하는 역사 창조의 지침, 대외적인 경쟁력을 가진 선진기술을 얻으려면, 기초학문 여러 분야에서 우리 스스로 심오한 연구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대학들이 기초학문 학과를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가운데, 탄탄한 기초학문에 대한 지원과 수도권과 지방의 편차 없이 고르게 발달한 대학들에 힘입어 잇달아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는 일본에게서 배워야할 시사점도 크다. 

 

  보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국가경쟁력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기초학문의 중요성 제고와 학생들과 교수들의 자율 학습, 교수권이 보장되는 성숙한 대학 문화 양성이 시급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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