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여성스럽지 않아도 괜찮아
[이슈메이커] 여성스럽지 않아도 괜찮아
  • 박지훈 기자
  • 승인 2018.09.05 0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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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박지훈 기자]

여성스럽지 않아도 괜찮아

외적 아름다움보다 자신을 찾는 여성들의 움직임

 

ⓒPixabay
ⓒPixabay

 

소셜 미디어에 ‘#탈코르셋’이라는 해시태그를 입력하면, 수천여 개의 탈코르셋 인증글을 확인할 수 있다.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인정받는 겉모습을 포기하고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려는 탈코르셋(脫-Corset)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꾸밈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치는 여성들의 목소리, 탈코르셋 운동에 대한 우려 섞인 이야기를 전해본다.

 

“남성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코르셋’”

 

코르셋(Corset)은 궁정문화가 유행하던 바로크 시대의 유럽에서 여성들이 풍만한 가슴, 잘록한 허리를 과시하기 위해 착용한 보정용 속옷으로 이른바 ‘아름다운 여성’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였다. 당시 궁정문화 속에서 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드레스는 으레 귀족 여성이라면 입어야 하는 옷이었고, 파티에서 만날 귀족 남성들의 눈을 사로잡는 수단이었다. 정치·경제·예술 분야에서 활동할 수 없는 여성들에게 코르셋은 사실상 ‘강요된’ 복장이었다.

 

남성만큼 교육받고 일하는 현대 여성에게 남성들의 시각적 즐거움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것을 상징하는 코르셋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불편한 존재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어나며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거나 가짜 속눈썹을 떼어내는 등 사회의 미적 기준을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가 나타났다. 심지어 가슴은 감춰야 하는 것이 아닌 남성처럼 대놓고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신체라고 외치는 ‘토플리스 운동(Topless movement)’이 전개되기도 했다. 개인적 차원에서 실천되기 시작한 서구판 탈코르셋 운동은 사회 곳곳으로 파급돼 항공사가 스튜어디스에서 치마 대신 바지를 보급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자!”

 

탈코르셋 운동은 취업 성형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외모에 대한 사회적인 평판이 강한 한국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외모와 몸매, 옷차림과 같은 겉모습에서 해방될 때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탈코르셋은 비단 최근에 불어난 풍조는 아니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의 공중파 생방송 불가는 대표적인 탈코르셋 사례일 수 있다. 누구도 합의하지 않은 미인의 기준, 하지만 대회에서 선발되는 ‘진선미’가 상징하는 긴 머리, 롱다리 그리고 호리병 같은 몸매는 우리사회의 코르셋이었다.

 

2018년 우리는 개인이 참여하는 탈코르셋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들은 사회의 미적 기준을 거부하고 ‘탈코르셋 인증’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 물결은 유명인에게도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 여성들에게 예뻐지는 화장법을 공유해온 뷰티 유튜버들도 동참했다. 뷰티 유튜버 ‘Daily Room우뇌’는 약 2년 간 메이크업 콘텐츠를 만들어왔으나, 탈코르셋 운동을 계기로 유튜브 활동을 그만두게 됐다. 그의 탈코르셋을 보고 동참한 한 유튜브 구독자는 “실제로 집 근처에 나갈 때 남이 시선을 느껴 간단하게 화장을 하거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외출을 했는데,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니 그동안 왜 이렇게 불편하게 남이 시선을 의식하고 살았는지 모르겠어요”라며 회상했다.

 

여성 간 갈등 야기

 

탈코르셋 운동은 대중매체와 삶 속에서 은연중에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의 미적 기준을 해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성적 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한 조류임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나타나 여성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10여 만의 구독자를 가진 한 인플루언서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며 탈코르셋 운동에 참여했다가 다시 기르기 시작했는데, 이를 본 구독자들의 항의를 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의 인플루언서뿐 아니라 여성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일부 사용자들도 탈코르셋과 관련해 다른 이들과 갈등을 겪은 바 있다고 털어놓았다. 배 씨는 30대 여성은 “제 기준에서 여성스럽다는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고 싶어서 적당한 길이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온라인에 게시했는데, 기존에 잘 알고 지내던 사용자들이 “그게 어떻게 ‘탈코’냐, 단지 스타일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공부를 더 해라”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라며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음을 느꼈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임을 밝힌 20대 강수현 씨는 “탈코르셋 인증 사진을 보면 대부분 짧은 머리나 화장기 없는 얼굴, 바지차림인데, 이것도 하나의 코르셋이에요. 오히려 남자처럼 보이는 행색이 표준처럼 여겨지더근요. 진정한 탈코르셋은 외모나 옷차림에 있어서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할 수 없다, 리더로서 역량이 없다, 시집 잘 가면 그만이다’라고 등 여성의 사회적 가능성을 제한하는 편견을 깨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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