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人 III - 序] 사람의 손에서 기계로의 전환
[로그人 III - 序] 사람의 손에서 기계로의 전환
  • 방성호 기자
  • 승인 2015.01.05 11: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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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다
[이슈메이커=방성호 기자]

[로그人 3 - 序] 사진의 등장과 회화




사람의 손에서 기계로의 전환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열다



▲「니세포르 니옙스 – 르그라의 집 창문에서 내려다본 풍경」 - 카메라 옵스큐라로 8시간의 노출을 주어 촬영한 최초의 사진




19세기에 출현한 사진은 2차원 평면에 3차원을 재현하는 새로운 시도이자 사회, 문화를 포함해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충격적인 등장이었다. 사진의 원리는 이미 오래전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 원리를 설명하고 있지만 19세기의 사회적인 요구로 인해 현실화 되었다. 하지만 카메라의 등장과 기술의 발달로 사람보다 더 빠르고 세밀한 대상의 재현이 가능해지자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이 이룩한 회화의 입지에 커다란 위기가 닥치게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사진의 출현


사진(photograph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것이며 ‘빛으로 그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용어는 1839년 2월 독일의 천문학자 폰 메들러가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다게르식 은판사진(daguerreotype),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등으로 명명된 실험적 방법들을 기록하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영국의 존 허셀 경에 의해 채택되었고, 프랑스의 과학자 프랑수아 아라고가 1839년 7월 3일 파리에서 프랑스 하원에 ‘다게르식 은판사진 공정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사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진이라는 용어는 생겨나고 일반화되었다.


  사진의 출현은 1839년에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되었지만 그 원리는 수세기 전부터 연구되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카메라의 어원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원리를 연구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데, 카메라 옵스큐라는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으로 밀폐된 방이나 상자에 작은 구멍을 뚫거나 렌즈를 장착해 반대쪽 면에 거꾸로 된 영상이 생기도록 만든 간단한 장치를 가리킨다. 거슬러 올라가면 기원전 4세기경에 ‘핀홀 상의 방법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15세기에 이르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카메라 옵스큐라를 구체적인 원근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


  미술가들은 자연을 더 확실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또는 그림을 그리는 노동의 양을 덜어주는 도구로서 이 원리를 이용했다. 선의 궤적이나 음영이 있는 드로잉, 심지어 그림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의 망막에 해당하는 어떤 판에 자연의 모습을 기록할 수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




본격적인 연구와 시행착오


1839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 1789∼1851)는 현대 사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다게레오 타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것은 니엡스(Joseph Nixephore Niepce, 1765∼1833)에 먼저 만들어졌으며 판화 작품으로부터 햇빛과 화학물질의 작용만으로 복제판을 얻어 내었다. 니엡스는 1829년부터 다게르와 함께 사진을 연구했지만 1833년에 갑자기 죽고 난 뒤, 다게르는 1837년에 니엡스와 체결한 협약서의 변경을 그의 아들에게 요구하고, 니엡스의 연구를 바탕으로 다게레오 타입을 발명해 프랑스 정부에 판매하게 된다.


  이러한 다게레오 타입(daguerreo type)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개발 과정에 니엡스는 카메라 옵스큐라로 시골 풍경 하나를 찍는데 8시간을 노출할 정도로 오래 걸렸으며, 처음 다게레오 타입이 등장했을 당시만 해도 대중화시키기에는 노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이 문제였다. 풍경같이 움직이지 않는 고정적인 대상을 표현하기에는 날씨나 주변 상황의 제약을 배제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뿐더러 인물처럼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대상을 찍기에는 초창기 다게레오 타입의 기술력으로는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다게레오 타입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기보다 당시 기술력의 한계에 맞게 흑백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 1839년에 들어와서도 20분가량을 노출시켜야만 했고 이 당시만 하더라도 화가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화가들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항이 동일하다면 자신들은 의뢰하는 대상이 원하는 욕구대로 표현할 수 있었고, 안료(유화)를 사용해 원하는 색감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다게레오 타입의 문제는 오래가지 않았다. 1840년에는 초상사진관이 오픈할 정도로 대중과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증폭되었고 3~4분 정도로 노출시간을 단축시켰으며, 1841년에는 노출시간을 30초가량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타났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인물사진은 급속도로 산업화되어 급격한 발전을 맞이했으며 가격 또한 보급화 될 수 있을 정도로 낮춰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세밀한 사진도 촬영할 수 있게 되었고 화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척 클로스의 자화상 ⓒ flickr



새로운 유행의 전조


사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사진은 인류에게 있어 오랫동안 지속된 꿈과 욕구의 산물이며 사진의 발명가들과 창조적인 사용자들이 오랫동안 실험한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은 훨씬 오래전에 발명될 수도 있었지만 이에 대한 필요성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카메라 옵스큐라, 즉 이미지 형상장치는 적어도 고대부터 그 원리가 알려져 있었으며 현대의 카메라는 이것의 최종적인 결과이다.


  이러한 사진의 출현은 끊임없는 인류의 욕구에 19세기에 와서 과거보다 발전된 과학기술이 합쳐진 산물이라 볼 수도 있지만, 사진의 출현 전까지는 이러한 재현적 이미지가 일반 대중들에게 그다지 일반화된 정보 전달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문자나 언어처럼 보편적인 수단이기보다 특정 계층이나 목적을 위해 존재했던 것이다. 


  재현적 이미지라 하면 회화를 들 수 있는데 사진 이전의 출현 전 회화를 살펴본다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예술작품이라기보다 특정 대상과 목적을 위한 회화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단순하게 소비자와 공급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회화는 한 국가와 종교를 위한 표현의 대상인 경우가 일반적이었고 르네상스 이후에 회화 작품은 귀족이나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초상화나 역사화와 같은 대형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과 인권선언 이후 기존의 사회는 붕괴되었고 사회적 분위기가 모두 변하게 되었다. 대중들은 어느 시대보다도 이미지, 즉 재현적인 작품을 원하게 되고 유행처럼 번지게 되면서 화가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실사와 같은 회화


19세기에 사진이 최초로 등장한 이후 1세기동안 회화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회화와 조각의 새로운 경향인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이 생겨났다. ‘극사실주의’로도 알려진 이 경향은 주로 일상적인 현실을 극히 리얼하고 완벽하게 묘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적인 작가인 척 클로즈의 작품들은 포토리얼리즘(Photo-realism)작품으로 표현하는데, 그의 작품을 굳이 포토리얼리즘이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단순하게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사진을 그린 작업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의 일루젼(환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며, 사진의 이미지를 그린 것이 아니라 사진 그 자체를 그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척 클로스의 작품을 보면 매우 재현성에 충실하며 묘사력이 뛰어난 것을 알 수 있지만 이것은 실제로 매우 평면적인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반사면에 대한 강조가 계속 되풀이되는 것은 회화가 어떻게 보면 안팎이 뒤집혔다고 할 만큼 평면적이 되도록 만드는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며 사진의 초점에 의한 선명함과 흐림을 그대로 표현해 인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사진을 표현한, 결국 평면을 나타내는 작업인 것이다. 이것은 사진에서 나타나는 아웃포커스(out of focus)처럼 초점이 맞는 부분은 선명하게 나타나며 뒤쪽의 부분은 흐리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눈이 아닌 기계의 눈, 즉 카메라를 통해 본 대상이며 이것을 캔버스에 옮겨 표현한 것이다.


  포토리얼리즘 작가들은 단 한순간의 정지된 시간을 표현하려 했고 이것은 사진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다양한 기법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척 클로즈는 격자시스템을 이용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포토리얼리스트로 규정지을 수 있게 했을 뿐 아니라 더욱 사실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대를 거스르는 리얼리스트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사진의 표면적 특성을 표현해 단순한 이미지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진을 택해 그리는 것은 자연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그리기 때문에 3차원의 자연물을 2차원에 옮길 때 일어나는 이미지와 리얼리티의 부조화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한 평면 이미지를 평면 이미지로 확대하는 것이지 3차원은 실재(實在)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현이라는 문제에서 비켜날 수가 있었다. 이외에 사진을 이용하는 작가들은 전체를 구성하면서 종합적으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극히 적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완성시켜 나가면서 전체로 확대해 나가기 때문에 자신의 감성을 제거하고 마치 기계처럼 보다 객관적인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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