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김문정 기자]
[Economic Report] 저유가 시대
저유가, 국제사회와 글로벌 경기의 새 변수로 부상
미국과 OPEC의 석유를 둘러싼 패권 전쟁
비싼 기름 값에 오래 길들여지다 보니 ‘저(低)유가’라는 말부터가 생소하다. 그러나 국제 유가는 2014년 6월 중순 이래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한때 배럴당 120달러 선을 넘보던 브렌트유는 지난 12월 초·중순, 61달러 선으로 주저앉으며 6개월 새 50% 가까이 폭락했다. 글로벌 시장의 경기가 둔화하면서 석유에 대한 수요 증가도 함께 내리막 추세다. 반면 산유국의 생산량은 되레 늘어 수급 균형이 깨진지 오래다. 유가 추락은 이제 글로벌 경제의 구석구석에서 연쇄작용으로 예기치 않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저유가는 이해관계 일치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품이다?
2014년 12월 29일을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일보다 1.12달러 하락한 배럴당 53.61달러로 마감돼 2009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8년 배럴 당 무려 140달러의 최고가와는 천양지차다. 최근의 급격한 유가 하향세의 원인으로는 국제 원유의 초과 공급 상황 지속, 지정학적 불안 요인 완화 그리고 달러화 강세로 인한 세계 경제 성장의 침체 등이 꼽힌다.
▲OPEC의 수장 사우디의 알리 알 나이미 석유장관은 미국의 셰일가스 채굴을 견제하기 위해 OPEC의 원유 감산 불가 결정으로 맞섰다. |
그러나 미국 일간 시카고트리뷴은 이번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사우디가 ‘공공의 적’인 러시아 죽이기 차원에서 미국과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고 전했다.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 입장에서는 시아파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는 러시아에 대한 불만이 큰 상태다. 미국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이후 러시아를 공공연하게 적대시하고 있다. 최근 지속되는 유가 폭락으로 국세 수입의 45%를 원유에 기대는 러시아 경제가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우려되는 상황으로 몰리면서 이 같은 음모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와 ‘신 냉전’에 돌입한 미국이 유럽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에 돌입하는 한편 사우디와 손을 잡고 유가를 떨어뜨려 러시아 경제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사우디가 암묵적으로 저유가를 용인한 까닭은 유전지역을 확보한 이슬람국가(IS)가 지하시장을 통해 거액의 투쟁자금을 챙기는 데 따른 자금줄 차단용이라고도 보는 견해도 있다. 미국과 사우디는 서방의 이란 핵 협상을 놓고 최근까지 껄끄러운 사이였지만 최근 미국의 IS 격퇴작전에 사우디가 참여하는 등 양국 관계는 회복되고 있다.
아니다, 석유 주도권을 둘러싼 미국과 사우디의 ‘치킨 게임’이다
앞서 말한 것과 반대되는 내용으로 저유가가 미국과 OPEC의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알력 싸움에서 야기됐다는 음모론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원유 수입 적자와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셰일가스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셰일가스는 전통적인 오일이 시추되는 층보다 더 아래층에서 시추가 가능한 자원이다. 과거에는 기술 부족으로 시추 비용이 커서 상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속적인 유가 상승과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는 석유수출기구(OPEC)보다 낮은 손익분기점으로 시추가 가능한 미국의 셰일 업체들이 생겨났다. 생산량 증대에 힘입은 미국은 OPEC로부터 들여오던 원유 수입을 자국의 셰일오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08년 8월 1억8,060만 배럴을 OPEC에서 수입해왔지만, 2014년 9월에는 그 양이 8,700만 배럴로 급감했다. 미국의 이러한 행보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세계 석유 수출량의 35%를 점하는 중동이다. 그러나 중동 측이 석유 공급을 줄여 값을 다시 올릴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셰일가스 생산으로 원유시장 패권을 노리는 미국에 대해 사우디는 OPEC의 감산 불가 결정으로 맞섰다. OPEC에서 가장 입김이 센 사우디는 2014년 11월, 하루 10만 배럴을 증산할 것이라는 발표로 허를 찔렀다.
▲오바마 정부 하의 미국은 IS와 러시아를 견제하며 국제 석유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