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의 길잡이가 되다
불안한 삶의 길잡이가 되다
  • 임성지 기자
  • 승인 2015.04.21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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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지 기자]

불안한 삶의 길잡이가 되다

“무속을 통해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무속은 미신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애환이었다. 수백 년 동안 국가를 위해 올리는 제사상이나 정한수 앞에 서 계신 어머니는 누구나 한번쯤 본 듯한 장면이다. 무속은 우리의 생활 속 깊숙이 뿌리 잡아 의식과 문화 형성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전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우리들은 ‘무속’의 개념과 가치를 피상적으로만 인식하고, 낡은 전통 사회의 잔재나 근거 없는 미신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장군암 서호정 선생은 이익을 우선 시 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무속 세계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무속 신앙이 대중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장군암, 무속의 편견을 없애다
무속적 사고와 행위, 샤머니즘적 의식은 오랜 세월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해 왔다. 무속의 역사는 분명하게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우리나라 5,000년 역사 중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무속은 굿의 잘못된 인식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무속과 굿을 떠올리면 만만치 않은 비용으로 대중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장군암 서호정 선생은 굿은 조상님들께 대접하는 의식이라고 말하며, 각 사람들에게 적합한 방법을 제안하고 서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 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굿은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돈을 들여 벌인다 해서 덕이 더 많이 들어온다 할 수 없습니다. 본인들을 위해 신들과 조상님들에게 온 마음 정성을 다해 기도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장군암 서호정 선생은 내림 굿에 대해 남다른 확고한 철학을 내비추고 있다. 내림굿이란 무병을 앓거나 몸에 신기(神氣)가 있는 사람에게 신을 내리게 하고 신을 받는 굿으로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야 하므로 많은 고민과 상담을 통해 신중히 결정해야 할 일 중에 하나이다. 서 선생은 “신을 모셔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 있다. 모셔야 할 사람은 피해 갈 수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피해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장군암 서호정 선생은 1999년에 신을 받아들였다. 신을 받기 전 동대문에서 큰 사업을 하며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살던 그는 사람의 미래를 보게 되는 경험을 했다.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 이었던 그였지만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고 항상 두통에 시달리다 신을 모시고 무속인의 길로 들어섰다. 흔히 무속인이라 하면 선입견, 편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신의 대변인이라는 이유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무속인도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호정 선생은 무속인의 긍지를 가지고 진정성 있는 기도를 통해 사회의 통념이나 편견을 깨고자 한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떳떳한 삶을 살다.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일요일 마다 교회를 나가던 일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겐 일상이 아니었다. 어느 덧 방울과 부채를 들고 신들과 소통하며 삶에 지친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 주기시작한지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 긴 시간이 있기까지 서호정 선생은 신의 제자가 되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내가 신을 모심으로 인해 가족들이 괜한 편견으로 인해 부당함을 받지는 않을까, 주변의 인식이 과연 내 자식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나를 통해 보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습니다”라며 그 당시를 회상했다. 더불어 새로운 삶을 걸어야 하는 고된 길로 들어섬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에 나날을 보냈던 그였다.

 

 

 


  하지만 신을 모신다는 것은 홀로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무거운 짐이 아니었다. 감출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결정은 아이들이 아니라면 내릴 수 없는 그의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고비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이 자신의 말 한마디에 바뀔 수 있음을 책임 져야 한다는 중압감이다. 원래의 익숙한 길에서 내려와 무속의 길을 걷는 것, 이것은 그에게 너무 새로운 길이었다.

 

  그는 신의 길에 들어선지 얼마 안 되고 손님이 찾아올 때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나답지 않게 끊임없이 말 하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신의 대변인으로 살겠노라 약속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도 신을 모시기만 하고 다른 길을 걷기도 했었다. 하지만 신의 세계에서 그것은 허락될 수 없는 일이었다.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때서야 신은 절대로 두 가지의 길을 안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서호정 선생은 오로지 신의 대변인 길만을 걷기로 맹세하고 다짐했다. 많은 노력을 들여 다시 법당에 선 그는 예전만큼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서호정 선생 집에는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큰 변화가 있다. 늦둥이 아들이 하나 더 생겼으며 현재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사춘기가 시작되던 큰 아들은 자신이 원했던 요리사란 직업을 가지고 대기업 호텔에 취업도 했다. 사회의 구성원이 될 줄 알았던 큰 딸은 자신의 사업을 펼치고 가정을 꾸린 후 예쁜 딸까지 낳았다. 현재 장군암 서호정 선생의 집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서 선생에게 물어보고 의논하는 게 당연시 되었다. 처음 걱정과는 달리 너무 잘 자라주는 자녀들을 보며 그는 신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더불어 그에게도 목표가 생겼다. “신을 모시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진솔한 마음으로 말씀을 옮겨 많은 사람들과 신의 연결고리가 되는 무속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나아가 무속신앙을 종교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진실 된 무속인들을 통해 대중이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각이 변화된다면 무속신앙이 종교의 한 집단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신을 모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장군암 서호정 선생. 그의 바람처럼 귀천을 가리지 않고 소외된 이웃에게 진정어린 마음으로 다가가 신명을 행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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