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ey & Economic II] 국가경제 1경 시대, 추락하는 화폐 위상
[Money & Economic II] 국가경제 1경 시대, 추락하는 화폐 위상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11.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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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노미네이션 혹은 2만원권 발행, 돌파구는 어디인가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Money & Economic II] 화폐개혁의 허와 실



국가경제 1경 시대, 추락하는 화폐 위상

리디노미네이션 혹은 2만원권 발행, 돌파구는 어디인가



‘원단위절삭’. 매달 우편함으로 날아들어 오는 요금통지서에는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이 문구가 표기되어 있다. 경제 규모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원단위 금액은 은행에서조차 취급하지 않는 ‘없는 돈’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 10월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폐기된 10원짜리 동전은 1,000만개에 달하며, 100원짜리는 2,500만개, 50원 짜리 동전은 800만개, 500원은 360만개가 폐기되며 총 49억 원에 달하는 동전들이 분쇄기로 들어갔다. 이제 동전 단위의 금액으로는 아무것도 구입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반증이다.




1경 = 10,000,000,000,000,000

  최근 실시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10원짜리 동전을 줍겠는가’라는 질문에 단 20%만이 줍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100원짜리 동전도 40%에 가까운 사람이 줍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유는 ‘가치가 없어서’, ‘귀찮아서’였다.

  제조단가가 액면가를 뛰어넘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던 구형 10원 동전은 지난 2006년, 구리 함량을 48%까지 낮춘 새 10원 동전을 발행했다. 하지만 발행 잔량은 지난해 처음으로 80억개를 넘어섰고, 환수율도 4.07% 수준으로 다른 동전에 비해 월등히 낮게 평가됐다. 카드 소액결제가 활성화되고, 교통요금 지불 등을 카드가 대체하면서 동전의 사용률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100원 짜리 동전 하나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됐고, 최근에는 500원짜리 물건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처럼 화폐시장의 규모가 변화하면서 화폐단위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순자산 규모는 1경 630조원. 1경을 풀어서 표기하면 0이 16개나 붙는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이 1,000 단위에서 이뤄지고, 국가경제 규모가 1경을 넘어선 마당에 우리의 화폐표기는 아직까지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화폐단위의 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바로 환율이다. OECD 국가를 통틀어, 미국 1달러대 환율이 네 자리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환율을 가진 나라도 전 세계에서도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정도 밖에 없다. 한 경제전문가는 “화폐단위는 국가의 위상과 신임도를 측정하는 기준이다. 화폐단위를 조정하면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을 개선할 수 있다”라며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 Redenomination)’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화폐개혁을 통해 지하에 숨어있는 돈을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짐바브웨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화폐개혁을 실시했지만, 오히려 물가가 급등하면서 자국 화폐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짐바브웨의 우유는 한 병에 1억, 과자 한 봉지는 2억 짐바브웨 달러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돈이 실물 자산에 몰려 부동산이 과열될 수 있다는 점과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새롭게 개편하는 데에 수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는 점도 지적했다.




화폐개혁 실패한 북한

  그동안 정부에서도 불합리한 화폐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지난 2009년 발행된 우리나라 최고금액 화폐 5만 원권이 그것이다. 지난 2013년 한 해 동안 발행된 화폐 중 5만 원권이 67%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의 경제 규모는 거대해졌다. 이 같은 현상에 비추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것의 일각의 주장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거래단위를 축소하는 정책을 말한다. 현재 네 자리 대에 머물러 있는 환율을 우리 경제 규모에 맞게끔 자릿수를 축소하는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2005년 이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추진됐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의 리디노미네이션 논쟁이 부각됐었다. 



  이러한 리디노미네이션 논쟁은 그때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부패방지, 위조지폐 방지를 목적으로, 지금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의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하게 되면 일단 거래가 편리해 지고, 우리나라의 대외 위상이 제고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빵 한 봉지를 2원에 사는 것과 2,000원에 사는 것이 느낌이 다른 것과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에 대해 서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화폐와 관계없는 부동산에 투기가 집중될 문제, 화폐 주조와 교환에 따른 거래비용이 증가하게 된다는 단점 또한 존재한다.

  국가정보원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말 북한에서는 일부 구권지폐의 유통을 금지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기존 최고권 액인 5,000원권의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며 구 화폐 사용을 전면금지 시키고, 2017년까지 신권으로 교환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9년의 화폐개혁 실패를 몸소 체험했던 북한 주민들은 자국화폐 대신 중국 인민폐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시장에서는 잔돈, 거스름돈까지 1위안권과 5위안권 등 중국화폐를 사용하며 자국화폐의 가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의 화폐경제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현재 최고권액인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숨어들어가고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섣부른 화폐개혁은 오히려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리디노미네이션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

  지난 4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 “내부 검토는 다 돼 있다”며 “다만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 총재의 말은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있는 게 분명한 만큼 누구도 먼저 나서서 책임을 지고싶지 않은 사안인 것이다. 지금까지 수 차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이 좌절된 것도 이 때문이다. 5만원의 탄생 또한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의 저울질 가운데 선택된 것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화폐 재발행, 시스템 변경, 현금인출기 및 자판기 교체 등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여기에 국민 불안 심리까지 더해지고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로선 쉽지 않은 선택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도 거론된다. 구권을 신권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탈루된 현금 소득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으로는 거론하기에 리디노미네이션은 지나치게 강력한 대책이다”라며 “거래 편익은 늘지만, 낮은 화폐단위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러운 상품값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경제적 부담이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또 다른 장점으로 얘기되는 우리나라 돈의 대외적 위상 제고는 어떨까. 1달러당 1,000원이 넘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것처럼 비춰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화폐 단위의 하향 조정이 아닌 원화 국제화를 비롯한 금융 국제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렇다 보니 ‘필요성은 인식하지만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게 중론일 수밖에 없다. 5만원이 고액권의 지위를 누리는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공산이 커 보인다.






2만원권 발행으로 화폐 돌파구 노리나

  위험성 높은 리디노미네이션의 차선책으로 거론되는 것이 ‘2만원권 신설’ 대책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2만원권 신설 등 화폐액면체계 조정을 검토하며 5만원권의 지하경제 유입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직은 논의 수준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하고 있다.

  한국은행 발권국은 2014년도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0월 7일 이한구 새누리당 의원이 5만원권 도입에 따른 지하경제 조장우려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문에 “5만원권 도입의 편의 및 비용을 점검하고, 중장기적으로 화폐 액면체계의 합리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는 화폐단위를 하향조정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현 ‘1·5 체계’에서 ‘1·2·5 체계’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화폐 액면은 1950년 최초 한국은행권(1,000환과 100환)을 발행한 이래 ‘1·5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화 10원, 50원, 100원, 500원과 은행권인 1,000원, 5,000원, 1만원, 5만원권이 발행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나라에선 ‘1·2·5 체계’를 주로 사용한다. 미국의 경우 1달러, 2달러, 5달러 순으로 화폐 단위를 매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액면체계가 변경될 경우 2,000원권이나 2만원권이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특히 2만원권 신설시 5만원권에 과집중된 고액지폐에 대한 수요가 분산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지난 2월 한국은행은 ‘국제화폐 콘퍼런스’에서 ‘화폐 액면체계 변경’의 경험과 경제적 영향을 주제로 비공개 토론을 한 바 있다. 10억장 돌파를 넘어선 5만원권 발행량과 올해 22.7%에 불과한 환수율을 고려할 때 화폐개혁의 필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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