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report] 대한민국 영·유아 보육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Society report] 대한민국 영·유아 보육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5.02.16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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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를 낳으라는 건지, 애(?)를 먹으라는 건지
[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Society report] 보육정책




대한민국 영·유아 보육제도, 이대로 괜찮은가?


애를 낳으라는 건지, 애(?)를 먹으라는 건지



우리나라는 2000년대 후반부터 미취학 아동에 대한 투자를 큰 폭으로 확대해 왔다. 영유아 보육에 대한 국가적 책임 강화 및 지원확대는 그 자체로 바람직한 방향이나, 우리 사회는 보육 인프라의 질적 성숙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양적 팽창에 주력해 온 결과 현재 적지 않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보육 사업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수요자인 부모의 만족도는 크게 개선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며, 재원확보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지원대상과 금액을 확대해 오는 과정에서 재원분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보육정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살얼음 위를 걷는 무상 보육 지원 정책 


“언제든 무상보육 지원이 끊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애를 낳으라는 건지 낳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


  부산에 사는 박모 씨는 박근혜 정부의 여성 고용·복지 정책의 ‘맞춤’ 수혜자다. 2년 터울씩 아이를 셋 낳았지만 박 씨는 일과 아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지 않아도 됐다. 첫째(6)와 둘째(4)는 누리과정에 해당돼 월 22만 원씩 지원받고, 만 1살인 막내도 ‘어린이집 영아반(0~2살) 보육료’ 명목으로 월 34만 7천 원씩 지원받는다. 덕분에 박 씨는 지난해 11월, 시간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해 하루 6시간씩 주 5일간 일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일하는 엄마들이 보육 걱정하지 않고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현 정부의 여성 고용 및 복지 정책 기조에 딱 맞는 모범 사례인 셈이다. 하지만 박 씨는 요즘 무상보육 재원 논란을 보며 씁쓸하고 불안하다. 박 씨는 “사실 엄마들로선 누가 지원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무상보육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대통령이 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으면 약속을 지키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76만 원. 만약 첫째와 둘째가 받아온 누리과정 지원 44만 원이 끊기면, 이를 고스란히 박 씨가 떠맡아야 한다. 한 달에 한 명당 10만 원씩 추가 지출되는 특별활동비까지 고려하면 박 씨는 더는 일 할 이유가 없다. 


  강원도 춘천에서 미취학 아들 2명을 키우는 맞벌이 엄마 신모 씨는 “첫째를 낳을 때 지금처럼 무상보육 논란이 있었다면 선뜻 애 낳기 어려웠을 거 같다. 월급만 빼고 모든 물가가 다 오르는데 저출산이 문제라며 무상보육 책임을 지방에 떠미는 건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논란은 양육비 부담이 커질 시점에 보육료 지원이 끊길 수도 있다는 뜻이어서, 부모들의 불안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장기적 안목으로 무상보육 등 저출산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울신학대 백선희 교수는 “무상보육 정책이 만능은 아니지만, 한국의 장기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저출산 정책의 하나다. 무상보육이 움츠러들면 출산에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질적 혜택 고려한 ‘고용 친화적 보육정책’ 필요


  최근 우리나라는 무상보육 확대 등 보육 예산을 늘려 보육기관 이용률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지만, 여성 고용률은 선진국 대비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는 재정을 쏟아 붓고 있는 보육 정책이 여성 고용률 제고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 확산, 근로시간 단축 등 일·가정 양립정책이 함께 정착되고, 취업 여부 등에 따라 지원을 차별화하는 고용 친화적 보육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인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개최한 ‘일하는 부모의 고민: 고용 친화적 보육정책 방안’ 토론회에서 현재의 보육정책이 여성 고용률 제고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2005년 5,948억 원이던 보육 예산은 올해 4조 315억여 원으로 그 규모가 6.7배로 커졌다. 이에 따라 한국의 어린이집·유치원 이용률도 크게 높아졌다. 2012년 기준 0∼2세 기관 이용률은 덴마크를 제외한 북유럽보다 높고 3∼5세는 주요국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섰다. 그러나 한국의 15∼64세 여성 고용률 수준은 지난해 기준 54%에 그쳤다. 스웨덴(72%) 네덜란드(69%) 프랑스(60%) 등 유럽 주요 국가는 물론 미국 일본 등과도 차이가 크다.


  이렇듯 우리 정부가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을 위해 실시해 온 각종 정책은 뚜렷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태다. 한국법제연구원은 최근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촉진법(경단법)에 대한 사후적 입법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2007∼2012년 0.2% 상승하는데 그쳐 OECD 국가 중 매우 저조했다”라며 “경단법에 의해 운영되는 ‘새로일하기센터’를 통해 재취업한 여성들도 40대 이상이 가장 많아 경단법 입법 취지와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 투자와 지원 정책에도 여성 고용률이 높아지지 않는 것은 고용 환경 변화가 뒤따르지 않고 있어서다. 정부가 직접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보다 육아휴직 활성화, 보육시설 확충, 유연근무제 실시 등으로 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해 사실상 보육료 부담을 낮추는 것이 ‘고용 친화적 보육정책’이라는 것이다.





도 넘은 ‘갑질’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 제시


  유치원 입소를 둘러싼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유치원들의 ‘갑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교육청이 명백하게 보장한 부모들의 4회 지원 횟수와 등록 기간을 무시하고 우선 등록을 강요하는가 하면, 종일반을 보내야 하는 직장맘의 경우 추첨에 합격했어도 대기 순번을 뽑게 하고 합격 여부를 확정 지어주지 않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에 사는 직장맘 김모 씨는 4일 한 유치원 추첨에서 합격했다. 김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유치원 원장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 중에 종일반 원아 부모들은 따로 대기 번호를 뽑으라는 것이다. 종일반의 경우 몇 명이 구성될지 모르니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김 씨는 “유치원에서는 반일반 원아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반일반 부모들은 그냥 보내고 종일반 부모들만 대기 순번표를 뽑게 했습니다. 추첨에 합격했어도 합격된 것이 아니었어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다른 구 유치원 추첨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라고 하소연했다.  


  이렇듯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유치원 입소 대란에는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로 가는 주먹구구식 행정이 깔려 있다. 미취학 아동이 많은 서울·경기의 시·군·구별 0~5세 아동과 유치원·어린이집 현원 숫자를 비교한 결과 서울 종로구는 97.7%가 시설에 갔지만, 서초구는 44.3%에 그쳤다. 뿐만 아니라 최근 정부의 보육비·양육비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보육 현장은 ‘돈 먹는 하마’에 머물고 있다. 보육·교육의 질 차이를 줄이겠다는 정부의 ‘유·보(유치원·어린이집) 통합’도 구체적 그림을 내놓지 못해 산으로 가고 있다. 보육이 야생과 같은 시장에 맡겨졌고, 이대로라면 10년 후에도 나아질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기숙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부모들로서는 정말 우리 동네에 맡길 수 있는 시설이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다’거나 너무 가기 힘들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라며 “민간 어린이집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국공립 숫자를 늘리는 근본적인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보육정책의 올바른 앞길은?


  어린이집은 여름과 겨울, 1주일 2회 방학을 한다. 유치원은 최소 2주에서 길게는 5주까지 방학을 한다. 직장인 엄마는 방학이나 평일에 부모 참관수업을 할 때 무척 곤란하다. 


  대전시 서구에 사는 워킹맘 손모 씨는 휴직하고 복직한 이후, 회사 눈 밖에 나는 한이 있더라도 여름·겨울방학에 맞춰 휴가를 신청한다. 그러나 막 겨울방학에 맞춰 휴가를 썼는데, 다시 돌아오는 봄 방학에 다시 휴가를 낼 수 없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프로그램도 없이, 대여섯 명밖에 안 되는 모든 연령의 아이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시설에 맡겨야 한다. 비용을 아끼느라 봄방학 때는 난방조차 미리 틀어놓지 않는 시설이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악덕인 것도 결코 아니다. 그저 이게 현실일 뿐이다. 방학을 시행하기 전 기관에서는 학부모에게 방학 시행 여부 및 방학기간의 보육 여부를 통신문으로 안내한다. 이때 우리 아이들만 방학 때 나오기로 했다며 곤란해 하던 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가 워킹맘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부담을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손 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저 같은 직장인 엄마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아요. 직장인 엄마들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전업맘'과 '워킹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 모든 정책과 매체의 기사들이 정말 유감스럽습니다”라고 전했다. 


  무상보육이 시행된 이후 직장인 엄마의 아이는 오히려 차별을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직장인 엄마들은 모두 이유를 알고 있다. 하지만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이들은 현실을 모르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무상보육은 시행됐지만, 시설이나 교사의 처우 등등 보육 인프라 구축이 너무 열악하다. 직장인 엄마에게 무상보육을 위한 인프라 구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미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유치원에 자체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국가와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특히 야간보육과 같이 오랜 시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시설과 교사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가인증제도 내실화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 유지를 국가가 보증하고, 인가제한을 완화하여 시설 간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궁극적으로 보육서비스의 질적 수준 향상과 보육교사의 질 역시 상승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이미 보육료 지원과 양육수당이 전 계층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정책의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조정과 향후 추가재원 투입 시 우선순위에 대한 확고한 제도 정착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에서 앞으로 대한민국 보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서민의 입장에서 면밀히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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