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대한민국 청소년 보고서
2015 대한민국 청소년 보고서
  • 박경보 기자
  • 승인 2015.03.02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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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경보 기자]



10대, 어른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

청소년에 대한 인식전환 요구…‘문제’가 아닌 ‘문화’로 바라봐야





10대 청소년들은 기성세대 어른들에겐 언제나 골치 아픈 문젯거리다. 청소년들의 왕따와 학교폭력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가출과 흡연, 성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며 세상을 놀라게 하곤 한다. 이른바 하위문화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소통창구와 탈출구을 위해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청소년들. 그러나 어른들은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혀를 찰뿐 아무도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과연 이시대의 청소년들은 무엇에 열광하고, 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본지가 취재했다.



청소년, 어른을 탐하다

  어른과 아이의 중간단계인 청소년. 이 애매한 위치 때문에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하지만 이들은 아이가 되기보다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청소년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어른들 몰래 피우고 술을 마시며, 더 나아가서는 남녀청소년들이 함께 모텔에 드나들기도 한다. 그러나 청소년을 미완성된 인간으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10대들은 스스로 금지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벗기고 파내고 덧붙인다. 쉽게 말해 주민등록증을 위·변조하는 것으로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익숙해진 문화 중 하나다. 성인의 주민등록증을 훔쳐 본인의 사진으로 교체하고 다시 코팅을 하거나 번호를 파내는 등의 방법으로 청소년들은 어른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청소년들은 이 위조된 민증을 사용해 다른 어른들처럼 어디서든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모텔을 드나든다. 

  한편, 이들 청소년들의 관심을 끄는 가장 ‘핫’한 아이템은 바로 전자담배다. 교실문화의 새로운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전자담배는 특히나 ‘일진’으로 통하는 잘나가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들은 당당하게도 수업 시간에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교사가 판서를 하려고 학생들에게서 등을 돌릴 때 흡연자는 한 모금 빨고 숨을 내뱉는다. 예전 10대가 도시락을 몰래 까먹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전자담배는 또래 내부에서 힘을 과시하는 상징물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이 아이템을 수업 시간에 사용한다는 것은 기성세대에 순응하는 무력한 모습이 아니라 권위에 도전하고 조롱하는 의미마저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필통

  주로 남학생들의 핫 아이템이 전자담배라면, 여학생들의 핫 아이템은 바로 화장품이다. 10대 여학생들에게 ‘뷰티 행동’(메이크업, 헤어디자인, 네일케어 등)은 꽤나 익숙한 문화다. 심지어 최근 몇 년 사이 초등학생에게조차 메이크업 바람이 불고 있다. 쉬는 시간의 화장실은 말그대로 화장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다 보니 이를 통제하기 위한 교사들의 어려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후문이다. 실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고등학생 티 안 나게 화장하는 법’을 가르치는 수많은 사이트들과 동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서울 모 여고에 재학 중인 박 모 양은 “화장을 하면 더 예뻐 보이기도 하고 안하면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수가 없어요”라고 귀띔했다.  일부 학생들은 화장품을 살 돈이 없어 아이라인 대신 사인펜을 사용하기도 하고, 파우더 대신 분필을 갈아 가루처럼 얼굴에 바르기도 해 부작용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청소년들은 왜 이토록 어른의 문화를 탐닉하며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저 유흥에 관심을 갖는 괘씸한 ‘어린놈’들이 아니라 자신들도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해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인지도 모른다.

▲유튜브에 소개된 학생 메이크업 방법



팬덤·온라인문화의 중심

  10대 청소년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팬덤문화다. 팬(fan)에 집합적 접미사 덤(dom)을 합성한 팬덤은 전통적으로 스타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팬들을 칭하는 말이다.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에게 지극한 애정을 쏟아 붓는다. 부모님 생신은 안 챙겨도 연예인 생일은 반드시 챙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업에 빠지고라도 공연을 보러 다니고 연예인의 집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라이벌 연예인 스타들의 팬끼리 과하게 맞붙기도 한다. 파벌과 편 가르기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라이벌 연예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기도 하고 온갖 악성 댓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일삼기도 한다. 청소년으로부터 시작된 이 팬덤문화는 정치인이나 영화, 드라마, 책, 문화예술 작품에 대해서까지도 영역은 확장되면서 이제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이나 하위문화가 아닌 대중문화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대중문화의 중심에 선 청소년들

  청소년들이 지배하고 있는 것은 비단 대중문화 뿐 만이 아니다. 사이버사회, 즉 인터넷 공간이야말로 요즘 청소년들의 아지트이자 그들만의 문화공간이다. 이들은 인터넷 공간을 통해 놀이문화를 만들고 자신들끼리 소통하며 교류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멤버놀이’다. 멤버놀이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회원들이 아이돌 캐릭터를 한 명씩 맡아서 역할놀이 하는 것을 말한다. 내가 에이핑크 손나은이면 너는 미쓰에이 수지, 내가 엑소 시우민이면 너는 카이 같은 식으로 말이다. ‘빙의’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오갈 정도로 이들 청소년들은 이 역할놀이에 심취해 있다. 멤버놀이 커뮤니티 사이트만 해도 1천여 개가 넘고 회원 수는 10만여 명에 달한다. 게다가 카카오톡 등의 스마트폰 메신저로 무대가 확장되면서 멤놀의 일상화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소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힘을 갖고 있는 요즘 청소년들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청소년들의 온라인 놀이문화를 꼽으라면 단연 ‘롤(League of Legends, LoL) 게임이다. 청소년들이 PC방에 모여 게임을 할 때 주저 없이 선택하는 롤은 한국에서 출시되자마자 불과 3개월 만에 PC방 게임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롤을 잘하는 학생은 학교에서 인기가 높고, 롤을 안 하면 왕따가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롤에는 청소년들을 끌어당길 만한 흥행 요소가 있다. 121개에 이르는 캐릭터가 그 중 하나다. 이 중 나만의 캐릭터를 골라서 성장시키는 롤플레잉 게임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또, 롤은 랭크게임 모드에서는 게임 실력에 따라 계급이 부여되는데, 이런 점이 서로를 구분 짓기 좋아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를 자극한다는 분석도 있다. 기성세대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축구나 딱지치기를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면, 요즘 청소년들은 가상세계에서 롤을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는 셈이다.

  롤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아프리카 TV’까지 청소년들의 인기까지 오르고 있다. 이른바 롤 방송이다. 아프리카TV를 통해 롤 BJ가 온라인 생방송으로 롤 게임을 하는 화면을 내보내면 어린 청소년들이 그 방송을 시청하는 형식이다. 특히 이상호, 러너, 솔선생 등의 BJ 등이 청소년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이 방송을 보면서 청소년들은 롤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게임에 대한 스킬을 전수받는다. 롤 BJ들이 프로게이머급의 좋은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술에 가까운 언어코드

  “이따 뻐정에서 만나면 나 빠충 좀 빌려줘” 이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버스정류장과 밧데리 충전기의 준말이다. “오늘 피방고?” “아닥공” 이것은 “오늘 PC방에 게임을 하러 가자”는 이야기에 “아가리 닥치고 공부나해라”는 청소년들의 대화이다. 이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 메신저를 확인해보면 더욱 놀라워진다. ‘ㅇㄷ(어디)?’ ‘ㄱㅁ(교문)’ ‘ㄱㄷ(기다려)’ 이것이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메신저 내용이다. 간단하게 오로지 초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3학년생인 박 모 군은 “길게 쓰기 귀찮아서 이렇게 쓰는 게 훨씬 더 편해요. 어차피 서로 다 알아 듣잖아요”라고 반문한다. 이렇게 청소년의 언어가 낯설거나 무섭게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언어가 난해하기 이를 데 없다는 데 있다. 무분별해 보일 정도로 언어를 파괴하고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시시콜콜한 말장난으로 희희덕대는 풍경은 기성세대들이 볼 때 불편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언어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인터넷 채팅문화나 휴대전화 메신저 덕분에 언어의 경제적 효용성과 세대적 독자성, 그리고 문화적 유희성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필통

  청소년들의 언어는 은어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은어와 함께 비속어들의 향연이다. ‘존나’라던가 ‘병신’과 같은 비속어들은 꼭 상대를 욕할 때 쓰는 말이 아니다. 말을 할 때 붙는 일종의 추임새와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청소년들 간의 대화는 욕과 은어를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을뿐더러 어른들이 들었을 때는 이 대화들의 내용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자신들끼리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으며 이를 통해 소속감을 느끼기도 하고 심지어 자랑스러워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우리가 ‘중2병’이라구요?

  중2병이란 중학교 2학년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 사춘기 자아 형성 과정에서 겪는 혼란이나 불만과 같은 심리적 상태, 또는 그로 말미암은 반항과 일탈 행위를 말한다. ‘남과 다르다’ 또는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중2병은 지난 1999년 일본 배우 이주인 히카루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졌다. 인터넷에 떠도는 중2병 테스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오글거리는 멘트를 많이 적어놓는다, 나는 큰 상처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가래침 뱉는 걸 자랑스럽게 여긴다 등이다. 주로 소외감과 허세, 자기망상과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자신이 지금 우울하고 암담한 세상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의 잠재력을 이용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판타지가 바로 중2병인 셈이다.

  사실 청소년과 부모와의 갈등은 바로 이 ‘중2병’에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들의 이유 없는 짜증에 불만, 그리고 우월감으로 부모 입장에서 아이들과 제대로 대화하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몰라요’다. 밥 먹었는지 물어도 몰라요, 아픈 곳은 없니 물어도 그저 ‘몰라요’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비판하려고만 하기 때문에 대화를 거부한 채 공격적으로 대응한다거나 입을 닫은 채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진다는 것이 사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엄청난 학업스트레스를 견디면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개척하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청소년의 문화는 앞서 알아본 바처럼 기성세대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그들을 더 이상 ‘문제’가 아닌 ‘문화’로 바라본다면 비로소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청소년들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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