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 In Focus II] 인문계 전공자 취업난 가중…암울한 취업전망
[Zoom In Focus II] 인문계 전공자 취업난 가중…암울한 취업전망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4.11.27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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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안목으로 인문학만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
[이슈메이커=김갑찬 기자]




인문계 전공자 취업난 가중…암울한 취업전망

장기적 안목으로 인문학만의 길을 찾는 것이 필요

 
대다수 인문학자는 문학·역사·철학을 일컫는 문사철(文史哲)은 인문학의 중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학의 존재 이유도 인문학을 바탕에 둔 교양있는 지성인의 양성이라 덧붙인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외면받고 있다. 정부가 취업률을 내세우며 대학을 압박하고 대학은 수용하며 인문학 관련 학과들의 통폐합과 폐지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에서는 신입사원 공채에서 역사와 한자 등 인문학적 소양을 채용의 중요 요소로 내세우고 있고, 이를 서류전형이나 인·적성 검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전공한 졸업생들이 지원 서류조차 낼 수 없는 곳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취업으로 이뤄지는 경우 또한 극히 낮아 ‘인문학 홀대’ 현상은 여전하다.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난 가속화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2월 국내 4년제 대학교 졸업생의 건강보험 연계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국어국문학과의 취업률은 37.7%, 철학·윤리학의 취업률은 41.8%로 나타났다. 반면 기계공학과는 71.7%, 해양공학과는 77.4%로 조사됐다. 이공계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인문계 졸업생들의 2배에 육박하는 가운데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인문대 졸업생 구십 퍼센트는 논(론)다’라는 뜻의 이 신조어는 스펙이 좋아도 취업이 안 되는 인문대 졸업생들의 현실을 반영한 말이다. 

  국내 100대 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중 이공계 출신이 많은 기업도 62곳에 이른다. 기업규모가 크거나 제조업인 경우 이공계 출신이 더 많고, 인문계 출신을 우대했던 경영이나 영업 분야도 이제는 이공계 졸업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 경제 불황으로 경영환경이 나빠지면서 당장 성과나 수익을 낼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지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활용도가 높은 이공계를 인문계 직무에 배치하는 추세가 두드러지기진다.


  이공계 졸업생을 선호하는 현상은 올해 더 뚜렷해졌다. LG와 두산 등은 올해 하반기 공채에서 역사학이나 국문학은 물론 경제학 등을 포함한 인문계 졸업생을 아예 뽑지 않기로 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부터 인문계열 학생들은 신입사원 공채 대상에서 제외하고 상시 채용으로 전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인문계생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금융권마저도 이공계생을 우대하는 분위기다.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하반기 채용 공고에서 ‘이공계·통신·정보기술(IT) 관련 전공자 우대’를 명시하고 있다. 

  같은 인문계 내에서도 역사학, 철학 등을 전공한 ‘순수 인문학도’들은 취업 관문을 뚫기가 더 어렵다. 대한항공의 경우 일반관리직무 분야에서 상경, 법정, 외국어 등의 전공자를 채용하지만 국문학, 역사, 철학 등 순수 인문 전공자들은 채용대상에서 빠졌다. 인문학을 강화한다는 대기업들의 인재 채용 정책이 정부의 인문학 진흥 정책을 의식한 생색내기용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더불어 취업 시즌이 다가오면 개최되던 각종 취업 박람회에서도 인문대생의 설 자리는 없다. 이들이 박람회장에 방문해도 마땅히 채용 상담을 받을 만한 회사를 찾지 못한다. 박람회에 설치된 부스 대부분이 IT 등 주로 공학계열 학생들을 위주로 채용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다. 




인문학과 통폐합과 폐지도 잇따라

지난 10월 중앙대는 ‘학문단위 구조개편 추진계획안’을 새로이 발표했다. 지난번 이루어진 학과 통폐합으로 인한 재학생들과의 갈등이 채 봉합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또 한 번의 통폐합을 예고해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 인수된 직후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다. 인문·사회대는 취업률이 낮다는 이유로 통폐합의 주요 대상이 됐고, 경영ㆍ경제학부 정원은 크게 늘었다. 올해 9월에는 대학원 학과 수도 76개에서 67개로 줄였다. 또 인문·예체능 계열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학과 통폐합과 폐과로 인한 대학과 학생들의 갈등은 비단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태년 의원실은 ‘대학 전체의 학과 수는 2003년 기준 9,542개에서 지난해 1만 1,126개로 16.6% 늘었지만 인문계열 학과 수는 1.7% 줄었으며 학과 수가 감소한 것은 인문계열이 유일하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교육부가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을 기준으로 재정지원 대학을 선별한 최근 3년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 기간 통폐합된 인문계열 학과는 43개에 이른다. 통폐합된 인문계열 학과는 ‘문화콘텐츠학과’, ‘디지털콘텐츠학과’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가톨릭대, 건국대, 경남대, 군산대, 상지대, 순천향대, 아주대, 용인대, 인하대, 청주대,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등이 문화콘텐츠학과를 개설했다. 이들 학과는 소설, 시, 근현대사 대신 ‘공연예술기획론’, ‘출판기획론’, ‘만화산업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상명대는 역사학과를 역사콘텐츠학과로 개편했다. 취업률과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순수 인문학을 ‘응용인문학’으로 대체한 것이다.


  인문계열 학과의 통폐합은 순수 인문학 강좌의 축소로 이어진다. 석·박사급 연구자가 강단에 설 기회도 줄게 된다. 최근 각 대학에 개설된 ‘출판기획론’ ‘디지털스토리텔링’ 강좌는 대부분 외부 강사가 맡는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줄면 시간강사·저술·출판 일자리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또한 대학 구조조정 여파로 강사들이 대거 퇴출당해 교수들에게 강의가 몰리면서 일부 학과의 경우 교수 1인당 가르치는 학생 수가 300명까지 늘어나는 등 교육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 대다수 인문학과 교수는 “인문계열의 구조조정이 교육 및 연구 수준의 저하를 가져와 인문학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며, 이는 인문학도들의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 저조라는 악순환을 반복시킨다“고 안타까워했다.

  한편에서는 인문계열 학과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시각도 있지만, 이는 정부가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한다며 1995년 ‘5·31 교육개혁안’을 통해 대학 설립요건을 완화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됐다. 기업의 단기적인 선호에 따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학의 학과 구조조정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성균관대 철학과 류승완 박사는 “1980년대 경제 호황기에는 인문학 전공자들도 취업이 잘 됐지만 외환위기 이후 취업률이 낮아지면서 ‘인문학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습니다”며 “확고한 교육철학이 없는 대학들이 유행에 휩쓸려 교육부의 요구를 대안없이 수용하면서 인문학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무너지는 인문학 대안은 있다.

한편 교육 전문가들은 몇 가지 상황들만 뒷받침된다면 인문학을 통한 교양 있는 지성인 양성이라는 대학 본연의 목표로 돌아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대학 평가 지표에서 취업률을 배제하는 것이다. 인문 계열 학과들의 주요 폐과 원인은 취업률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11년부터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과 학자금대출 제한대학을 선정하고 있다. 평가지표 중 배점이 가장 큰 항목은 재학생 충원율이고, 취업률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재학생 충원율에는 졸업 후 취업 가능성에 대한 재학생들의 평가가 반영된다. 사실상 취업률이 결정적 지표다. 대학들이 인문계열 학과를 구조조정 1순위에 올려놓는 것은 인문계열이 전체 취업률을 끌어내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문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인재를 장기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지 않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재만 뽑으려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변화를 읽는 능력이나 갈등해결 능력에서는 인문계열 전공자들이 유리하다. 근시안적인 채용 관행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회적 투자라는 생각으로 학술연구를 지원할 필요도 있다. 1978년 설립된 대우재단은 200억 원을 투자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한 기초학문 분야 연구를 지원했다. 연구 성과 중 일부는 대우학술총서로 나왔다. 대우학술총서는 1983년부터 지금까지 600권 넘게 출간되며 기초학문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문계와 이공계의 융합 교육도 인문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주요 요소이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100여 년 전 시작된 근대 대학교육 제도의 산물이다. 이를 타파하고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융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학부생을 상대로 교양 교육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학의 인문계열 커리큘럼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인문계열의 많은 부분을 지식 교육이 아닌 인간교육에 초점을 맞춘 교양 교육으로 재편해야 될 것이다. 

  ‘인문학으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대학의 주장과, ‘인문학이야말로 먹고사는 일의 동력이 된다’는 대학 밖의 주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충돌할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든 기업이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창의성의 원천은 인문학이다. 실용학문 또한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안 된다. 대학이 인문학을 다시 살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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