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Cover Story] 전쟁 성범죄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
[이슈메이커_Cover Story] 전쟁 성범죄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10.31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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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전쟁 성범죄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
피해자를 위한 정의 앞장서며 노벨평화상 수상
 
무퀘게 재단 홈페이지
무퀘게 재단 홈페이지

 

2018년 노벨평화상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의 의사인 데니스 무퀘게와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의 공동 수상으로 결정됐다. 노벨위원회는 무퀘게를 가리켜 ‘전쟁과 무력 충돌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종식을 위한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통합의 상징’이라 평했으며, 무라드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말할 때 대단한 용기를 보였다”고 치하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시점에서 전쟁 성범죄의 잔혹성을 알리고 피해자 구제에 앞장서 온 이들의 수상 의미가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판지병원 설립 통해 성폭력 피해자 치료
 
데니스 무퀘게는 오순절교회 목사의 9명의 자식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성장 과정에서 전문적인 보건에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콩고 여성들의 자녀들이 겪는 많은 질병들을 목도한 후 아버지가 기도한 병자들을 고치고자 의학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3년 부룬디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취득 후 부카쿠 지역의 한 시골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게 되고, 이후 프랑스 유학생활을 거쳐 1999년 부카부 내에 판지병원을 세우고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두 차례 콩고 내전 과정에서 잔인한 성폭행이나 신체 학대를 당한 여성과 어린 아이들을 헌신적으로 지원해왔다. 하루 18시간 씩 10번의 수술을 꾸준히 진행했고 지난 2015년까지 무퀘게가 치료한 사람만도 48,000여명에 이른다. 당초 판지병원의 설립 취지는 내전으로 인한 임산부 사망률 급증하자 산모들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비롯한 부인과 수술을 시행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성폭행 피해자가 급증하고 영양실조로 인한 조산 등이 늘어나자 이들을 위한 치료에 더욱 매진하게 된다. 실제 판지병원은 4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병실을 성폭력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위해 배정해 놓고 있다. 이와 함께 무퀘게는 성폭행 피해자들이 자립해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르가의 작은집(Maison Dorcas)’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 복지에도 힘쓰고 있다. 치료가 끝난 뒤에 돌아갈 곳이 없는 여성들에게 숙소를 마련해주면서 직업훈련과 기초 학문 등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단순히 여성과 소녀들의 회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전반에 평화와 활력을 불어넣는 선순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무퀘게 재단’을 통해 성폭력 예방 및 종식과 피해자 지원 활동은 물론 전시(戰時)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 사실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한 피해자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글로벌 피해자 운동’도 진행 중이다.
 
무퀘게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간 2016년 제13회 서울평화상을 비롯해 2008년 UN 인권상과 2011년 클린턴 글로벌 시티즌 어워즈, 2014년 유럽의회가 수여하는 사하로프 인권상을 수상한 바 있다. 꾸준히 노벨상 수상자로도 언급되기도 했던 그는 이번 선정 당시 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소식을 들었다며 “많은 여성들의 얼굴에서 그들이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무퀘게 재단 역시 성명을 내고 ‘전쟁 성폭력은 용납할 수 없고 멈춰야 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라며 그의 수상을 반겼다.
 
숱한 암살 위협 속에서도 무퀘게는 그동안 5만 여명에 가까운 성범죄 피해자들을 치료해왔다. ⓒ판지병원
숱한 암살 위협 속에서도 무퀘게는 그동안 5만 여명에 가까운 성범죄 피해자들을 치료해왔다. ⓒ판지병원

 

숱한 암살 위협 속 전쟁범죄 중단 지속 호소
 
무퀘게는 대외적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의 내전 종식과 반인도적인 전쟁범죄 중단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내왔다. 2012년 9월에는 UN 연설을 통해 성폭력 사태에 책임을 져야하는 반군세력들에게 유엔이 만장일치의 비난 성명을 채택, 발표하고, 어떤 형태든지 잔혹하고 반인도적이며 반인권적인 행위를 지원하고 있는 회원국이 있다면 단호한 행동을 취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노벨위원회 역시 수상자의 업적을 이야기하면서 전쟁 중 여성들이 강간당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가 이를 해결하려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처럼 권력 투쟁을 목적으로 1996년부터 2003년까지 2차례에 걸쳐 일어난 콩고 내전은 숱한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다. 특히 2차 내전의 경우 ‘아프리카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라는 오명도 갖고 있는데 1998년 8월부터 2001년까지 발생한 사망자만 최소 250만 명에 달하고 그 여파로 인한 질병 및 영양실조로 사망한 인원이 총 54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2차 세계대전 이래 다른 어떤 전쟁보다 많은 희생이 야기된 것이다. 이후에도 공식적인 전쟁은 끝이 났지만 끊임없는 종족 분쟁으로 성폭행이 ‘전쟁무기화’되는 일이 빈번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 동부를 ‘세계의 성폭행 중심지’로 부를 정도다. 적대 부족을 몰아내거나 겁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들을 집단 성폭행하거나 심지어 주민 교란의 목적으로 남성을 성폭행하는 경우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때문에 무퀘게는 전쟁 성범죄와 관련해 콩고 정부를 비판하고, 군대에 성폭력 문화가 만연하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램버트 멘데 민주콩고 정부 대변인이 무퀘게의 노벨상 수상을 두고 “동포가 인정받은 점에 경의를 표한다”면서도 인도주의 활동이 정치적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를 낮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울러 그는 이로 인해 지속적인 암살 위험에 노출되는데, UN 연설을 통해 반군 처벌을 주장한지 한 달 뒤 무장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된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유럽으로 망명하자 지역 여성단체들은 지역 경찰들을 비난하며 무퀘게의 귀환을 위한 모금 활동을 펼쳤고, 판지병원의 환자들 역시 과일과 채소를 판 돈을 모아 그의 항공권 구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도움 속에 그는 이듬해 1월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 속에 귀국했고, 여전히 피해자 치료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하게 된 나디아 무라드는 IS의 학살과 여성납치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하며 국제사회에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호소해왔다. ⓒWikipedia Commons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하게 된 나디아 무라드는 IS의 학살과 여성납치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하며 국제사회에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호소해왔다. ⓒWikipedia Commons

 

여성 위한 인권운동가 나디아 무라드
 
한편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나디아 무라드는 1993년생으로 2014년 17세의 나이에 평화상을 받은 여성 교육 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에 이어 두 번째로 어린 수상자이다.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드족 출신의 학생이던 무라드는 2014년 이 지역을 장악한 이슬람국가(IS)의 공격으로 여섯 형제가 모두 살해되고 자신은 납치돼 모술로 끌려갔다. 이후 3개월간 성노예로 고통을 겪다 가까스로 탈출 후 2015년 난민으로 인정받아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처럼 이슬람국가는 IS는 점령지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는 범죄행위를 일삼고 있다. 무라드에 따르면 당시 6,500명의 야지드 출신 여성과 어린이들이 납치됐다고 전한다. 또한 남성 수 천 명은 살해당했고 자신은 납치된 이후 12명에게 강간당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와 같은 IS의 만행은 미국 등 서방 세계가 IS에 맞설 국제동맹군을 결성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끔찍한 경험에도 좌절하지 않고 인권운동가로서 변신한 무라드는 열정적인 활동을 펼치며 IS의 학살과 여성납치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해왔고 자서전 ‘마지막 소녀(The Last Girl)’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6년 여름 IS가 떠난 고향 마을을 찾아가 폐가로 변한 옛집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무라드는 “언젠가 나를 성폭행한 남성들의 눈을 보며 그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기를 소망한다”며 “나는 같은 경험을 가진 마지막 소녀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현재 야지디족이 살던 마을은 대부분 수복됐으나, 아직도 수만 명의 야지디족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후 2016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의 ‘인신매매 생존자 존엄성을 위한 친선대사’ 1호로 임명됐으며, IS의 만행을 고발하고 야지디족 보호 캠페인을 벌인 공로로 유럽평의회 인권상과 사하로프 인권상을 받았다. 노벨상 수상 이후 무라드는 미국 워싱턴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의 소망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는 모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며 “우리는 집단 학살을 끝내고,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며, 피해자를 위한 정의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퀘게의 헌신적인 노력들은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IMDB
무퀘게의 헌신적인 노력들은 다양한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IMDB

 

진정한 평화주의자의 수상에 찬사 이어져
 
올해 노벨평화상 추천 후보는 개인 216명, 단체 115곳으로, 1901년 첫 시상이 이뤄진 이래 2016년 376명에 이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외신들은 도박사이트를 인용해 한반도 평화정착의 물꼬를 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한 비핵화 협상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유력 수상 후보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후보 추천이 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인 2월에 이미 마감된 데다 북한의 비핵화가 아직까지 구체적 결실을 보지 못한 단계이기 때문에 큰 이변은 없었다.
 
인류 평화 증진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노벨평화상은 노벨상 6개 부문 가운데 가장 권위있는 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다른 부문에 비해 명확하고 현저한 업적 대신 미래의 성과를 고무하는 차원에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수상자를 선정한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2009년 수상자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나 2012년 유럽연합(EU)의 수상이 그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노벨평화상 수상이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중동평화를 달성하는데 다소라도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며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불과 9개월 만에 평화상을 안기게 했다. 정작 당사자인 오바마 대통령 역시 “솔직히 나도 내가 왜 상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의 이변이었다. EU의 수상 역시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해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던 시기에 “유럽대륙의 평화와 화합, 민주화와 인권신장에 기여했다”면서 ‘유럽이 더욱 분발하라는 메시지’라고 사족을 덧붙여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음을 자인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일각에서는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학살을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의 1991년 노벨상 박탈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노벨상 사상 최악의 변절’이라는 비판 속에 노벨 재단은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박탈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국제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에는 ‘수지의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청원에 50만 여명의 사람들이 동의하기도 했다.
 
그동안 100명이 넘는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왔음에도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테러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평화’가 아닌 국가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문제와 결부되며 효력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무퀘게와 무라드의 이번 평화상 수상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두려움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고, 위험에 굴복하지 않고 평화를 위한 끊임없는 그들의 노력이 인정받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인권’이라는 핵심 가치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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