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잃은 청년들,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희망 잃은 청년들,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 김동원 기자
  • 승인 2015.04.30 0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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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동원 기자]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 영국의 차브, 그리고 한국의 20대


 

우리나라 청년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인 ‘달관세대’가 주목받고 있다. 달관세대란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 없는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몸도 마음도 지친 청년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기보다는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여가생활을 즐기고 싶어 한다. 이러한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유사하다는 평이다.

 

 

 

일본 사토리 세대


  달관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하게 여겨지는데 여기서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의미이다. 마치 득도한 듯 욕망을 억제하며 돈벌이는 물론 출세 등 경쟁적 요소를 가진 것들에 관심이 없는 세대를 뜻한다. 이들은 저렴한 브랜드에서 옷을 구입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값싼 런치세트를 먹는다. 밤에는 친구 집에서 식사를 하며 반주하는 정도이다. 모든 관계들 중 친구가 가장 중요하며 과거 자신의 부모와 선배 세대가 열광했던 명품과 자동차 구입에는 관심이 없다.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은 미래에 대한 거창한 야망이 없고 안분지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위와 같은 사토리 세대들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국민 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서 20대의 생활만족도는 78.4%로 나타나 2010년 생활만족도인 70.5% 보다 증가했다. 하지만 일본의 청년 대다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도 저조한데다 급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나라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은데 젊은이들은 행복한 기묘한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사토리 세대들이 소박한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2010년에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평소 생활하면서 고민이나 불안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20대의 63.1%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 수치는 1980년대 후반 40%였지만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0년대 전반부터 상승했다. 2008년 세계 청년 의식조사에 따르면 일본 젊은이들의 자국 사회 만족도는 43.9%로, 미국과 영국 젊은이들이 각각 67.6%, 61.2%로 나타난 것과 비교하면 20% 가량 낮다. 정치적 무력감은 더 커서 ‘자신의 힘으로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고등학생의 비율은 미국의 2배인 80%에 달한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신은 직접 행동으로도 나타나 35세 이하 젊은이 중 약 절반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는 통계결과가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지만 현재 생활에는 만족하며 사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토리 세대에 관하여 전 교토대학교 오사와 마사치 교수는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대답한다”며 “인간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때 ‘지금 불행하다’고 느낀다고 답한다”고 설명했다. 미래에 희망이 남아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창 일본의 경제 성장이 지속되던 1970년대 20대의 생활 만족도는 50%에 불과했지만 사회 만족도는 1988년 거품경제 붕괴 직전 51.3%로 절정에 달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사토리 세대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거두고 자신의 작은 세계에 집중하며 사는 것을 택한 셈이다.


  이처럼 안분지족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토리 세대의 미래는 어둡다. 현재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간다. 일본에서는 굳이 정사원이 되지 않아도 혼자서 어느 정도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무리해서 정사원이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취약한 실업 대책과 주택 대책,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는 향후 젊은이들에게 막중한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토리 세대보다 더 비관적인 달관세대


  사토리 세대가 득도라는 의미에 가깝다면 달관세대를 바라보는 젊은 층의 시선은 포기에 가깝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대학생 및 취업준비생, 직장인 115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에서 탄생한 사토리세대의 뜻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뜻에 가장 가깝게 해석된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절망, 체념’이 47.8%, ‘사회적 포기’가 35.0%로 부정적인 해석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안분지족’(14.8%), ‘효율적’(2.4%) 같은 긍정적 해석에 대한 답변은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달관세대는 득도보다 포기에 가깝게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들은 달관세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어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달관세대가 처한 상황처럼 장기적으로 정규직 취업이 안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비정규직 취업이나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응답이 52.4%로 가장 많았다. 취직하기도 어렵고, 종신직장이 없으며, 개인의 삶을 포기하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과 희생,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고통스럽게 살기보다는 적은 수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여가생활을 즐기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우리나라 청년들은 주어진 현실과 미래를 포기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해 달관세대에 입성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달관세대는 사토리 세대와 의미하는 바가 비슷하더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비교해보면 청년들에게 미칠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최저임금이 높아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계유지가 가능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제적 구조로는 젊은 층의 생계유지조차 불가하다.


  이러한 달관세대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기성세대의 한 연구소장은 “성공한 사람들은 남모르는 고민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들이다”라며 “이 세상에는 그림자가 없는 빛은 없다. 오늘의 시련과 아픔이 내일의 행복이다. 우리들의 기성세대, 부모들은 이러한 생각과 신념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달관세대에게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기성세대나 달관세대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와 내 가정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행복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것을 위하여 본인의 역할과 행동에 대해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라며 충고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생각을 젊은 층에게 강요하기에는 위험이 따른다. 청년들이 미래를 포기하고 달관세대를 택한 데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청년들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을 믿지 않는다.


  지난해 소득별 교육비 지출액을 분석한 결과 고소득층의 지출액이 저소득층의 8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가 교육비로 쓴 금액은 월평균 52만9,400원으로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 6만6,800원의 7.93배에 달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어린 학생들의 교육부터 양극화 계층 현상이 분명하다. 취업에서는 인맥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인사 담당자 207명을 대상으로 '채용 시 주변에 인재 소개 및 추천을 요청한 경험'을 설문한 결과, 20.7%가 '있다'고 답했다. 이는 진급과도 연계되어 인맥이 있는 사원이 그렇지 못한 사원보다 진급이 잘되는 현상은 어느 기업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돈과 인맥, 배경을 갖추지 못한 청년들은 앞으로 미래에 희망조차 갖기 힘들다.

 


영국 차브로 변질될 우려 커


  지난 2월 개봉해 관객 400만 명이상을 동원한 영화 ‘킹스맨: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서로 다른 계급의 두 영국 남성이 등장한다. 베테랑 비밀정보요원은 맞춤 정장과 절도 있는 동작, 세련된 화술을 갖춘 귀족출신이지만, 신참내기 비밀정보요원은 노동 계급 출신으로 트레이닝복을 입고 항상 삐딱하게 야구모자를 쓴 채 건들거리며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소동을 일으킨다. 영화에 등장하는 신참내기 비밀정보요원과 같은 청년을 영국에서는 ‘차브(Chav)’라 칭한다. 차브는 19세기 ‘어린이’를 의미하는 집시언어에서 유래됐지만 지금은 ‘더러운 공영주택에 살면서 정부의 복지예산을 소비하는 하층계급을’를 의미한다. 영국의 주류사회는 이러한 차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언론은 노동계급 가정에서 발생한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자격이 없는 차브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 바쁘고, 차브가 많이 사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동네’를 선정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존재한다.


  그러나 차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불평등의 산물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1979년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 정권을 잡은 후부터 영국 노동계급의 기반이었던 제조업과 광산업이 몰락하고 노동조합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제조업이 몰락한 자리는 저임금의 서비스업으로 대체됐는데 이마저도 일자리는 충분치 않았고 노조도 힘을 잃었다. 정부가 공영주택 세입자에게 집을 살 권리를 주는 제도인 구매권을 도입하자, 형편이 그나마 나은 가정들이 집을 팔고 떠나면서 공영주택에는 극빈 가구들이 모이게 됐다. 이 주택들은 차브 집단의 형성과 연결됐고 영국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분리는 더욱 심화됐다. 1996년 하위 10%의 세 자녀 가구 소득은 1979년보다 625파운드가 줄었으며 1979년 500만 명이었던 빈곤층은 1992년 1,4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하층 노동계급이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란 어려워졌다. 2000년대 영국의 대학진학률은 상위 15%의 아이들이 하위 40%의 아이들보다 7배 높았다. 게다가 최근 정직원 채용의 경우 ‘채용 전 인턴제도’가 확대되면서 급여 없는 인턴기간을 버틸 수 없는 하층 노동계급 젊은이들은 사회진출이 더 어려워졌다.

 

  위와 같은 영국의 차브 문제는 우리나라의 달관세대가 지속될 경우 파장될 가능성이 있는 사례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현재 젊은 층에 번져가는 달관세대가 이어진다면 영국처럼 사회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고, 이에 경제적 하층계층에 속하는 우리나라의 차브 집단이 생길 우려가 크다. 그렇다고 영국의 차브처럼 달관세대를 비판할 수만은 없다. 청년들이 달관세대에 입성하게 된 계기는 청년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성세대를 비롯한 사회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청년이 미래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달관세대를 바로잡지 않고, 괄시하거나 방치해서는 영국의 차브가 증명하듯 밝은 미래를 전망하기 힘들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을 구제할 시급한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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