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일제에 항거한 태백산 호랑이
[이슈메이커] 일제에 항거한 태백산 호랑이
  • 임성지 기자
  • 승인 2019.03.29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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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임성지 기자]

일제에 항거한 태백산 호랑이
민중의 의병전쟁 참여에 기폭제가 되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국방부는 영덕과 동해안에서 활약했던 의병장 신돌석 장군을 호랑이 독립운동자로 지목했다. 국방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설한 한국광복군이 국군의 출발점으로 여겨왔는데 최근에는 일제에 항거한 의병까지 국군의 뿌리로 확대하고 있다. 이미 해군에서는 아홉 번째 1,800t급 장수함을 ‘신돌석함’으로 명명한 바 있다. 출생지인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을 위시한 여러 지역에서 설화로도 전해지는 신돌석. 평민 출신 의병장으로만 알려진 신돌석에 대해 이슈메이커에서 재조명했다.
 
19세의 나이에 의병에 참여하다
설화에 의하면 신돌석은 평범한 농가에 태어난 농부이지만 고래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천서를 얻게 되어 비범한 장수로 변모하게 된다고 한다. 의협심 많은 신돌석은 일제에 항거해 많은 공적을 세우지만, 부하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고 한다. 그의 설화는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 김덕령의 생애와도 비교된다. 그의 일대기는 항일투쟁의 전설적인 영웅과 결부된 좋은 예로 ‘태백산 호랑이’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설화부터 애니메이션, 그리고 해군 잠수함의 명명까지 짧은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업적과 의의는 무엇일까.
 
신돌석은 1982년 경북 영해군 남면 북평리에서 신석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고려 시대 개국공신인 신숭겸의 후예였지만, 조선 시대에는 중인 신분으로 영해부 아전을 이어왔다. 어려운 환경에도 신돌석은 마을 서당에서 글을 익히고 15세가 되자 전국 각지로 지사, 명인을 찾아다니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던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이를 일제가 탄압하자 신돌석은 자신의 반일 민족의식을 확고하게 다져갔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신돌석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경상북도 영해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울진 장흥관에서 일본군선 9척을 파괴하고, 6월에는 1,000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원주에서 일본군들을 습격했으며, 이어서 삼척, 강릉, 양양, 간성 등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해 승리했다. 신돌석이 이끄는 의병부대는 11월 경북 일월산, 백암산, 대돈산, 등대산 등지로 남하해 활동했고, 문경 일대에서 활약하던 이강년 의병부대와 연합작전을 추진했다.
 
11월 11일 신돌석은 이강년 의병부대는 연합해 순흥을 공략한 뒤, 그 소식을 듣고 대구로부터 일본군 지원부대가 진격해 오자 즉시 울진방면으로 후퇴하는 등 신출귀몰한 무력 투쟁을 전개했다. 1907년에는 울진 수동으로 돌아와 다시 의병을 증모했고, 그 병력으로 영덕의 관공서를 습격했다. 또한 일본군이 청송에 집결해 있을 때 이를 공격하기 위해 의병을 가까운 청부역으로 진군시켰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의병을 자청해 약 3,000여 명이 증가하였다. 일본군이 강력한 의병 소식에 영양의 주곡으로 퇴각하자 이를 공격하여 격퇴시켰다. 또한, 경주의 대산성에서 연일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청하로부터 조현에 이르러서도 적과 싸워 이겼다. 서울 진공을 위해 이인영을 중심으로 13도 의병이 연합해 양주에 집결했을 당시 신돌석도 경상도 의병을 대표해 의병 1,000여명과 양주에 이르렀지만, 의병 재편 과정에서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제외되었고 결국 서울 진공 작전은 지도력과 계획 미흡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후 영해로 돌아와 의병으로 활동하던 그는 부하 의병인 김상열 형제에 의해 1908년 11월 18일 31세의 나이로 순국하게 된다.
 
민중의 의병장, 신돌석
평민출신 의병장인 신돌석 활약은 당시 민중들에게 항일 민족의식과 민중의식을 고양시켰다. 또한, 그의 활약으로 이후 민중들의 의병 활동에 기폭제가 되었다. 신돌석은 훌륭한 지도력과 농민들과의 소통으로 여러 곳에서 환대를 받고 그의 의병부대에 대해 호응하는 자가 많았다. 신돌석은 전투에 있어 의병을 소부대 단위로 편성, 유격전을 수행해 일본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어려운 상황에도 국가를 구하려는 신돌석의 의지는 고스란히 민중에서 스며들어 설화로 구전되기까지 했다. 이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8년 신돌석 의병장의 순국 110주기 추모제향이 유적지 충의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신돌석의 후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그리고 잠수함 신돌석함에 승선해 대한민국의 영해를 지키는 해군 부대원들도 참석했다.
 
1905년 평해 월송정에 올라 기울어가는 나라를 걱정한 의병장 신돌석. 애국충정을 향한 그의 의지를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기억해야 할 때이다.
 
-누(樓)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고/낙목이 가로놓인 조국을 탄식하네/남아 27세에 이룬 일이 무엇인가/문뜩 가을바람이 부니 감개만 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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