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Focus III] 인문학에 대한 관심, 실체는 어디에
[Zoom In Focus III] 인문학에 대한 관심, 실체는 어디에
  • 임성지 기자
  • 승인 2014.11.2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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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학문에 대한 기피가 현실이 될 수도
[이슈메이커=임성지 기자]
[Zoom In Focus III] 표류하는 인문학, 시계제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 실체는 어디에

특정학문에 대한 기피가 현실이 될 수도



대한민국은 현재 출처를 알 수 없는 인문학 신드롬이 불고 있다. 애플 신화의 주역이자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는 제품을 만든다”라는 발언이 있고 나서 인문학은 출판계 마케팅의 ‘빅 테마’가 됐다. 인문학을 주제로 각종 책이 출판되었고, 대기업이나 사회기관에서는 인문학 강연이 성행했다. 또한, 취업관련업체들은 자체조사를 통해 국내 대기업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전국 인문대학 소속 180여 명의 교수가 선언한 ‘인문학의 위기’가 무색하리만큼 대한민국은 지금 인문학에 열광하고 있다. 




인문학에 미친 대한민국

애플 신화의 주역인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DNA에는 기술뿐 아니라 인문학이 녹아있다”며 “우리가 창의적인 제품을 만든 비결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고자 했다”고 생전에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동네 도서관이다”라고 말하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세계를 움직이는 CEO들이 강조하는 인문학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인문학에 관한 수많은 책이 서점에 진열되기 시작했고, 인문학 읽기는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또한, 각종 인문학 강연이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쉽게 전달되었고, 기업이나 기관에서도 인문학을 주제로 강연이 성행했다. 이런 인문학 열풍으로 한국사회의 모습이 변형되고 있다. 지난 10월 삼성그룹 공채 시험에서 상반기보다 한국사의 비중이 커졌고 철학과 세계사를 혼용한 문제가 출제됐다. 현대차그룹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역사에세이를 출제하는 등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역사 등 인문학적 소양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신입사원뿐만 아니라 대기업의 사내교육에서도 인문학은 필수 항목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도 인문학 열풍에 편승해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산하에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를 설치했고, 박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이 창조경제의 밑거름”(6월19일 서울국제도서전), “인문학적 상상력을 확산하는 게 성장 동력의 열쇠”(6월19일 정부 3.0 비전 선포식), “성숙한 선진국이 되고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근간”(8월7일 인문정신문화계 인사 간담회) 등의 말을 했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 시민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은 전에 없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사회현상에 한 전문가는 맹자의 ‘생활이 넉넉해지면 자연히 예의를 존중하게 된다(禮義生於富足)’와 관자의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衣食足而知禮節)’를 언급하며 인문학의 토대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문학이 말하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한국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과는 달리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의 인문학은 황폐화되고 있다. 10년 전부터 대학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학과 통폐합이 진행되면서 취업이 여의치 않은 인문학 관련 학과들이 사라졌다. 최근 5년 동안 전국 4년제 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 수백 개가 폐지됐다는 통계도 있다. 이는 학문적 토대가 돼야 할 대학의 인문학과가 구조조정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전 세계 현상이 되고 있는 인문학 폐지

인문학의 괴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학부 교육 과정에서 전체 교수진의 45%가 인문학 분야에 속해 있지만, 학부생의 15%만이 인문학 관련 전공을 하고 있다. 스탠포드가 가지고 있는 기술 분야의 명성을 고려할 때 가장 있기 있는 전공이 컴퓨터 과학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장 인기 있는 전공 5위 안에 인문학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실제 인문학 교육에 대한 지원이 급격히 줄어든 미국의 몇몇 대학들에서는 독문학이나 철학과 같은 인문학 전공을 아예 폐지하기도 했다. 인문학의 미래는 미국에서 많은 논쟁이 되었다. 1970년대 인문학 전공자가 미국 전체에서 14%였던 것에 반해 현재 7%라는 통계를 제시하며 많은 사람은 인문학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는 2013년 세계 고등교육 시장에서 인문학이 자금 지원이 줄고 정치권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는 인문학 연구 자금 지원금이 2009년부터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비의 0.5%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릭 스콧 플로리다주 지사가 주도한 한 경제대책팀은 2012년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학과’라고 주장하면서 이들 학과 전공학생은 수업료를 더 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에 반대하는 온라인 청원에 2천 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수업료 차별이 플로리다주에서 인문학을 고사시킬 것이라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2013년에는 오클라호마주 출신 공화당 소속 톰 코번 상원의원이 미국의 국가안보와 경제 이익을 증진하지 않는 정치학 연구에 대해서는 국립과학재단의 자금 지원을 제한하는 내용의 개정 법안을 제출해 상원에서 통과됐다. 미 정치권의 인문학 홀대에 대해 현대언어협회의 로즈마리 필 집행이사는 재정적 여유가 없는 이유와 함께 인문학 경시 풍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문학 연구의 가치를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 정치인, 전문가들이 인문학을 경시한다고 주장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인문학 경시 현상이 나타났다. 토니 애벗 총리의 호주 정부는 1억 300만 호주달러(약 995억 원)의 인문학 연구지원 자금을 의학 분야로 돌리겠다고 밝혔고, 영국 정부도 재작년부터 인문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직접 자금지원을 중단, 수업료로 대체토록 함으로써 인문학 경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현상에 대해 하버드대학 호미 바바 인문학연구소장은 “인문학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인도의 경우 인문학은 빈사상태인 반면 직업학교와 경영, 기술 분야 연구는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인문학이 위기에 대해 피에프 포스 뉴욕 콜럼비아 대학 인문학과장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강대학교에서 학제개편안을 통해 인문사회계열학부를 통폐합하고 인문계열 대학원 정원을 조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에 관련 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8년부터 대학평가지표라는 명분으로 인문사회 학과 통폐합에 열중했던 청주대학교는 지난 8월 정부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지정되어 총장퇴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반해, 수강료가 수백만 원을 넘는 고가의 인문학 강의에는 대기업 CEO들이 대거 참석하고, 서점의 인문학 서적은 여전히 높은 판매 부수를 보이고 있다. 이런 인문학의 괴리적 현상이 이는 가운데 마이크 센델 교수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날 반겨주는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인문학을 지속하기 위한 노력

인문학 열풍을 일으키는 한 축에는 기업이 있다. 최근 들어 기업은 경영, 기술개발, 신입사원 공채 등 여러 부문에서 인문학과 공학을 결합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 ‘아이폰 인문학’이라고 하는데 아이폰 인문학의 핵심은 잡스가 추구하고 실현했던 융복합이다. 아이폰 인문학은 신입사원 채용에도 등장했다.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라는 신입사원 공채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소프트웨어 교육과정을 수료한 인문학 전공자들을 엔지니어로 뽑는 것이다. 포스코는 2009년부터 포스코 스칼라십을 운영하고 있다. 기술계의 경우 회사에서 지정한 문학·사회·철학·경영, 사무계는 인문·예술·경영 등 ‘통섭과목’을 일정학점 이상 수강한, 즉 인문학과 공학을 함께 교육받은 학생들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다른 기업들도 신입사원 채용 때 인문학적 소양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런 추세 때문에 최근 ‘인문 면접’을 위한 사설 특강까지 생겨났다. 아이폰 인문학은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으로도 이어진다.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인문도시와 인문강좌사업에 뽑힌 동양대는 전통선비문화와 현대 인문학의 융합으로 영주시의 도시 브랜드 가치와 성장 동력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인문학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는 칠곡군도 지역 인문학을 미래 성장 동력의 자원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인문’을 내세운 도시 또는 마을 사업은 융복합 개념과 성장의 패러다임이 함께 녹아있다. 내용을 뜯어보면 예전 생태도시(마을), 스토리텔링 마을, 역사문화마을 만들기 같은 지역 특화 사업의 구조나 내용과 비슷하다. 이런 ‘아이폰 인문학’이 결코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인문학과 공학의 융·복합이라는 개념이 인문학의 몰락을 보여준다. 이전의 학제간 연구보다 퇴행한 듯하다”고 말하며 “기능적인 관점에서, 순수 인문학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온 융·복합은 그저 공학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인문학을 뜻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문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담으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2년도부터 ‘찾아가는 인문학: 사람다운 삶의 의미와 실천’이라는 주제로 시민인문강좌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경상대학교 김석근 교수는 사업을 통해 인문학적 사유와 성과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김석근 교수는 “사업을 통해 시민들에게 실사구시의 인문학을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 교수는 감성의 시대에 인문학의 사회적 효용가치와 경제적 기여도에 대한 인식을 높여 인문학의 수요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고, 과학기술과 경영학이 인문학과의 융합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미래 경향을 예측하고 미래지향적 제품 생산과 의미를 팔고 사는 감성 마케팅 등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인문학의 단편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문학에 미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인문학 대중화와 함께 인문학 자체를 복원하는 일이다. 학문적 토대가 없는 인문학 대중화는 사상누각(砂上樓閣)일뿐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이 단순한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인문학의 근본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인문학계의 하나 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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