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관객과 호흡하며 성장해 온 한국영화
[이슈메이커] 관객과 호흡하며 성장해 온 한국영화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3.05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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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관객과 호흡하며 성장해 온 한국영화

새로운 르네상스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 추진

 

ⓒPexel
ⓒPexel

 

한국영화가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세월 동안 한국영화는 역사적 흐름과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다양한 장르와 규모의 영화들이 등장하며 관객들과 함께 희로애락을 공유하고 성장해왔다. 이제 한국의 영화시장은 2013년을 기점으로 2조원 대 매출과 2억 명 이상의 관객수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고,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도 50% 이상을 유지하는 세계적인 영화 강국이 되었다.

 

‘의리적 구토’로 시작된 한국영화

한국영상자료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영화가 상영된 것은 1901년 엘리어스 버튼 홈스라는 여행가가 경성 일대를 촬영하고 이를 고종 황제 앞에서 상영한 것이라고 한다. 대중에게 널리 영화가 공개된 것은 1903년 동대문 안에 위치한 한성전기회사 기계 창고의 상영이었다. 이후 1910년 경성 내 일본인 지역에 영화상영관이 설립되고, 1912년 우미관이 조선인을 대상으로 영화를 정기 상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9년 10월 27일, 조선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됐다. 영화인협회는 이날을 ‘영화의 날’로 지정하고 1963년부터 매년 기념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올해를 한국영화 100주년의 해로 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의리적 구토’는 연극 공연 중 일부 장면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연쇄극’이었다는 한계는 있다. 최초의 극영화는 1923년 윤백남이 만든 저축 계몽영화 ‘월하의 맹서’다. 이후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이 크게 성공했고, 1935년 첫 발성영화 ‘춘향전’이 제작됐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의 한국영화 면세조치로 영화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1960년 4·19 혁명 이후 군사정변이 일어나기 전 1년은 한국영화의 해방구로 평가받는다. 김기영의 ‘하녀’, 유현목의 ‘오발탄’ 등의 걸작들도 이때 탄생했다. 하지만 1970년대 TV 보급 확산과 군사 정권의 검열 강화로 영화계는 이때부터 1990년대 초까지 20년 동안 장기불황을 겪게 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1990년대 초 비디오 제조사인 대우와 삼성 같은 대기업이 영화산업에 진입하면서 영화 시장은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된다. 김의석 감독의 ‘결혼이야기’(1992)를 시작으로 ‘기획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고, 1998년에는 처음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 영화 관람 문화가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쉬리’는 전국 관객 620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2000년대 초는 한국영화사의 ‘르네상스’로 평가받는 시기다.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2003년에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천만 영화 시대를 열었다. 세계무대에서도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취화선’으로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쥐었고,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로 2004년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나갔다.

 

다양성 실종 지적 속 위기론도 존재

이후 2010년대 초 한국영화는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았다. 2011년 이후 꾸준히 한국영화 점유율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천만 영화가 본격적으로 쏟아지며 2013년에는 총 관객수가 처음으로 2억 명을 돌파했다. 특히 2014년에는 ‘명량’이 1,76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1위 기록을 현재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양적인 성장과는 달리 의기의식을 내비치는 목소리도 많다. 대기업이 투자와 배급, 극장운영까지 하는 수직계열화로 인한 독과점 문제는 이미 수년 째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고,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불릴 정도로 특정 장르에 자본이 쏠리며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저예산 영화의 입지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 칼럼니스트는 한 칼럼에서 “식민지 시절 우리 영화는 말 그대로 ‘독립 영화’로 시작했고 그 정신이 있었기에 숱한 억압과 악조건 속에서도 한 세기를 견딜 수 있었지만 그 기질을 잇고 있는 후손들이 현재 처한 상황은 100년의 세월이 무색한 초라함이다”고 지적했다. 한 영화 관계자 역시 “자본에 매몰되면 영화산업은 되려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보다 다양성을 높여 양적인 팽창 이외에 질적 성장에 대한 방법들을 고민해야할 때다”고 제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영화는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과 호흡하고 특유의 역동성으로 세계 영화팬들에게 인정받으며 성장해왔다. 100주년을 맞은 올해 영화계에서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준비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사업 추진단을 구성해 지난 100년 동안의 주요 한국영화 작품을 복원해 디지털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외에도 국내외 상영 행사, 한국 영화사 다큐멘터리 제작 등의 사업 등도 추진 중이다. 한국영상자료원 역시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새 영화 박물관 건립 추진에 나서고 있고,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도 영화의 전당 주변을 한국을 대표하는 월드시네마 랜드마크로 조성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남북 평화 분위기 속에 평창남북평화영화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이와 같이 2019년 한 해 영화계는 지난 100년을 추억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기 위해 숨 가쁘게 내달릴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축제 분위기를 영화인들만이 공유하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영화를 즐기는 관객들과 함께 기념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의 100년을 만들어 낸 것도 바로 관객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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