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人 I - 序] 숨겨져 있던 인류 역사의 또 다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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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5.01.0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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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강한 색채, 고도로 발달된 천문 기술을 가졌던 왕국들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로그人 I - 序] 제5의 문명




숨겨져 있던 인류 역사의 또 다른 페이지


개성 강한 색채, 고도로 발달된 천문 기술을 가졌던 왕국들






인류의 문명은 강에서 시작됐다. 세계 4대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은 모두 큰 강을 끼고 있는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에서 출발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과 황하강 등 지구의 북반구에서도 비슷한 위도에 이들 문명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을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그 다양한 개성이다. 문명이 오직 이 4줄기로부터 시작됐다면 인류는 고착화되고 발전은 경직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류사의 또 다른 출발점, 제5의 문명을 들여다본다.





인류의 기원이자 보고, 아프리카 문명


한반도의 약 136배 면적으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 적도를 중심으로 북부 온대부터 남부 온대까지 다양한 기후대가 걸쳐 있는 유일한 대륙, 약 900여 종족과 100여 개 언어가 공존하는 땅이며 현행 인류의 고향. 바로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이처럼 거대한 땅에 다양한 자연환경과 사람, 문화, 그리고 유구한 역사가 공존하는 아프리카는 인류 문화의 최대보고이자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거대한 영감을 제공한 아프리카 문화는 그 중앙에서 출발해 대서양으로 흐르는 콩고강 유역에서 그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다.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의 초원에서 발원한 콩고강은 적도를 따라 대륙의 심장을 관통한다. 길이는 4,700여 km 로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다음으로 긴 강이며 수심은 세계에서 가장 깊다. 콩고강 유역은 울창한 열대우림과 험난한 물길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 중 가장 개척이 덜 된 오지이다. 이 지역은 원래 수렵채집 사회였으나 약 3,000년 전 서아프리카에 살았던 농경민인 반투족이 대거 이주함에 따라 농경사회로 전환되었다.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되지 않았으나 강 하구 대서양 연안에 콩고 왕국이,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 등이 존재했다. 수천 년 동안 이 지역 반투족들은 물길을 따라 강 주변의 숲과 초원으로 퍼져나가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룩하게 된다. 


▲중앙아프리카 고대문명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유물들



  콩고강이라는 이름은 콩고 왕국에서 따 온 것으로 현재 콩고 강을 끼고 있는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공화국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현재의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은 비옥한 토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며 콩고강 유역의 거대한 산림지대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정글의 초지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콩고강 유역 반투족의 문화적 전통의 뿌리는 종교적 믿음에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휴식처이며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 강과 나무 등 자연 속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죽은 선조들의 영혼을 신성시하며 항상 살아있는 후손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이루지 않았던 것은 독립적이고 부족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북부아프리카의 이집트 문명처럼 체계화된 하나의 신앙을 가지지 않고 각기 개별적인 조상숭배로 흘러갔던 점은 이들이 통일 왕국을 세우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각 부족들의 연합체로서 존재했던 콩고왕국은 제각기 힘의 균형을 이루며 중앙아프리카에서 세력권을 확장해 나갔다. 이 왕국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통해 나름의 번영을 일궜다.


  이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포르투갈이 대서양의 남쪽 지역에 도달한 이후이다. 1482년 포르투갈 인이 콩고 왕국으로 도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간의 관계는 당초에는 대등한 호혜적 관계였으나, 곧 유럽 세계에서 노예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 사이는 급변하게 된다. 콩고왕국에서는 흑인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져갔다. 유럽인들과 아랍인들은 제각기 서쪽과 동쪽에서 아프리카를 잠식해 들어갔으나 험준한 밀림지형과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콩고강의 중류 지역 이상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탓에 유럽사회에서 중앙아프리카는 오래 전부터 ‘암흑 대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특히 유럽인들의 기준에 있어서 하나의 국가체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의 부족국가 사회는 미개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그러나 16세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포르투갈인은 내륙 깊숙한 곳에 ‘심바오에’라 불리는 커다란 돌로 만든 건축물이 있다는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1868년, 현재의 짐바브웨 지역에서 생활했던 독일계 아프리카인 아담 랜더스가 린포포 강에서 240km 북쪽에 위치한 마프지 계곡에서 ‘그레이트 짐바브웨’라는 고대유적을 조사하고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골짜기에 위치한 거대한 유적의 집합인 이곳은 신전 혹은 왕궁으로 사용됐을 건물의 흔적과 주거용 집, 축사, 창고 등의 잔해가 남아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관련 문헌과 발굴 조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노모타파’라는 이 왕국은 한 명의 왕의 통치아래 중국과 동남아시아, 페르시아 등 세계 각지와의 교역을 통해 커다란 번영을 누렸으나 이후 포르투갈 인들의 침략에 따라 점차 쇠퇴해 멸망하고 말았다. 


▲중앙아프리카 최대의 유적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



  중앙아프리카의 문명은 ‘역사’를 그들의 시각으로만 바라봤던 유렵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침탈됐다. 아프리카에 존재했을 그들 고유의 문화는 ‘지중해 문명에 기원을 둔 솔로몬 왕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왕국’으로 포장되며 도굴되고 훼손되었다. 그러나 이후 아프리카의 조각미술의 특징과 개성이 19세기 후반부터 유럽 미술계에 소개되며 이들의 문명은 재조명받게 되었다. 세계적 명성을 떨친 피카소, 마티스, 아폴리네르, 브류케 등은 아프리카 조각의 조형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입체파와 표현주의 미술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신화에서 역사로, 메소아메리카 문명


이탈리아 출신 항해가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에서 유래한 이름 아메리카(America). 콜럼버스가 발견한 이 대륙은 베스푸치에 의해 ‘신대륙(Mundus Novus)’로 명명되며 유럽인들이 몰랐던 새로운 미지의 땅으로 역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도 인류는 존재했고, 거대한 문명 또한 존재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Mesoamerican Vivilization)이 그것이다. 


  최초의 유럽인을 맞이한 아메리카의 모습은 결코 미개하거나 야만적이지 않았다. 서기 2세기경을 전후로 해서 멕시코 동쪽의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발달한 올멕 문명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올멕’은 원주민 언어인 나우아틀어로 ‘고무가 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멕시코의 다른 지방과는 달리 강수량이 많아서 홍수가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자연 환경으로 인해 농업 기반은 매우 취약했고, 관개에 대한 지식도 없어서, 경작지가 생산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설 정도였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악조건이 이들의 문명을 발전시켰다. 농업기술이 미약한 올멕인은 필요한 물품을 다른 지역에서 들여오고 또 자신들의 생산물을 파는 무역에 주로 종사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교류를 통해서 자신들의 종교까지 다른 민족에게 전하게 된다. 


▲올멕 문명의 거대한 석조 두상



  올멕 문명의 뒤를 이어 메소아메리카 지역에 등장한 것이 바로 유명한 마야문명과 아즈텍 문명이다. 마야 문명은 멕시코와 중미 지역에서 발원한 것으로 1세기경에 과테말라, 그 후에는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 남부의 치첸이트사를 중심으로 5세기 전후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0세기경에 이르러 농지가 척박함과 카리브족의 잦은 침략으로 내륙으로 이동하며 쇠망의 길을 걸었다. 이후 10세기 말경에 마야족의 후손들이 다시 유카탄 반도로 진출하며 신 마야 제국을 건설한다. 마야 문명은 사회와 경제 제도, 천문학, 수학, 조각, 의학, 그리고 예술적인 측면에서 메소아메리카의 가장 뛰어난 고대 문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야족은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위도와 경도의 개념, 일식과 월식 그리고 금성을 포함한 가시성좌의 이동법칙을 이해하고 있었다. 마야력은 아즈테카력과 유사했으나, 마야족은 세계에서 0의 개념을 최초로 이해하고 사용한 부족이었다. 마야 문명의 우수성은 특히 건축술에서 잘 드러난다. 마야족은 부신과 모신 및 선악신 등 3대 신을 섬기는 것 외에도 수많은 신들을 숭배하며 이를 기념비나 신전의 벽에 남겨놓았다.


  한편 서기 1276년경 텍스코코 호수를 중심으로 성장한 아즈텍 문명은 멕시코 중앙 계곡의 서부와 남부 지역을 정복하며 전성기를 이뤘다. 3부족의 동맹체계 속에서 발전한 아즈텍 문명은 귀족, 승려, 평민, 상인 및 노예 등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며 공유지와 사유지 및 국유지 개념을 갖춘 체계적인 국가체계를 이뤘다. 특히 아즈텍 문명은 인근 부족의 종교와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상형 문자를 갖고 다신교를 채택했다.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보호신과 농업과 예술의 선한 신, 무당과 도적을 보호하는 악한 신의 3신을 숭배하며 많은 건축물과 예술품을 낳았다. 아즈텍 제국의 건축술은 돌로 지어진 궁전, 사원 및 피라미드 등에서 볼 수 있듯 방대함과 균형미, 완벽성에서 뛰어남을 보였다. 또한 아즈텍력은 20일을 1개월로 한 18개월과 5일의 보충일 수로 하여 1년이 365.25일로 되어 있고, 이를 조정하기 위해 52년마다 13일을 가산하여 정확성에서 매우 뛰어났다.



▲아즈텍력은 현재 과학기술과 비교해도 오차가 많이 나지 않는 놀라운 정확성으로 유명하다.



  아메리카 문명이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아프리카 문명과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이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노예를 잡기 위해, 보물을 약탈하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아메리카로 넘어왔다. 콜럼버스 도착 이전에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은 약 8,0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50년이 지난 1600년경에는 약 10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1492년에서 1650년 사이 아메리카의 인구가 5,000만에서 500만으로 감소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원인 중 가장 큰 것은 유럽인들이 가져온 병원균이었다. ‘세균 충격’이라고 불리는 유럽형 병원균은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죽음의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천연두나 흑사병을 경험했던 유럽인을 맞이할 만큼 충분한 면역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유럽인들에 의해 찬란했던 메소아메리카의 문명은 종언을 고했으나 그 화려한 문화는 남아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신대륙으로 건너온 유럽인들과 그들이 데려온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들, 그리고 토착 원주민의 문화가 융합된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독특한 문화적 전통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1940년대 이후 재조명되기 시작한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라틴아메리카 붐’을 이루며 중남미 문학의 흐름을 형성했다. 196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를 포함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후안 룰포,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수많은 작품들이 세계적인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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