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열기에 휩싸인 홍콩…시진핑, 선택의 기로에 서다
민주화 열기에 휩싸인 홍콩…시진핑, 선택의 기로에 서다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10.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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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텐안먼 사태’ 피하면서 홍콩 시민들 달랠 수 있을까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International Politics] 홍콩 민주화 시위



민주화 열기에 휩싸인 홍콩…시진핑, 선택의 기로에 서다


‘제2의 텐안먼 사태’ 피하면서 홍콩 시민들 달랠 수 있을까






중국은 10월 1일 국경절부터 일주일간 모든 학교, 관공서, 회사들이 쉰다. 이 기간 동안 중국 각처는 물론 심지어 한국과 인근 나라까지도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행업과 관련 산업계는 이러한 대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홍콩 역시 한국처럼 중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쇼핑과 관광명소로 사랑받아 왔다. 그러나 올해 국경절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것은 9월22일부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시위 때문이다.





중국 본토 간섭에 화난 홍콩 시민들 


  시위의 직접적인 발단은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방식에 관하여 지난 8월 31일 북경에 있는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홍콩인들의 반발이다. 현행 홍콩행정장관 선거는 약 80% 친 중국계 인사들로 구성된 1200명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이러한 간접선거 방식에 대하여 홍콩인들은 중국 중앙정부한테 홍콩의 민의를 대변할 사람을 직접 뽑고 싶다고 줄기차게 요구하였고, 이에 대하여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홍콩시민들의 직접선거 열망을 수용함과 동시에 새로운 선거방식을 결정한 것이다. 2017년에 시행될 새로운 방침은 친 중국계 인사들로 구성되는 1200명의 후보추천위원회에서 2~3명의 후보를 낸 다음, 주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이들 중 한 명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홍콩주민들은 이것은 자신들의 민의를 온전히 대변하기엔 부족하며 오히려 중국 중앙정부의 방침을 전달하고 시행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중국 전인대가 마련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지난 9월 28일 도심 점거 시위에 본격 나서면서 경찰과 충돌, 수십명이 다쳤다. 홍콩 범민주파 시민과 학생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정부청사와 입법회(한국의 국회격) 부근에서 전인대 선거안 철회와 새로운 정치개혁 방안 마련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홍콩 경찰은 이례적으로 최루탄, 최류액 스프레이, 곤봉 등을 사용해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홍콩경찰이 최루탄을 사용한 것은 지난 2005년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당시 벌어진 한국농민들의 항의 시위 이후 처음이었다.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향해 홍콩 경찰이 9년 만에 최루탄을 사용하며 도심점거 시위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의 반환 이후 최악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지난 9월 29일 미국의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분위기가 급변하면서 이번 홍콩 민주화 시위가 홍콩 역사에 역사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로 9월 28일에만 최소한 38명이 부상했다. 29일에도 긴박한 상황은 이어졌다. 도심으로 통하는 도로가 일부 봉쇄되면서 아침 출근시간 때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졌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사태가 악화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전까지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은 거의 없었고 체포된 시민들도 몇 시간이 지나면 풀려났기 때문이다.





‘우산 혁명’…경찰 강경 진압이 시위 부채질해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인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를 놓고 대다수 홍콩시민들은 원래 이 같은 시위가 홍콩의 친(親)비지니스 평판에 오점을 남기고 시장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면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실제로 9월 전에 실시된 많은 여론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홍콩 시민들은 ‘센트럴을 점령하라’를 지지하지 않았다. 지난 8월에 실시된 2개의 여론조사에선 홍콩시민의 절반 이상이 중국 정부가 마련한 행정장관 직선제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안은 행정장관 출마자를 중국 정부에 친화적인 사람들로만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9월 28일 오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최루탄이 터지면서 홍콩 도심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같은 경찰의 과격대응은 홍콩시민들을 심각하게 동요시켰다. 시위 초기 홍콩매체들의 온라인 토론방은 경찰의 야만성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찼다. 갈수록 많은 홍콩시민들이 자신들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노란리본으로 교체하면서 시위대에 지지를 보냈다.


  시위 초기 경찰의 최루탄을 피하기 위해 시위대가 우산을 펼쳐 들어서 이번 사태를 일명 '우산시위', '우산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시위를 주도하는 층이 주로 학생과 지식인 중심이고 여기에 적지 않은 시민들이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중소 상인들과 경제계를 중심으로 우려와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국경절 관광특수 기간 매출에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인들에게서 볼멘소리가 적지 않게 터져 나왔다. 홍콩여행협회 주석 후자오잉은 비자발급제한으로 중국 내지 여행객이 감소해서 매출이 약 40% 이상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불만으로 급기야는 노란색을 상징하는 우산시위에 반대하는 파란시위까지 등장해서 양 시위대간에 긴장과 충돌을 야기했다. 한편 연휴가 막바지에 이르자 출근과 학교 등교 등으로 시위 열기가 조금씩 수그러들기도 했다.





다시 주목 받는 홍콩의 반중 투쟁사


  한편 이번 시위와 관련해 과거 홍콩의 반중(反中) 투쟁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앞서 이뤄진 두 차례의 시위는 모두 홍콩 시민들의 승리로 끝나 이번 시위의 기폭제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10월 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아시아판을 통해 이같이 전하고 “중국과의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홍콩 시민들은 1997년 중국 본토로 반환된 이래 두 차례 승리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홍콩 시민들의 첫 승리의 역사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콩 정부는 중국에 대한 반역과 체제 전복, 국가기밀 유출, 외국 정치단체의 홍콩 내 정치행위 등을 모두 금지하는 내용의 기본법 제23조를 바탕으로 한 ‘국가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반체제 인사를 억압할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시민들은 즉각 반대 시위에 나섰다. 5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하자 결국 홍콩 정부는 한발 물러나 법안을 철회했다. 그 여파로 둥젠화(董建華) 초대 행정장관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2005년 사임했다. 


  두 번째 승리는 2년 전인 2012년의 일이다. 홍콩 정부가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애국교육’ 과목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하려 하자 고등학생들이 주축이 돼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여 과목 도입을 막아낸 것이다.현재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으로 불리는 학생 운동가 조슈아 웡(黃之鋒)도 이때 중ㆍ고교 학생운동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조직해 시위를 주도했다.


  이처럼 홍콩 정부와 중국을 상대로 벌인 시위에서 시민들이 승리를 쟁취한 바 있어, 이 같은 경험이 이번 민주화 시위를 지속하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WSJ은 홍콩 시민 대다수가 중국 공산당 체제를 피해 이주해온 사람들이며,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반중 정서가 더 뚜렷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다만 저널은 두 차례의 시위가 모두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2003~2013년 재임)의 권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던 집권 초기와 말기에 발생해 홍콩 시민들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분석하고 그와 달리 집권 2년차에 들어간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강경 노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깊어지는 중국 당국의 고심


  홍콩 시민들은 앞 서 말한 두 차례의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중국 본토 정부가 홍콩의 사회정치 체제에 대한 개입 수위를 계속해서 높이려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됐다. 지난 6월 중국 정부가 주권 반환 이후 처음으로 발간한 홍콩백서를 통해 홍콩의 관할권이 중국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번 시위는 중국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면서 더욱 가열됐다. 전인대가 행정장관 선거안을 확정하기 이전부터 홍콩 시민들은 거리 행진을 벌이며 후보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도록 하는 보통선거 제도를 요구했다. 중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홍콩 시민의 요구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 당국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 분노로 바뀌면서 시위 에너지가 더욱 크게 방출됐다는 평가다. 


  홍콩 시민들의 이런 태도에는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 개인에 대한 불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는 취임 초기부터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 인물이다. 2012년 행정장관 선거 당시 정무사장(총리)을 지낸 헨리 탕 후보의 당선이 유력했지만 선거 막판 그의 자택에 불법 구조물이 발견되면서 민심이 렁 장관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막상 렁 장관도 당선 직후 그의 집에서 불법 구조물이 발견되면서 곧바로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그의 취임식 당일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에 40만여명이 참여했을 정도였다. 이후 반정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그는 사퇴 요구를 받았다. 이번 시위대가 들고 있는 피켓에 적힌 ‘689’라는 숫자도 그가 1200명 선거위원 중 고작 689표를 얻어 당선된 점을 비꼬기 위한 것이었다. 


  반중국 시위 확산에 중국 당국의 고심도 깊어졌다. 중국 정부는 일단 홍콩 당국에 강경 대응을 주문하면서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를 취했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홍콩 당국이 시위대에 발포할 계획까지 수립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무력 진압 계획을 수립한 실무진을 질책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중국 지도부가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 방향을 놓고 얼마나 고심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시 주석으로서도 참으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가 만약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 이번 사태는 ‘제2의 톈안먼(천안문) 사태’로 비화된다. 이 경우 홍콩에 대한 중국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시 주석에게는 ‘폭력적 지도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경우 중국 본토인들의 민심 이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시 주석이 쌓아온 개혁적이고, 친인민적인 이미지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셈이다. 

  




경제피해 속출, 국경절 황금특수 실종 


  그렇다고 홍콩 시민들의 완전한 보통선거 요구를 들어주기도 어렵다. 중국 지도부가 반대하는 인물이 행정장관으로 당선될 경우 중국공산당의 홍콩에 대한 지배력이 크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의 균열은 중국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 중 하나다. 시 주석이 9월 30일 밤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65주년 기념 만찬행사에서 “일국양제(一國兩制 한나라 두 체제)를 부단히 추진하는 것은 국가의 근본이익과 홍콩의 장기적 이익에 들어 맞는다”며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 방침과 홍콩 기본법을 관철하겠다”고 말한 것은 그런 위기감의 발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인대가 발표한 선거안을 놓고 다시 공청회를 열어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는 방안을 전격적으로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어찌 됐든 제2의 톈안먼 사태로 비화되는 파국을 피하면서도 홍콩 시민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하는 상황이다. 


  사태의 해결이 늦어지는 사이 애꿎은 홍콩 경제만 피해를 보고 있다. 시위가 10월 초 일주일간의 국경절 연휴와 겹치면서 홍콩이 해마다 누리던 ‘황금특수’가 실종됐다. 관영 신화통신은 이번 시위로 인한 홍콩의 경제적 손실이 400억 홍콩달러(약 5조 5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시위가 집중된 지역은 대부분 대형 매장이 밀집된 지역이어서 문을 닫은 곳이 속출했다. 문을 열었다 해도 매출은 평소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홍콩 여행업계도 황금연휴 기간 중 홍콩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가 예년보다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정했다. 아직은 금융시장까지 여파가 미치지는 않았지만 사태가 악화될 경우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에도 흠집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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