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Affairs] 미국 상원 고문 보고서 공개
드러난 미국의 두 얼굴… ‘CIA 고문보고서’ 파장 일파만파
오바마 “가혹한 고문, 미국 가치와 상반돼”
지난 12월 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 공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CIA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 119명에게 가한 고문 수법이 예상보다 훨씬 잔혹한 것으로 드러나자 미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반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해외 공관과 군사시설에 대한 경계 강화를 지시한 가운데 미국의 ‘인권 외교’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한 수감자에 183차례나 물고문…심리학자까지 동원해
총 500쪽에 이르는 이번 보고서는 약 5년 전부터 시작된 조사를 종합한 것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대테러 프로그램에서 정보기관들이 한 역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재점화시켰다. 보고서는 CIA가 수감자를 상대로 상자에 가두기, 쇠사슬로 벽에 묶기, 의식 잃을 때까지 물고문하기 등 가혹행위를 자행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CIA의 잔혹한 심문 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아낼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결론지은 6,300쪽 분량의 기밀문서를 요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수감자 수(119명)를 비롯해 CIA가 이들 일부의 행방을 놓쳤다는 것, 한 수감자는 물고문 도중 의식을 잃었다는 것, 한 명 이상의 수감자가 2주 연속 쇠사슬로 벽에 묶여있다는 것 등 새로운 세부사항들도 추가됐다.
보고서에는 수감자 가혹행위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가득하다. 최소 5명의 수감자에게 의료적 필요가 아닌 고문을 위해 항문으로 음식물 투여(rectal feeding)가 이뤄졌으며, CIA 심문관 5명이 수감자 한 명을 향해 고함을 지른 후 끌어내 옷을 자르고 테이프로 결박한 뒤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는 때리면서 질질 끌고 다니는 굴욕적인 가혹행위도 있었다. 9∙11 테러 직후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된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는 하루에 세 차례, 총 266시간 동안 관만한 크기의 상자(추가로 29시간은 그보다 더 작은 상자) 속에서 물고문을 당했다.
보고서는 또한 CIA가 주바이다와 9∙11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에게 가한 물고문의 실상을 법무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어느 시점에서 주바이다는 의식을 잃고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으며, CIA 내부기록에 따르면 모하메드에 대한 물고문은 “거의 익사”에 가까웠다고 한다. 주바이다는 최소 83회, 모하메드는 183회 물고문을 당했다. 여기에 CIA가 억류하고 있던 119명 가운데 최소 26명은 부당한 구금에 해당되며, 이들이 테러 용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CIA는 수개월씩 이들을 잡아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보고서는 심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력의 80%가 계약자였으며, 미 공군의 SERE(생존, 도피, 저항, 탈출)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두 명의 계약 심리학자가 “향상된 심문 기법(enhanced-interrogation techniques)”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SERE는 미군이 생포됐을 경우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심리학자는 2005년 회사를 차렸고 이후 CIA는 거의 모든 심문 작업을 그들에게 넘겼으며 발생한 비용은 8,000만 달러였다.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은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를 회복하고, 미국이 진정 합법적이고 정당한 사회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며 “CIA가 비밀리에 최소 119명의 개인을 구금하고 때로는 고문에 가까운 강압적인 심문 기법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