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스몰파워 Ⅰ] ‘거인’이 된 ‘개미’들
[이슈메이커_스몰파워 Ⅰ] ‘거인’이 된 ‘개미’들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12.1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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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거인’이 된 ‘개미’들
빅브라더에 대항하며 사회 변화 이끌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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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수제 쿠키로 입소문을 탔던 한 디저트 업체의 가짜 제품 논란의 시작은 한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문제제기부터였다. 서울 강남의 입시 명문여고의 정답 유출 사건 의혹도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가 공론화를 시키며 언론 보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온라인 공간의 가진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여러 가지 부작용 속에서도 개인이 SNS를 통해 뭉치면 눈덩이의 핵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해준 것이다.
 
클릭 한번으로 사회 문제 이슈화
 
과거 비위생 업소나 불량제품을 찾으면 관련된 기업이나 국가기관의 문을 두드리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몇 마디 글과 한 장의 사진이면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실제 수제 쿠키 전문점의 사기 판매 의혹은 한 누리꾼이 SNS에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맛이 똑같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촉발됐다. 업체가 이를 완강히 부인하자 다른 네티즌들도 연이어 문제를 제기하며 집단 대응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그치지 않자 업체 측은 관련 사실을 시인하고 매장을 폐업했다. 대표는 불구속 입건된 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었다.
 
이처럼 SNS 플랫폼이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개미’들의 집합은 ‘미디어’의 형태로 손쉽게 발전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혼자서 쉽사리 문제제기하는 것이 힘들어 움츠러들기 십상이던 과거와는 달리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쳐 정당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빅브라더’를 능가하는 ‘스몰브라더’의 반란인 셈이다. 이러한 힘은 단순히 대형 업체에 맞서 싸우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에선 네티즌들이 자살을 기도했던 고등학생 소녀를 살려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녀가 커뮤니티에 자살을 암시하는 글과 실제 자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까지 올라오자 회원들은 경찰에 즉시 신고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고, 수사 당국은 SNS에 등록된 정보로 신원을 확인해 게시자를 찾아 병원으로 옮겨 다행히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파편화 된 개인들이 연결되어 큰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를 꼽는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짧은 글로 소통하면서 감정적, 사회적 유대감을 느끼고, 사회적 정체성도 형성한다”며 “바로 이런 유대감이 커다란 감정공동체, 여론공동체를 형성해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피력한 바 있다.
 
‘해시태그’ 통해 소통의 창구로도 활용
 
정치적 소통의 영역에서도 SNS의 힘은 눈부시다. 이른바 ‘페이스북 혁명’으로 불렸던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은 개인들이 IT 기술을 통해 모이면 사회운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내에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해시태그가 평화 시위의 촉매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 네티즌들은 ‘#그런데최순실은’, ‘#나와라최순실’ 등의 해시태그를 자신의 SNS에 아무 관련이 없는 내용과 함께 넣으며 일종의 놀이문화처럼 확산시켰고, 이후 관련된 보도가 쏟아지자 ‘#가자광화문으로’와 같은 메시지로 진화하며 오프라인 집회로 삽시간에 분출되었다.
 
‘미투 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계나 영화계 등에서 발생하던 병폐에 대해 과거에는 오히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두려워해야 했지만, SNS가 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구심점 역할을 하며 비슷한 경험을 한 개인들이 모여 공론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에 대해 동의대학교 인문학부 정혜경 교수는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데서 용기를 얻은 몇몇 발언이 해시태그를 통해 한데 모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어느 정도 자정 효과도 거둔 것 같다”고 전했다.
 
부작용 우려 속 자정 시스템도 구축할 것으로 기대
 
이처럼 개인의 삶과 밀접한 육아나 먹거리 문제는 물론 정치, 문화 등 다루기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도 대중의 힘이 집결되는 것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기존 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SNS에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시민들이 직접 여론 형성에 나선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 SNS에 의견을 개진하고, 커뮤니티에 글을 게재하는 행동들이 쌓이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뜻을 모으는 도구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이나 영화 티켓 가격을 인상한 멀티플렉스 영화관 등을 대상으로 벌인 불매 운동과도 비슷하다. 결코 누군가 대표자가 되어 행동을 유도한 것은 아니지만, 각 개인들이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자연스레 집단행동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박성준 문화평론가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내더라도 과거에는 널리 퍼지거나 수면 위로 오르지 못했지만, 온라인 플랫폼이 발전하며 개인들의 동일한 목소리가 뭉쳐 엄청난 힘을 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 속에서도 이러한 스몰파워는 점점 더 강력한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이미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이 탈바꿈 된 만큼 시민들 스스로가 규제 역시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크고 거대한 것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작고 개체화 된 ‘스몰’이 사회를 이끌어가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시대, 그 모습 속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격언이 새삼 허투루 들리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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