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ign Affairs] 드러난 미국의 두 얼굴… ‘CIA 고문보고서’ 파장 일파만파
[Foreign Affairs] 드러난 미국의 두 얼굴… ‘CIA 고문보고서’ 파장 일파만파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5.01.0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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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가혹한 고문, 미국 가치와 상반돼”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Foreign Affairs] 미국 상원 고문 보고서 공개



드러난 미국의 두 얼굴… ‘CIA 고문보고서’ 파장 일파만파


오바마 “가혹한 고문, 미국 가치와 상반돼”





지난 12월 9일(현지시간)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의 중앙정보국(CIA) 고문 보고서 공개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CIA가 2001년 9·11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 119명에게 가한 고문 수법이 예상보다 훨씬 잔혹한 것으로 드러나자 미국 내에서도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미국은 국제법에 따라 고문 책임자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 정부는 반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해외 공관과 군사시설에 대한 경계 강화를 지시한 가운데 미국의 ‘인권 외교’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한 수감자에 183차례나 물고문…심리학자까지 동원해


총 500쪽에 이르는 이번 보고서는 약 5년 전부터 시작된 조사를 종합한 것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대테러 프로그램에서 정보기관들이 한 역할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재점화시켰다. 보고서는 CIA가 수감자를 상대로 상자에 가두기, 쇠사슬로 벽에 묶기, 의식 잃을 때까지 물고문하기 등 가혹행위를 자행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CIA의 잔혹한 심문 기법이 테러 위협을 막아낼 결정적인 정보를 얻어내지 못했다고 결론지은 6,300쪽 분량의 기밀문서를 요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보고서에는 수감자 수(119명)를 비롯해 CIA가 이들 일부의 행방을 놓쳤다는 것, 한 수감자는 물고문 도중 의식을 잃었다는 것, 한 명 이상의 수감자가 2주 연속 쇠사슬로 벽에 묶여있다는 것 등 새로운 세부사항들도 추가됐다. 


  보고서에는 수감자 가혹행위와 관련한 새로운 사실들이 가득하다. 최소 5명의 수감자에게 의료적 필요가 아닌 고문을 위해 항문으로 음식물 투여(rectal feeding)가 이뤄졌으며, CIA 심문관 5명이 수감자 한 명을 향해 고함을 지른 후 끌어내 옷을 자르고 테이프로 결박한 뒤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는 때리면서 질질 끌고 다니는 굴욕적인 가혹행위도 있었다. 9∙11 테러 직후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된 알카에다 핵심 조직원 아부 주바이다는 하루에 세 차례, 총 266시간 동안 관만한 크기의 상자(추가로 29시간은 그보다 더 작은 상자) 속에서 물고문을 당했다.




  보고서는 또한 CIA가 주바이다와 9∙11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알려진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에게 가한 물고문의 실상을 법무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어느 시점에서 주바이다는 의식을 잃고 입에서 게거품을 물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쓰고 있으며, CIA 내부기록에 따르면 모하메드에 대한 물고문은 “거의 익사”에 가까웠다고 한다. 주바이다는 최소 83회, 모하메드는 183회 물고문을 당했다. 여기에 CIA가 억류하고 있던 119명 가운데 최소 26명은 부당한 구금에 해당되며, 이들이 테러 용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CIA는 수개월씩 이들을 잡아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보고서는 심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인력의 80%가 계약자였으며, 미 공군의 SERE(생존, 도피, 저항, 탈출)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두 명의 계약 심리학자가 “향상된 심문 기법(enhanced-interrogation techniques)”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SERE는 미군이 생포됐을 경우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심리학자는 2005년 회사를 차렸고 이후 CIA는 거의 모든 심문 작업을 그들에게 넘겼으며 발생한 비용은 8,000만 달러였다.

  

  민주당의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 보고서를 공개하는 것은 미국이 중시하는 가치를 회복하고, 미국이 진정 합법적이고 정당한 사회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며 “CIA가 비밀리에 최소 119명의 개인을 구금하고 때로는 고문에 가까운 강압적인 심문 기법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번 보고서의 공개를 주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미 상원 정보위원장




찬반 논란 가운데 백악관은 ‘보고서 공개 지지’


이번 보고서는 작성 비용만 4,000만 달러 이상이 들어갔다. 상원 민주당 의원들이 작성한 이번 보고서에 대해 정보위 소속 공화당 의원들은 “CIA 심문 프로그램이 생명을 살리고 알카에다 세력을 약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확신한다”는 내용의 비판성명을 냈다. 반면 정보위에 소속되지 않은 공화당 의원 두 명(존 매케인과 린제이 그레이엄)은 보고서를 치하했다.


  지난 해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이 폭로된 사건에 이어 이번 보고서까지, 미국 정보기관들은 의회 교회위원회가 CIA와 NSA의 비도덕적인 활동을 공개한 1970년대 이래 유례없는 곤경에 처해있다. 국제사회 역시 범죄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벤 에머슨 유엔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CIA 고문 실태 보고서와 관련해 “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제법은 고문 행위에 연루된 공직자들을 면책해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백악관은 보고서 공개를 지지하는 입장을 발표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존 브레넌 국장 등 고위급 CIA 관리들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졌다. 브레넌 국장은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심문 프로그램이 비효율적이라는 보고서의 핵심 논지는 반박했다. 몇몇 전직 CIA 고위 관리들도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이번 보고서를 “사실판단의 착오와 해석상의 오류가 난무한 편향적 보고서”라고 비난했다.


  이번 상원 보고서에 따르면 부시 행정부 시절 콘돌리사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조지 테넛 CIA 국장과 함께 자체 승인된 고문방법을 동원해 테러정보를 끌어내도록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조지 테넛 전 중앙정보국장이나 콘돌리사 라이스 전 국무장관, 나아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딕 체니 전 부통령에게 책임의 화살이 겨눠질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의 대통령, 부통령, 장관과 국장 등 최고위 인사들을 처벌하는 절차를 밟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미국에선 고문수사로 처벌받은 사례가 거의 없어 고문을 직접 수행한 수사관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추진될지도 의문시되고 있다.


  상원 보고서는 또한 부시 전 대통령이 9·11테러 이후 2006년까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CIA의 브리핑을 받은 것은 2006년 4월로 그 전해 11월 워싱턴포스트(WP)가 관련 폭로를 한 뒤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2010년 펴낸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에서 “2002년 체포된 알카에다 핵심 요원 아부 주바이다가 CIA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멈췄지만 9·11테러 사건과 유사한 공격 계획과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CIA가 법무부로부터 승인받은 고문 기술 목록을 봤고 이 중 두 가지는 ‘너무 나갔다’고 느껴서 CIA에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물고문 등 다른 기술은 사용을 승인했다”고 썼다. 이렇듯 보고서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쓴 자서전의 내용이 달라 진실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보고서 공개의 파장으로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다시는 이런 방법에 의존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국제사회 압력, 북한‧중국 등의 역공 직면한 미국


한편 이번 보고서 공개에 다른 파장은 영국과 폴란드 등 유럽으로도 번지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정보기관 소식통을 인용해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잭 스트로 전 외무장관이 CIA의 비밀 작전을 대외정보부로부터 매 순간 보고받았으며 구체적인 사항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고 전했다. 폴란드에서도 이번 보고서를 통해 폴란드 정부가 계속 부인해온 자국내 CIA 비밀감옥의 존재가 간접적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CIA의 잔혹한 고문실태가 공개됨에 따라 미국은 고문책임자들을 처벌하라는 국내외의 압력을 받는 한편 인권외교에서도 역공을 당하고 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엔은 미국의 비인간적인 고문행위를 공개적으로 규탄해야 한다"고 역공을 취하고 나섰다.


  미국은 매년 세계 각국의 인권실태를 파악해 국무부 인권보고서를 발표하고 있고 북한을 포함해 다른 나라의 인권침해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미국은 특히 현재 북한의 인권침해를 유엔차원에서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앞장서 왔다. 이미 중국 등으로 부터 자국의 인권이나 지키라는 역공을 받아 오던 미국은 이번 사태로 인권외교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럽 주요국과 유럽연합(EU)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고문 실태를 담은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보고서 공개에 대해 기밀공개 결정을 높게 평가하고 고문 방지를 강조하는 원칙론적 반응을 보였다. 중국, 북한, 이란처럼 미국과 경쟁하거나 적대하는 국가들이 미국의 인권 후진성을 강력히 비판하는 호기로 삼고 나선 것과는 다른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EU는 10일 캐서린 레이 대변인을 통해 이번 보고서가 미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 침해에 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CIA의 감금, 심문 프로그램에 맞서는 긍정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레이 대변인은 덧붙여 "EU는 테러 대응을 포함한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모든 종류의 고문에 반대한다"라는 기본 입장을 확인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이번 공개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는 차별적인 투명성 증진이라면서 "고문은 자유민주 가치의 중대한 위반으로서, 재발돼선 절대 안될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9·11 이후 잘못된 일들이 저질러졌다"면서 "우리가 도덕 권위를 잃으면,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9·11과 같은 극단적 사건을 패퇴시키려는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84년 유엔 고문방지협약 초안 마련에 참여하고 유엔 반(反)고문 특사로도 활동한 맨프레드 노박은 보고서 공개를 큰 진전으로 평가하면서도 "줄 소송이 일어날 수 있고,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고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루마니아에도 CIA의 고문장소가 운영됐다는 증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는 "고문이 나쁘다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어떤 경우에는 유용할 수 있다"며 테러 대응과 같은 특수 상황을 예로 들어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 드러난 고문 실태는 미국이 과연 선진국이고,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를 선도해온 나라인지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고서 공개 직후 성명을 내고 “가혹한 고문은 미국의 가치와 상반되며 내 임기 동안에는 미국이 다시는 이런 방법에 의존하지 않게 할 것”이라고 약속한 가운데 국제 사회에서 수세에 몰린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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