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강한 색채, 고도로 발달된 천문 기술을 가졌던 왕국들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로그人 I - 序] 제5의 문명
숨겨져 있던 인류 역사의 또 다른 페이지
개성 강한 색채, 고도로 발달된 천문 기술을 가졌던 왕국들
인류의 문명은 강에서 시작됐다. 세계 4대 문명이라 일컬어지는 메소포타미아문명,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 황하문명은 모두 큰 강을 끼고 있는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에서 출발했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나일강과 황하강 등 지구의 북반구에서도 비슷한 위도에 이들 문명이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을 더욱 풍족하게 만드는 것은 그 다양한 개성이다. 문명이 오직 이 4줄기로부터 시작됐다면 인류는 고착화되고 발전은 경직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인류사의 또 다른 출발점, 제5의 문명을 들여다본다.
인류의 기원이자 보고, 아프리카 문명
한반도의 약 136배 면적으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 적도를 중심으로 북부 온대부터 남부 온대까지 다양한 기후대가 걸쳐 있는 유일한 대륙, 약 900여 종족과 100여 개 언어가 공존하는 땅이며 현행 인류의 고향. 바로 아프리카의 모습이다. 이처럼 거대한 땅에 다양한 자연환경과 사람, 문화, 그리고 유구한 역사가 공존하는 아프리카는 인류 문화의 최대보고이자 시원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거대한 영감을 제공한 아프리카 문화는 그 중앙에서 출발해 대서양으로 흐르는 콩고강 유역에서 그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다.
아프리카 대호수 지역의 초원에서 발원한 콩고강은 적도를 따라 대륙의 심장을 관통한다. 길이는 4,700여 km 로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다음으로 긴 강이며 수심은 세계에서 가장 깊다. 콩고강 유역은 울창한 열대우림과 험난한 물길로 인해 아프리카 대륙 중 가장 개척이 덜 된 오지이다. 이 지역은 원래 수렵채집 사회였으나 약 3,000년 전 서아프리카에 살았던 농경민인 반투족이 대거 이주함에 따라 농경사회로 전환되었다.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되지 않았으나 강 하구 대서양 연안에 콩고 왕국이,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 등이 존재했다. 수천 년 동안 이 지역 반투족들은 물길을 따라 강 주변의 숲과 초원으로 퍼져나가면서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룩하게 된다.
▲중앙아프리카 고대문명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유물들 |
콩고강이라는 이름은 콩고 왕국에서 따 온 것으로 현재 콩고 강을 끼고 있는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공화국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현재의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은 비옥한 토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하며 콩고강 유역의 거대한 산림지대에 이르게 된다. 이들은 정글의 초지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콩고강 유역 반투족의 문화적 전통의 뿌리는 종교적 믿음에 있다. 그들에게 자연은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휴식처이며 에너지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 강과 나무 등 자연 속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죽은 선조들의 영혼을 신성시하며 항상 살아있는 후손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하나의 거대한 왕국을 이루지 않았던 것은 독립적이고 부족적인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북부아프리카의 이집트 문명처럼 체계화된 하나의 신앙을 가지지 않고 각기 개별적인 조상숭배로 흘러갔던 점은 이들이 통일 왕국을 세우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각 부족들의 연합체로서 존재했던 콩고왕국은 제각기 힘의 균형을 이루며 중앙아프리카에서 세력권을 확장해 나갔다. 이 왕국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통해 나름의 번영을 일궜다.
이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포르투갈이 대서양의 남쪽 지역에 도달한 이후이다. 1482년 포르투갈 인이 콩고 왕국으로 도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간의 관계는 당초에는 대등한 호혜적 관계였으나, 곧 유럽 세계에서 노예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 사이는 급변하게 된다. 콩고왕국에서는 흑인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져갔다. 유럽인들과 아랍인들은 제각기 서쪽과 동쪽에서 아프리카를 잠식해 들어갔으나 험준한 밀림지형과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콩고강의 중류 지역 이상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다. 이러한 탓에 유럽사회에서 중앙아프리카는 오래 전부터 ‘암흑 대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특히 유럽인들의 기준에 있어서 하나의 국가체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의 부족국가 사회는 미개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았다. 그러나 16세기 아프리카를 탐험한 포르투갈인은 내륙 깊숙한 곳에 ‘심바오에’라 불리는 커다란 돌로 만든 건축물이 있다는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1868년, 현재의 짐바브웨 지역에서 생활했던 독일계 아프리카인 아담 랜더스가 린포포 강에서 240km 북쪽에 위치한 마프지 계곡에서 ‘그레이트 짐바브웨’라는 고대유적을 조사하고 전 세계에 알리게 된다. 골짜기에 위치한 거대한 유적의 집합인 이곳은 신전 혹은 왕궁으로 사용됐을 건물의 흔적과 주거용 집, 축사, 창고 등의 잔해가 남아있는 거대한 도시였다. 관련 문헌과 발굴 조사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모노모타파’라는 이 왕국은 한 명의 왕의 통치아래 중국과 동남아시아, 페르시아 등 세계 각지와의 교역을 통해 커다란 번영을 누렸으나 이후 포르투갈 인들의 침략에 따라 점차 쇠퇴해 멸망하고 말았다.
▲중앙아프리카 최대의 유적 그레이트 짐바브웨(Great Zimbabw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