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혁신의 가치로 올라선 네트워크 분야 리더
[이슈메이커] 혁신의 가치로 올라선 네트워크 분야 리더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4.12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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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혁신의 가치로 올라선 네트워크 분야 리더
난독증 극복 통해 기업가의 모범답안 되다
 
 
ⓒFlicker/Oracle PR
ⓒFlicker/Oracle PR

 

1984년 설립된 시스코시스템즈는 네트워킹 장비 분야에서 가장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동안 고유 기술력은 물론 수많은 인수합병을 기반으로 한 조직 혁신을 바탕으로 기업 시장에서부터 일반 사용자와 통신업체 네트워크까지 폭넓은 시장을 장악하며 성장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 성공신화의 중심에는 1995년 CEO로 부임해 20년간 회사를 이끌어온 존 챔버스의 리더십이 존재한다.
 
호환성 이슈로 출발한 시스코
시스코는 라우터(Router)와 스위칭 허브(Switching Hub) 등의 네트워킹 장비를 비롯해 기업을 위한 통합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과 통신사업자를 위한 네트워크 솔루션을 제공하는 네트워킹 전문 기업이다. 1984년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레오나드 보삭과 경영대학원의 컴퓨터 시설 관리 책임자이던 샌디 러너가 서로 다른 컴퓨터 시스템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라우터를 개발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대학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뒤 직접 ‘시스코 시스템즈(Cisco Systems)’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한다.
 
1986년 시스코 최초의 멀티 프로토콜 라우터인 ‘어드밴스드 게이트웨이 서버(AGS)’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하게 되는데,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화와 기업들이 대형 컴퓨터 시스템뿐만 아니라 회사 내 직원들의 PC들을 연결시키는 데 관심을 갖게 되며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요가 넘쳐나는 시장을 미리 예측한 ‘트렌드 세터’였던 셈이다.
시스코는 수익성이 점차 높아지며 1987년에는 벤처 캐피탈의 투자를 받고 1990년에는 나스닥에 상장하며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1990년 신임 경영진과의 불화로 보삭와 러너가 지분 66%를 1억 7천만 달러에 처분하고 회사를 떠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시스코의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1993년에는 매출 7억 1,400만 달러와 라우터 판매 10만대를 돌파하는 기록을 달성하고 이듬해 멀티 프로토콜 라우터 부문의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이처럼 연간 수익이 20억 달러가 넘는 대기업이 된 시스코의 다음 목표는 사업 다각화였다. 이미 확산된 인터넷의 전파는 모든 종류의 네트워크에 대한 네트워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으며 기업들 라우터 이상의 기술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 낸 인물이 존 챔버스 CEO였다. 그는 기술력에만 의존해 제품을 팔아온 기술자들의 회사에 ‘세일즈 정신’을 불어넣기 시작했고, ‘시스코 방식’이라 불리는 적극적인 합병 및 매수 전략으로 시스코를 세계 네트워크 제국의 지배자로 변모시켰다.
 
 
씨스코는 전 세계 380개의 지사, 7만 여명의 직원을 보유하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Cisco
씨스코는 전 세계 380개의 지사, 7만 여명의 직원을 보유하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Cisco

 

인수합병 전략 통해 폭발적 성장 이끌어
1980년대 IBM에서 영업 사원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챔버스는 미니컴퓨터 제조업체였던 왕 연구소에서 해외사업을 담당한 뒤 1991년 시스코에 입사했다. 1994년 글로벌 생산담당 최고 부사장을 거쳐 1995년 CEO로 임명된 그는 내부 시스템 정비를 시작으로 개혁을 실행했다. 경직된 회사 분위기를 바꾸고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시스코의 주요 네트워킹 제품군을 중심으로 5개 사업 단위로 회사를 분화한 뒤 각 사업 단위에 부사장급 임원을 임명했다. 이는 의사결정의 단계를 줄이고 경영권 분산으로 이어져 시스코의 유연성을 높이고 시바지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한 전화 통신 장비와 데이터, 비디오, 음성, 통합 전송 분야로의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통신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사업 분야를 개척하는 등의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챔버스 부임 1년 뒤인 1996년 시스코는 세계 네트워킹 시장의 21.9%를 차지했다. 라우터 시장의 80%가 시스코의 제품이었고 수익이 41억 달러에 달했다. 1999년에는 포츈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25곳 중 하나로 선택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8위로 꼽혔다. 2000년 3월에는 시장 가치가 총액 5,310억 달러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가가 가장 높은 주식이었다.
 
이와 함께 챔버스가 시도한 것이 인수합병 전략이었다. 그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며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외부의 아이디어 유입을 즐겼다. 1999년 8월 시스코는 데이터를 기존의 구리선 전화 네트워크가 아닌 광 네트워크로 보낼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한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세렌트’를 7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실리콘밸리를 마치 연구소처럼 활용했다. 1993부터 2001년까지 시스코가 인수한 기업 숫자만도 70여 개에 달하고, 1999년과 2000년에는 한 달에 2개꼴로 회사를 인수하면서 연구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했다. 이러한 사업 다각화를 통해 2009년 시스코는 동영상 분야에서 35억 달러, 협업 분야에서 10억 달러, 소비자 시장에서 10억 달러 등의 매출을 올리면서 고객층과 제품 포트폴리오 폭을 확대시켜 나갔다.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이후에도 7년간 매출은 200%, 이익은 300%가 성장했다. 그리고 시스코는 현재 연 매출 492억 달러(2016년 기준)와 전 세계 380개의 지사, 7만 여명의 직원을 보유하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존 챔버스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며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강력한 인수합병 전략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나갔다. ⓒCisco
존 챔버스는 “큰 기업이 작은 기업을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느린 기업을 언제나 이긴다”며 경쟁 우위에 서기 위한 강력한 인수합병 전략으로 기업을 성장시켜 나갔다. ⓒCisco

 

‘읽는 것’보다 ‘듣는 것’ 좋아하는 소통의 왕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있어서 무엇보다 챔버스가 중시했던 것은 소비자였다. 그는 단순히 덩치를 키우기 보다는 소비자가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사업의 방향을 결정했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기술을 갖추기 위한 솔루션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이를 보유한 기업을 찾아 합병에 나선 것이 그 방법 중 하나였던 셈이다. 이는 연구개발과 인수합병을 결합한 ‘인수개발(A&D)’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인수개발은 자사에 부족한 기술이나 인재를 얻기 위한 작업으로 완성된 기술을 가져오는 인수합병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외부 아이디어와 기업을 사와서 이를 기존 시스코의 시스템과 문화에 접목시키는 전략이다.
 
놀라운 점은 다른 기업들이 흔히 겪는 합병·매수 후유증을 크게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시스코의 인수합병 전략은 여러 경영대학원에서 우수 사례로 소개되고 있기도 하다. 기업 간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챔버스는 엄격한 평가기준 및 가치평가 과정, 통함 및 유지전략을 수립했으며 꼭 필요한 기업이라면 인수를 위해 드는 비용도 아끼지 않았다.
전략적인 측면 이외에 챔버스 특유의 리더십도 성공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기업 문화를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인수 과정 자체를 조직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더불어 내부적으로도 소통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하고 시너지와 협동 정신을 요구했다. 이를 위해 경영진과 평사원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도록 했으며 생일을 맞은 직원 전원과 아침 식사를 하는 ‘생일 아침’ 행사를 만들기도 했다.
 
챔버스 자신 역시 일주일에 30시간 이상을 고객 응대에 투자할 정도로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했다. 새로운 고객을 만날 때마다 자기 전화번호를 주고서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말하고 새벽 2시에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챔버스는 젊은 시절 IBM 채용 담당자가 전했던 “영업이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파는 거라네”라는 말을 잊지 않고 회장이 된 이후에도 근성 있는 영업 전략으로 회사를 함께 성장시켜나갔다.
 
 
난독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놀림을 받아야 했던 챔버스는 치열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한 뒤 ‘소통의 왕’으로 등극했다. ⓒWikimedia Commons
난독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놀림을 받아야 했던 챔버스는 치열한 노력으로 이를 극복한 뒤 ‘소통의 왕’으로 등극했다. ⓒWikimedia Commons

 

CEO들이 가장 존경하는 CEO
이처럼 ‘소통의 왕’으로 불리는 챔버스이지만 그는 난독증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놀림을 받아야 했다. 이는 CEO로 승진할 때까지 꽁꽁 숨겨두었던 약점이기도 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해왔다. 일례로 그는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는 모두 서류 대신 머리에 기억하고, 공개 강연도 메모 없이 외워 진행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서류보다는 구두로 보고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이메일 역시 텍스트보다는 음성을 더 좋아했다.
 
자신의 난독증을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게 된 챔버스는 같은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위치에 올랐다. 오히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리더들이 존경하는 진정한 ‘리더들의 리더’가 된 것이다. 챔버스는 2015년 CEO 자리를 척 로빈스에게 넘겼는데, 당시 시스코가 제작한 기념 동영상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은 “한 기업의 리더로서만 존경할 뿐 아니라 회사의 기술을 사회와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존경한다”고 말했으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내가 만나본 가장 리더십이 뛰어나고 사람들을 고무시키는데 엄청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CEO 퇴임 이후 기업의 회장직을 유지하던 챔버스는 2017년 연임을 포기하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시스코를 홀연히 떠났다. CEO 선임 당시 연매출 12억 달러였던 기업을 480억 달러 규모로 키운 결과에 비해 비교적 조용히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성공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심사숙고한 끝에 웨스트버지니아에 있는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챔버스는 은퇴 이후에도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실리콘밸리의 핵심교훈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해에는 ‘도트 연결: 스타트업 세계에서의 리더십 교훈’이라는 책을 저술하며 자신과 같은 길을 따르기를 원하는 창업자들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영감을 던지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1세대의 주역으로 IT 산업의 중흥기를 이끈 뒤 인생의 제2막을 열기 시작한 챔버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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