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Cover Story] 무일푼 성공 신화 이룩한 집념의 기업가
[이슈메이커_Cover Story] 무일푼 성공 신화 이룩한 집념의 기업가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8.08.31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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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무일푼 성공 신화 이룩한 집념의 기업가
사업에 대한 진정성으로 영국 국민가방 브랜드 일구다
 
ⓒ 줄리 딘 CEO 트위터
ⓒ 줄리 딘 CEO 트위터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여덟 살 어린 딸의 소식을 들은 한 엄마. 참담한 마음에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에게 조금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마련해주고자 사립학교로의 전학을 선택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너무나 비싼 학비에 고개를 떨궜던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수중에 있던 775달러(약 87만 원)를 들고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업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자본이 여유롭지도 않았던 그녀지만, 수년 뒤 영국 국민가방의 CEO로 다시 태어났다. ‘사첼 백(satchel bag)’으로 잘 알려진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Cambridge Satchel Company)’의 CEO 줄리 딘(Julie Deane)의 이야기다.

 
자식에 대한 사랑, 사업으로 이어지다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의 사첼 백은 엠마스톤, 테일러 스위프트, 알렉사청, 레이디가가 등과 같은 수많은 유명 셀러브리티들의 ‘데일리 잇 백’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다. 파리 프렝땅(Printemps), 런던 해로즈(Harrods)를 비롯한 전 세계 100여 개가 넘는 국가의 유명 백화점 및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국내에도 많은 팬층을 확보한 상태다. ‘손잡이가 있는 학생 가방’을 뜻하는 사첼 백(Satchel Bag)의 대중화를 이끈 대표 주자이자 세심함이 돋보이는 실용적 디자인으로 연령과 성별 관계없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줄리 딘 CEO의 창업 배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줄리 딘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딸인 에밀리(Emily)를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에밀리의 모습을 본 줄리 딘은 교육 환경이 좋은 사립학교로의 전학을 결심했지만, 에밀리와 그녀의 동생이 전학에 필요한 돈은 무려 2만 4,000파운드(약 3,400만 원)가량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중에는 고작 775달러(약 87만 원). 자녀의 교육 환경 개선 앞에 돈이라는 큰 장벽을 만난 것이다. 깊은 고민에 빠진 줄리는 자신이 가진 종잣돈을 바탕으로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고, 10개의 아이디어를 내 그 사이에서 고심하던 중 자신이 겪었던 ‘가방’에 대한 불편함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동안 아이들이 들었던 책가방이 튼튼하지 않았을뿐더러 마음에 드는 디자인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회계법인과 대학 교직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전부였던 그녀였기에 가방 사업은 사실 무모한 도전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녀는 강한 어머니였다. 아니, 강해야만 하는 어머니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도전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미국의 월간지 ‘배니티 페어(Vanity Fair)’와의 인터뷰를 통해 줄리 딘은 “사첼 백은 가장 영국다운 아이템입니다. 학교에 다닐 때 사첼 백을 안 멨던 학생은 없을 정도인데, 정작 영국에서 사첼 백을 만드는 이가 없었죠”라고 전했다.
 
줄리 딘 CEO는 ‘내 아이가 메고 다닐 가방’이라는 생각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진행했다. 기업의 상징인 자전거가 새겨진 로고도 직접 그렸을 정도다. ⓒ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
줄리 딘 CEO는 ‘내 아이가 메고 다닐 가방’이라는 생각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진행했다. 기업의 상징인 자전거가 새겨진 로고도 직접 그렸을 정도다. ⓒ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

‘큰 무대’로의 진출이 승부수

두 자녀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저 질 좋고 예쁜 가방을 만들고자 했었고, ‘내 아이가 메고 다닐 가방’이라는 생각에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진행했다. 기업의 상징인 자전거가 새겨진 로고도 직접 그렸다. 동시에 회사명을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로 지었다. 직역하면 ‘캠브릿지 책가방 회사’다. 웹사이트 코드화와 구축도 3일간 매달린 끝에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 첫 샘플 디자인은 시리얼 포장 상자에 갈색 종이를 덧대어 그렸다. 직원을 고용할 형편도 아니었기에 친정어머니인 프레다 토마스(Freda Thomas)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월급 없이 약간 신경질적인 자신의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적임자였기 때문이라는 후일담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됐다. 판매 가능한 상품도 없었고,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가 전무했던 상태였기에 브랜드 론칭 후 필요한 잠재고객을 유치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녀는 패션지 에디터, 유명 블로거, 지역 언론 관계자 등에게 매일같이 300통가량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와 동시에 제작자를 선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시제품만 있는 작은 회사지만, ‘내 회사 가방이 어디에서,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철칙 하에 제작자 선정에 공을 들였다. 제작자를 찾기 위해 국내외로 수소문하던 중, 스코틀랜드의 한 학용품 가게에서 비슷한 상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을 듣고 무작정 연락을 취해 가방 제조사를 알아내고자 했다. 무려 1년 반 동안 끈질기게 제조사를 문의한 결과 제조사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가방을 세상에 내놓았다. 모든 비용은 최소화였기에 초기 가방 모델은 자신의 아이들인 에밀리와 맥스였다. 초기 고객들 역시 친인척과 주변 지인이었다. 매출이 부족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큰 무대’로의 진출이었다. 잠재고객 유치를 위해 진행했던 이메일 발송에 더해 샘플도 발송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최대의 노력과 투자를 했고, 사업 1년 차 만에 이탈리아 유명 패션 잡지인 보그(Vogue)지에 가방이 소개되면서 기업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의 사첼 백은 The Guardian Christmas Gift Guide에 소개됐고, Urban Outfitters에 입점하게 된다.
 
이듬해인 2010년, 줄리는 인생 최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유명세를 탄 이후에도 이메일 발송과 샘플 발송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2010년 신제품이었던 형광 색상의 사첼 백을 세계적인 패션행사인 뉴욕 패션위크에 참가하는 패션 블로거들에게도 보냈고, 이렇게 보내진 가방을 메고 나온 이들이 행사장 제일 앞쪽에 위치하며 세계적으로 사첼 백을 알리게 됐다. 행사 전까지만 해도 1주일 판매량이 100개 남짓이었지만, 행사 후 약 1만 6,000개가량의 주문이 들어왔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캠브리지 사첼 가방은 그해 뉴욕 패션위크의 최신 상품 중 하나로 주목받았고, 뉴욕타임스(NYT)는 캠브리지 사첼을 ‘영국의 잇 백(it bag)’으로 지칭했다. 대형 백화점에서 입점하기 시작했고, 세계적인 브랜드들로부터 제휴 요청이 쇄도했다.
 
2008년 775달러로 시작한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는 10년 뒤인 2018년, 연 매출 1천억 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했고, 세계적인 셀럽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도 자리 잡았다. ⓒ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
2008년 775달러로 시작한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는 10년 뒤인 2018년, 연 매출 1천억 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했고, 세계적인 셀럽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도 자리 잡았다. ⓒ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

시련을 기회로 바꿔

승승장구하며 대내외적으로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던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지만, 시련도 있었다.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는 2010년 뉴욕 패션위크를 통해 주목받은 직후, 늘어난 주문량에 레스터에 있는 한 제조업자와 계약을 맺었는데, 해당 업체가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의 가죽을 빼돌리고 줄리의 디자인도 본뜬 ‘자첼(Zatchel)’이라는 짝퉁 브랜드를 론칭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녀는 해당 업체를 찾아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가관이었다.
 
줄리 딘 CEO는 “‘당신은 멍청한 여자라 제조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얘기하며 자기가 뱉은 말에 상당히 만족해하면서 휙 돌아서서 피하듯 자리를 떠났다”고 전했다.
 
이 같은 태도에 그녀는 해당 제조업체를 신뢰할 수 없었고,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해당 업체 근처에 공장을 세웠고 그곳에 있던 직원 상당수를 자신의 공장으로 합류시켰다. 한 달도 안 되어 그녀는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만의 제조공장을 만들었고 정상화시켰으며, 이 공장은 현재 약 6,500만 달러(약 700억 원)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성장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셈이다.
 
또한, 기업 규모가 빠르게 커지자 많은 벤처캐피털(VC)로부터 러브콜도 이어졌다. 심사숙고 끝에 2014년 2,100만 달러(약 225억 원)의 투자를 진행했지만, 투자 후 VC가 경영 전반에 관여하며 줄리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게 됐다. 이는 기업에 악재로 작용했고, 회사 매출은 급감했다. 결국 2016년 줄리는 경영 전면에 복귀했고 다시금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며 최근에는 영업수지도 흑자 전환을 앞에 두고 있다.
줄리 딘 CEO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나만큼 내 사업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더 큰 성장 위해 초심 지키다
 
2008년 775달러로 시작한 캠브리지 사첼 컴퍼니는 10년 뒤인 2018년 현재, 연 매출 1천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상을 받으며 영국 왕실의 인정을 받았고, 영국 국민가방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영국의 최고 명문대인 캠브리지 유니버시티 학교의 공식 가방 브랜드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셀럽들이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로도 자리 잡았다.
 
자녀의 학비 마련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던 사첼 백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니크한 가방 브랜드 중 하나로 성장시킨 줄리 딘 CEO. 사업에 대한 그녀의 용기 있는 결단과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고, 자녀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자 했던 개인적인 목표도 이룬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여성이다. ‘내 아이가 멜 수 있는 가방,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가방을 만든다’는 초심을 유지하며 열정적으로 사업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그녀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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