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단독인터뷰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홍성흔 코치
[이슈메이커] 단독인터뷰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홍성흔 코치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8.11.1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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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나는 메이저리그 코치다!

야구의 본토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알리다

 

홍성흔이 전하는 MLB 지도자 도전기

1905년, 당시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YMCA 청년들에게 가르친 서양식 공놀이는 100년이 지난 지금 야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스포츠로 성장했다. 대한민국 야구사는 1982년 프로야구 탄생을 기점으로 급격히 변화하고 성장했다. 프로야구 1호 안타, 홈런, 타점의 주인공인 이만수를 시작으로 2018년 고졸 신인 최초 30홈런을 기록한 강백호까지 매년 수많은 선수가 팬들에게 스타라는 이름으로 각인된다. 더욱이 한국 야구는 국내 프로야구를 넘어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박찬호를 비롯해 최근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인 최초 1선발을 맡은 류현진까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은 야구의 본토에서 한국 야구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2016년 두산베어스에서 은퇴를 선언한 홍성흔 역시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이자 레전드였다. 그의 은퇴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향후 그의 행보에 기대와 응원을 보냈다. 평소 연예인 못지않은 입담을 자랑했던 그였기에 최근 안정환, 서장훈처럼 방송계를 주름잡는 스포테이너가 되거나 자신의 야구 노하우를 전하는 지도자나 해설위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그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고 그는 메이저리그 정식 코치로 데뷔한다는 낭보를 들고 팬들 앞에 다시 섰다.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메이저리그 불펜 코치로서 소속팀 시카고 화이트 삭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만수 감독에 이어 한국인 지도자로서 최초 혹은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한 그의 2018년 메이저리그 도전기가 궁금한 이유이다.

 

Q. 늦었지만 MLB 정식 코치가 된 것을 축하한다

-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앞두고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스포츠 채널의 해설위원직 제안은 물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섭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 측과도 향후 지도자 계획과 해외 연수 계획 등을 함께 논의하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박찬호 선배가 지도자를 생각한다면 길게 바라보고 도전하라며 자신이 어드바이서로 있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의 인턴 코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작년에는 인턴코치로서 구단에 몸담았다면 시즌 후 정식 코치 제의가 들어왔고 올해부터는 구단의 정식 코치로 승격될 수 있었습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도전할 생각이었는데 7개월 만에 정식 코치로 임명되니 그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Q.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것이 메이저리그 정식 코치다

- 저를 구단에 추천해준 박찬호 선배조차 이렇게 빠른 기간에 정식 코치가 될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지난해 저를 포함한 4명의 아시아 코치는 물론 5명의 미국인 코치도 모두 정식 코치로 승격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아직은 초보 지도자지만 야구의 본토에서 한국 야구의 위상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는 점에 스스로 높은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Q. 그렇다면 구단에서는 어떤 점에 지도자로서 높은 평가를 했을까

- 아직도 영어 실력이 완벽하진 않지만 소통은 언어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일부 코치는 선수들과의 소통에서 비즈니스 관계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제가 영어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선수들에게 헌신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니 미국인 코치를 놔두고 저에게 타격 기술이나 수비 등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선수들과 언어가 아닌 마음으로 소통하는 저의 모습을 구단에서 높게 평가한 것 같고 저 역시도 초보 지도자이지만 선수를 가르칠 때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달았습니다.

 

Q. 선수로서 바라보는 그라운드와 지도자로서 바라보는 그라운드는 어떻게 다를까

- 예전부터 은퇴 후 지도자를 하는 선배들이 할 수 있으면 최대한 오래 선수 생활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지도자는 선수와 비교하면 연봉에서부터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경기장에서는 선수가 최우선입니다. 지도자는 선수들이 바른길을 향하도록 유도하고 격려하는 위치입니다. 저 역시도 선수로 뛸 때는 제가 중심이었지만 미국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인내심을 키우고 선수들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 있을지 배우고 있습니다.

 

Q. 야구 본토 MLB에서 느끼는 한국 야구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밖에서 바라본 MLB는 자유분방한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실제로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바라본 미국 야구는 철저한 시스템을 통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신인 선수들이 입단하면 정신 교육부터 시작합니다. 기본적 예의부터 단체 생활의 규율, 그리고 팬들을 대하는 자세까지 입단 후부터 시즌 끝까지 지속해서 가르칩니다. 훈련의 강도 역시 높습니다. 세밀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고 자율을 강조하되 철저히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홍성흔 코치는 박찬호 선수의 소개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인턴 코치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스스로의 힘으로 정식 코치로 승격됐다.
홍성흔 코치는 박찬호 선수의 소개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인턴 코치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스스로의 힘으로 정식 코치로 승격됐다.

 

Q. 낯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어려움은 없었는지

- 처음에는 영어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아직도 완벽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야구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이제는 선수들의 질문에도 어느 정도 답변할 수 있고 얼마 전에는 서툰 솜씨이긴 하지만 직접 원고를 작성해 선수들 앞에서 프로의 자세와 경험에 대해 짧은 강연을 하는 시간도 가질 정도입니다. 다만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아직도 힘든 부분이며 조금 더 정착하고 아이들이 크면 가족 모두에 미국에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Q. 다시 선수 시절로 돌아간다면 해외 진출에 도전할 의향이 있는가

- 일본이든 미국이든 무조건 도전할 생각입니다. 기회가 있으면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국내 프로야구 시장도 커지다 보니 해외 진출 못지않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어 후배 선수들이 해외 진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조건 해외 진출을 도전하겠지만 후배 선수들도 한국 야구와 본인의 발전을 위해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합니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과 향후 지도자로서의 계획은

- 저는 공과 사를 구별할 수 있는 코치가 되고자 합니다. 경기 외적으로는 편안하게 선수들에게 다가가고 소통하겠지만 그라운드 안에서는 엄격하고 정리정돈을 강조하는 지도자가 되고자 합니다. 더불어 선수들이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며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지도자로서 첫 번째 목표는 이뤘습니다. 이제 두 번째 목표인 이곳에서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그 감독은 현실성이 너무나 떨어지니 마이너리그 감독이 최우선적 목표입니다. 이 역시도 쉽지 않은 것은 알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조금씩 제가 나아갈 수 있는 데까지 전진하고 싶습니다.

 

홍성흔 코치는 선수들과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홍성흔 코치는 선수들과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다.

 

홍성흔이 전하는 오버맨의 야구 이야기

 

선수 시절 홍성흔 코치는 두산 베어스 소속으로 팀의 우승을 이끌고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팀의 오랜 암흑기를 깨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힘을 보탠 프로야구의 간판타자였다. 그는 국제 대회에서도 대표팀의 일원으로 국위 선양에 앞장서고 프로야구 최초로 우타자 2,000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더욱이 홍성흔 코치는 특유의 에너지와 파이팅 넘치는 허슬플레이로 유독 많은 팬을 보유하고 사랑을 받았던 스타 플레이어였다.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루었던 그였지만 현역 시절 아쉬운 점은 없었을까? 은퇴 이후에도 여전히 야구만을 바라보는 그에게 야구는 어떤 의미일까? 오버맨 홍성흔의 야구 이야기가 궁금해 질문을 이어갔다.

 

Q.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제가 한국에 온 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며 인터뷰도 이슈메이커가 처음입니다. 아직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어제는 아들 화철이가 뛰는 리틀야구팀의 경기를 처음으로 보러 갔습니다.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제가 처음 야구 했을 당시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감독님께서 야구 해 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고 야구팀의 모자와 유니폼이 멋있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려서도 저는 파이팅이 좋았고 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 포수를 해보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포수를 시작했습니다.

 

Q. 야구 인생의 첫 포지션이었던 포수, 누구보다 애착이 많았을 것 같다

- 처음 포수 마스크를 썼을 때 날아오는 공이 무서웠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더욱이 포수라는 포지션은 화려하기보다 묵묵해야 하고 냉철하고 희생정신이 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저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보이는 모습을 좋아하는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포수는 어쩌면 성격적으로 저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포수라는 포지션의 애착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아직도 선수 생활을 돌아보면 가장 아쉬운 부분은 부상 이후 재활을 제대로 하지 못해 포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포수로서 은퇴할 수 없었던 상황인 것 같습니다.

 

동료 코치이자 일본 야구의 전설 노모 히데오와 함께
동료 코치이자 일본 야구의 전설 노모 히데오와 함께

 

Q. 수많은 경기 중 본인의 인생 경기 ‘BEST 3’는

- 첫 번째는 2001년 두산 소속으로 프로 데뷔 이후 처음 우승했을 당시 경기였습니다. 프로로서의 우승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평생 잊지 못할 순간입니다. 두 번째는 우타자 최초 2,000안타를 달성한 경기입니다. 프로 선수로서 한국 프로야구사에 최초의 기록을 남긴 순간이니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세 번째는 특정 경기를 지정하기보다 FA로 롯데로 이적 후 포수가 아닌 지명타자로서 타격의 포텐셜을 터트리며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던 시기를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였는데 동료 선수들과 코치진, 팬들이 힘을 실어줘 야구선수로서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Q. 선수로서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고 자신의 선수 생활을 점수로 매긴다면

- 선수로서 자신감을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저만 알 수 있는 부분이기에 자신감은 저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선수 생활을 점수로 평가하자면 100점 만점에 80점을 줄 수 있습니다. 20점을 뺀 이유는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로 데뷔를 포수로 했기에 포수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 데 이를 이루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Q. 현역 시절 유독 닉네임이 많았다. 가장 좋아하는 닉네임이 있을까

- 홍포, 홍턱, 오버맨 등 좋은 의미의 별명도 있었고 나쁜 의미의 별명도 많았습니다.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만들어진 별명이니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신인 시절의 별명이기도 하고 제 캐릭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오바맨이 지금도 가장 좋습니다. 별명 때문이더라도 그라운드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홍성흔 코치는 미국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점을 꼽았다.
홍성흔 코치는 미국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점을 꼽았다.

 

Q.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은지

- 제가 이승엽 선수처럼 대단한 업적을 남긴 선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비력이 좋았던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팬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유쾌한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며 그라운드에서는 그 어떤 선수보다 에너지 넘치고 뜨거웠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Q. 인간 홍성흔이 야구인 홍성흔에게 남기고픈 이야기

- 돌이켜보면 넌 참 대단한 사람이었어. 야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 앞으로도 그 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밝은 모습, 성실한 모습,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잃지 말고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길 바랄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그 마음 변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네가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거야. 수고했다 성흔아! 난 네가 자랑스러워!

 

스스로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홍성흔 코치의 모습은 수줍음이 엿보였지만 자신을 향한 확신과 다짐은 그의 눈빛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됐다. 이날 인터뷰는 홍 코치의 아내인 김정임 씨와 함께 진행됐지만,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자신의 두 아이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남기고픈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홍성흔 코치는 “선수 시절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연예인들만 한다는 팬 미팅도 진행했고 집 앞에 찾아오는 팬들에게도 항상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팬 여러분이 자동차라면 선수는 주유소라고 생각합니다. 팬들의 에너지를 채워주는 역할을 선수가 해야 하며 자동차가 없는 주유소는 존재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18년 동안 사랑해주시고 은퇴 당시에도 많은 격려를 해주시며 지금까지도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이 자리를 통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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