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Ⅰ]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지킬 나라
[이슈메이커_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Ⅰ]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지킬 나라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2.2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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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지킬 나라
희생과 헌신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 진행 중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매년 3월1일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이 일제에 저항한 선조들의 독립 운동을 생각한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겨레가 한뜻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바로 그 날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 순국선열들의 넋을 기리면 애국정신에 고개가 숙연해지곤 한다. 특히 2019년은 우리 국민들에게 더욱 큰 의미가 있는 한 해이기도 하다. 바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은 민족사의 큰 전환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명시하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동시다발로 일어난 만세시위
3·1운동은 1919년 3월1일 한일병합 무효와 대한민국의 독립을 선언한 우리 민족의 비폭력 만세운동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적 차원에서 일어난 가장 큰 독립운동으로, 당시 세계 1차 대전이 끝나고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한 뒤 식민지배에 놓여 있던 국가들 중 처음으로 일어난 운동이기도 했다.
 
3·1운동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일제의 무자비한 무단정치와 민족 고유문화 말살정책, 토지 강탈 등으로 고통을 받던 우리 민족은 독립의 열망과 인간의 존엄성을 억압하는 기존 질서에 대한 평화적 항거의 마음을 키워가게 되었고, ‘무오독립선언’과 ‘2·8독립선언’을 통해 국내에서의 3·1운동을 불러왔다. 당시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탑골 공원에서 학생 및 시민들과 함께 만세 운동을 펼쳤다. 이후 들불처럼 번져나가며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매일 전국적으로 50~60여회에 걸친 만세 운동이 일어나며 항일투쟁은 절정기를 맞게 되었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당시 인구의 10%에 달하는 200만 여명이 전국 각지에서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인한 희생도 너무나 컸다. 7,500여 명이 사망했고, 16,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인명 피해가 있었고, 715채의 민가와 49개의 교회와 학교가 불에 소실되는 등 재산상 손실도 막심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무단정치에 맞서 우리 국민은 당시 인구의 10%가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펼쳤다. ⓒWikipedia/Lucifer0525
일제의 무자비한 무단정치에 맞서 우리 국민은 당시 인구의 10%가 거리로 나와 만세운동을 펼쳤다. ⓒWikipedia/Lucifer0525

 

독립운동의 산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제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3·1운동으로 국내외의 독립운동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된다. 그리고 뜨거워진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이어가고, 민족운동을 주도할 구심점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임시정부 수립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국내에서는 13도의 대표가 수도 경성에 ‘한성 정부’를 세웠고,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대한 국민 의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세워졌는데, 그 세력을 한 데 모으기 위해 4월부터 통합 논의가 이루어져 최종적으로 상하이 임시정부가 대표로 결정된다. ‘제국’에서 ‘민국’으로의 전환을 선포하면서 민주공화국으로서의 정체성을 최초로 밝힌 역사적 순간이었다.
 
당시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 세워진 망명 정부였지만, 한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정부임에는 틀림없었다. 광복 이후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의 정식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체계를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고 현재 국가의 상징들을 물려주었다. 독립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대한민국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으로 명시해 국민이 주권을 갖는 정부를 수립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 성립기념 당시 모습(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원 성립기념 당시 모습(앞줄 왼쪽부터 신익희, 안창호, 현순. 뒷줄 김철, 윤현진, 최창식, 이춘숙)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평화와 희망의 미래 100년 만들어지길
2019년을 맞아 100년 전의 뜨거웠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운동가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전개 중이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가치와 이념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국민들이 쉽게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비롯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당시를 되돌아보며 대한민국의 법통과 정체성을 새롭게 재정립하고 평화와 번영으로 나아갈 새로운 100년을 준비한다는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민이 성취한 국민주권의 위대한 역사를 계승하고 자부심을 가지면서 다함께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길 희망한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올 한해 국내외에서는 매월 관련 행사와 문화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개최되는 운동이나 행사, 공연에도 함께 참여해서 그 의미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로 선조들이 보여준 ‘평화 정신’을 꼽는다. 그리고 그 정신을 중심에 두고 남북이 소통한다면 민족적 자부심 회복과 평화의 길도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전했다. 온 국민과 재외동포가 함께 만든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평화와 희망의 미래 100년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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