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회
[이슈메이커]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회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09.28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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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유행에 민감한 한국 사회

아무도 돋보이지 못하는 획일화 우려도

 

 

흔히들 유행에 뒤처지거나 최신 트렌드에 둔감한 사람을 두고 ‘옛날 사람’이라며 타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냄비’ 성질과도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유행이 시작되면 자신이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할 때 조급함을 느끼게 되고, 이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부정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금방 끓고 금방 식는 한국인만의 유행에 대처하는 자세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집단주의가 불러오는 ‘앤트웨키’

 

‘유행’이란 특정 사회 내에서 여러 사람들이 유사한 행동·문화양식을 같은 시기에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퇴화해 버리기 때문에 영속성을 갖는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 특정 집단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차 일반인들의 흥미와 관심을 받게 되면 유행이 된다. 이와 같은 유행은 그 확산 속도가 빠른 만큼 쇠퇴하는 속도도 빠르다. 특히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정보가 범람하면서 유행의 과부하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기를 끄는 음식점, 옷을 입는 스타일이나 듣는 노래, 사용하는 단어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유행이 나타나면 자연스레 뒤처지는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를 두고 최근 ‘앤트웨키(Antwacky)’가 신조어로 부상하고 있다. 앤트웨키란 ‘시대에 뒤떨어진’을 뜻하는 영어로 영국 등지에서 방언으로 사용되다가 최근 옥스퍼드 사전에 정식 등재된 단어이다. 이러한 앤트웨키는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단순한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넘는다. 전문가들은 앤트웨키라는 단어 속에 항상 유행에 민감해야 하고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저항감이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박성준 문화평론가는 “한국은 유독 집단주의나 군중심리가 강한 국가인데, 이로 인해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대신 집단에 어울리기 위해 유행에 편승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일이 많다”며 “이것이 반복되면 곧 유행을 선도하거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등장하는 유행에 쫓겨버리는 악순환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유독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인의 특성상 원하지 않아도 자신을 유행의 흐름에 맞추려고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개성 가꾸기 위한 노력 필요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했던 고가 패딩과 롱코트 열풍이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패딩이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이 되었다. 이 때문에 심한 경우 특정 브랜드의 패딩을 입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는 한때 지나친 금액의 용돈을 달라고 졸라 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한다는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비슷한 일로 1990년대의 농구화 열풍과 지난해와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기념 한정판 롱패딩 열풍도 들 수 있다.

 

이처럼 유행을 놓치기 싫어하고 남들이 하면 같이 하고 싶어하는 특유의 문화는 지난 겨울을 뒤흔든 가상화폐 광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체계적인 투자의 개념보다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버렸다. 실제 30대 직장인 A씨는 “주위에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하는 모습을 보니 쉽게 동조되어 가상화폐에 얼마의 돈을 투자한 적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조어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상에서 사용되는 유행어를 활용할 줄 모르면 의사소통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많은 사람들이 신조어들을 외우고 다닌다. 실제 지난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모바일 설문조사 플랫폼 두잇서베이가 실시한 ‘2017년 신조어 점검’에서 응답자의 36%가 신조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혹은 ‘유행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라고 답했다. 이는 세이클럽이나 싸이월드,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으로 이어진 SNS 플랫폼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누군가 특정 서비스의 계정을 이용한다면 연이어 자신도 이를 가입하게 되고, 또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앤트웨키’가 되지 않기 위해 곧바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일은 빈번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작정 유행을 따라가면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돋보이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박 평론가는 “고가의 패딩이 한 때 ‘교복’으로 치부되었던 것처럼 맹목적으로 유행만 추구하다 보면 본인만의 개성이 사라지고 모두가 획일화 된 모습의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면서 “유행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가꾸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붗꽃으로 향하는 불나방 떼도 좋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우직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나가는 삶에 대한 자세를 가져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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