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깨운 ‘슈틸리케 리더십’
한국 축구를 깨운 ‘슈틸리케 리더십’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5.02.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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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실용주의와 동기부여 위한 감성 전략의 조화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Cover Story] 울리 슈틸리케 축구 대표팀 감독




따뜻하지만 냉철하게, 한국 축구를 깨운 ‘슈틸리케 리더십’


철저한 실용주의와 동기부여 위한 감성 전략의 조화





불과 7개월만이었다. 지난 2월 1일 오후, 2015 호주 아시안컵을 마치고 돌아온 태극전사들을 환영하기 위한 인파가 인천공항을 가득 메웠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지난해 6월 브라질 월드컵 때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당시 사상 첫 원정 8강을 목표로 세웠던 홍명보호가 1무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고 돌아오자 팬들은 귀국장에서 그들에게 호박엿 사탕을 집어던졌었다. 그러나 4강까지 무실점, 아시안컵 준우승, 박빙의 결승전이라는 달콤한 성과를 달성한 슈틸리케 감독과 대표팀을 맞이하는 건 팬들의 꽃다발이었다.




애증의 아시안컵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


박종환, 허정무, 본프레레, 베어백, 조광래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거나 축구협회에서 공들여 영입한 외국인 감독들마저 풀어내지 못한 숙제를 슈틸리케 감독은 불과 부임 4개월 만에 풀어냈다. 1988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은 비록 우승은 거두지 못했지만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어냈다.


  아시안컵은 대한민국 축구에게 애증이 서려 있는 무대이다. 1988년 아시안컵 이전까지 대한민국은 1956년, 1960년 대회 연속 우승을 포함, 1972년, 1980년, 1988년 대회에 결승에 진출하는 등 역대 최다 결승진출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아시안컵은 1980년대 대한민국 축구에게 ‘만만한 무대’였다. 하지만 너무 얕본 탓일까. 1990년대 들어 처음 개최된 1992년 일본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은 실업 선발팀을 내밀었다가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망신을 당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늘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아시안컵 타이틀을 거머쥔다. 첫 우승 이후 일본 축구는 무섭게 성장했고, 대한민국 축구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일본과의 팽팽한 라이벌 관계가 기점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후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에게 아시안컵은 참담한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0년 4강, 2004년 8강, 2007년 4강을 기록했으며, 2007년에는 8강부터 3, 4위전에 이르기까지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는 유례없는 빈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직후 이동국, 이운재, 김상식 등 주축 고참 선수들의 무단 외출 및 음주 파문이 알려지면서 대표팀의 아시안컵에 임하는 자세가 얼마나 안일했는지 만천하에 드러난다.



▲ⓒ대한축구협회



  2011년 조광래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대한민국은 2000년대 출전 역사상 가장 최상의 전력으로 아시안컵을 맞이한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대표팀을 지키던 두 기둥 박지성과 이영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으로 출전한 대회라 그 어느 때보다 우승에 대한 의욕이 넘쳐났고 대표팀은 그 의지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8강에서 이란, 4강에서 일본을 만나는 힘겨운 대진이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결국 일본과의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아시안컵 정복의 꿈은 또다시 멈추게 된다.


  2011년 아시안컵 준결승 이후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판 티키타카를 꿈꾸던 조광래 감독의 야심은 박지성, 이영표의 공백에 따른 일시적 부침현상과 협회와의 갈등 앞에 좌초하게 되고, 이후 대한민국은 브라질 월드컵 예선을 극도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치르며 경기력이 점점 퇴보하는 암흑기를 겪는다. 반면 일본은 자케로니 감독의 지휘 하에 몰라보게 경기력이 향상되며 일명 ‘스시타카’로 불리우는 정교한 축구의 폼을 다져나간다.




철저한 실력우선 원칙으로


2015 아시안컵을 앞두고 대한민국 대표팀을 향한 시선은 기대보다는 마음을 비우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의 참담한 좌절 이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은 지 불과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 성적에 대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4개월의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 의욕적이고 실리 넘치는 행보를 보였다. 해외파 선수들뿐만 아니라 국내의 K리그부터 대학리그까지 모든 경기장을 돌며 숨겨진 원석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원석 찾기에 나선 슈틸리케 감독의 깜짝 카드는 다름 아닌 상주 상무의 스트라이커 이정협이었다. 모두가 놀랐던 이정협 선수의 발탁은 이윽고 소속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이정협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회가 종료된 지금, 결국 이정협 카드는 슈틸리케 감독의 ‘신의 한 수’로 입증되었다.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로 떠오른 이정협은 박주영과 이동국, 김신욱의 자리를 말끔히 대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직 현역 군인인 이정협을 두고 ‘군데렐라’, ‘한국의 게르트 뮬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고 있다. 이정협의 발굴은 이번 아시안컵 최고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박주영의 개인치료를 위해 국가대표팀 훈련장을 사실상 전면 임대해주는 사상 유례가 없는 특혜를 제공한 홍명보 감독의 행보와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박주영을 테스트 했으나 이는 모든 선수와 똑같은 조건 하였고, 현재 기량으로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 판단된 박주영은 전력에서 제외되었다.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당시 박주영에 대한 특혜 및 대표팀 선발은 팬들이 홍명보 감독에게서 결정적으로 신뢰를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대표팀에게 조롱과 비난이 끊이지 않았던 대회는 아마도 브라질 대회가 처음일 것이다. 결국 팬심이 상당 부분 떠난 상황에서 월드컵을 맞이한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 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대회를 마감하였다.


  그러나 이번 아시안컵을 앞두고서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준 냉철하고 명분있는 행보에 팬들은 모처럼 접하는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론의 비난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계획대로 대표팀을 꾸려갔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개최국 호주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이정협의 깜짝 골로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얻는다. 단순한 승리를 넘어 이번 아시안컵의 개최국에 대한 대진일정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일석이조의 성과였다. 




강력한 동기부여, 막힌 숨통을 틔우는 리더십


“전술과 훈련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더 중요한 것은 헌신을 끌어내는 것이다.” 하재훈 K리그 경기 감독관의 ‘감독론’이다. 전략이나 전술, 심리, 체력 등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 관리의 핵심은 헌신성을 끌어내는 일이라는 뜻이다. 1월 31일 아시안컵 결승 호주전 패배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은 투혼의 명승부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를 부활시킨 슈틸리케의 힘은 ‘진솔함’과 ‘임기응변’, ‘비전 제시’의 리더십이라고 말한다.



▲ⓒ대한축구협회



  우선 골키퍼 김진현과 최전방 공격수 이정협을 발굴한 슈틸리케 감독의 혜안을 들 수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팀의 주축으로 우뚝 선 두 선수는 국내 리그에서도 아직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K리그 10경기보다 대표팀 경기에서 한 번 뛰는 게 선수의 눈을 트이게 만든다. 벤치에만 있어도 경험이 쌓인다”고 말하며 두 선수가 이번 대회를 통해 쌓아올린 자신감이 향후 한국 축구에 큰 보배로 작용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 외에 좌우 풀백 김진수와 김창수, 다양한 포지션에서의 능력을 보여준 장현수도 합격점을 받았다. 이는 슈틸리케의 고정관념 없는 진솔한 시야에서 비롯한다. 그는 조별리그 쿠웨이트전의 힘겨운 승리 이후 “우리는 우승 후보가 아니다”라고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처럼 솔직한 자기반성은 선수들을 낙담시키기보다는 의욕을 자극했다. 바로 진정성 때문이다. 


  그의 전술적 임기응변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진가를 드러냈다. 대회 초반부터 이청용, 구자철의 부상 낙마로 힘겨운 상황에서 그는 21명의 선수를 풀가동했다. 결승전 후반 40분께는 총력전을 펴기 위해 수비수 김주영을 투입한 뒤 곽태휘를 최전방에 내세워 결국은 손흥민의 동점골을 끌어냈다. 하재훈 감독관은 “보여주는 경기보다 결과의 경기를 추구한다. 토너먼트에 강한 감독이다. 경기 중 전술이나 선수를 바꿔도 선수들이 잘 적응한다. 선수들을 장악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훈련을 지도할 때 소리를 지르며 몰입하고, 경기 중에도 적극적인 액션으로 기를 북돋운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감독의 근면성과 카리스마가 신뢰의 축구를 구축했다. 투지와 근성, 정신력 측면에서 선수들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결승전 뒤 기자회견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 하나를 얘기하고 싶다. 대다수 선수들이 학교에서 배우는데 학교에서는 선수들에게 승리하는 법을 가르칠 뿐 축구를 즐기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며 대표팀만이 아니라 풀뿌리부터 한국 축구 개조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한국 선수들은 체격이나 체력, 기술적인 면에서 재질이 있다. 하지만 공을 받는 첫 번째 터치가 나쁘고, 상대가 강하게 압박하면 허둥댄다는 점은 많은 해외 전문가가 지적하는 바다. 슈틸리케의 지적은 이러한 축구센스를 키우기 위해선 축구의 기본을 가르치는 학교 교육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 


  난파 직전의 대한민국 대표팀을 맡은 지 4개월 만에 소신 있는 행보와 뚜렷한 철학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 그의 리더십의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모든 축구팬들이 동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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