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구두쇠 정신과 파격, 세계가구제국 만들다
지독한 구두쇠 정신과 파격, 세계가구제국 만들다
  • 조재휘 기자
  • 승인 2014.10.23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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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의 존재이유, 고객들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 안겨주는 것”
[이슈메이커=조재휘 기자]
[Cover Story] 잉그바르 캄프라드 이케아 창업주



지독한 구두쇠 정신과 파격으로 세계 가구 제국을 만들다

“이케아의 존재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안겨주는 것”



오는 12월 광명점을 열면서 국내에 첫발을 내미는 이케아(IKEA). 이케아는 2020년까지 전국에 5개 초대형 매장을 세울 계획이다. 이케아의 공습에 국내 가구업계는 혼비백산하는 분위기다. 세계 42개국에 345개 매장을 두고 있는 이케아는 세계 가구업계에서 ‘가구공룡’으로 불린다. 직원 수만 15만 명으로 1300개 협력업체와 함께 1만여 종의 상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한다. 이케아 상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탈로그는 매년 2억 권이 넘게 발행되고, 성경 다음으로 세계에서 많이 발행되지만 성경보다 더 많이 읽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케아는 지난해 279억 유로(42조6천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 해보다 3.1% 늘었다. 가구와 생활용품을 팔아 현대자동차보다 1조 원이나 더 많은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이케아는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세계로 무대를 넓혔고 세계 곳곳에서 현지 가구시장의 10% 가량을 장악하면서 각지의 토종 가구업체들을 눌렀다. 이런 이케아의 성공 뒤에는 창업주인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있다.




유럽 최고의 갑부…재산규모 빌게이츠 앞지를 수도

  2014년 9월 현재 416억 달러(약 43조1200억원 · 블룸버그 빌리어네어 기준)의 자산을 보유한 대부호이면서 비행기는 이코노미석만 타고, 자가용으로 20년 넘은 구식 볼보만을 고수하는 88세의 깐깐한 구두쇠 할아버지. 바로 파란색 창고형 매장을 앞세워 전 세계를 무대로 ‘가구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이케아의 창업주 잉그바르 캄프라드다.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유럽 최고의 갑부이자 세계 네 번째 부자다. 그는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500대 억만장자 가운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캄프라드가 소유한 재산 외에 재단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을 합치면 실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인 빌 게이츠보다 더 부자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의 투철한 구두쇠 정신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대부호인 만큼 개인 전용기를 한 대 마련할 법도 하지만 그는 이코노미석을 고집한다. 이런 그의 투철한 절약정신 때문에 웃지못할 일도 있었다. ‘올해의 기업인상’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캄프라드가 식장 입구에 들어서자 관계자들이 그를 막아섰다. 방금 막 버스에서 내린 캄프라드가 기업 오너일 거라고 그 누구도 생각 못한 것이다. 호텔에 묵을 때 호텔비에 포함됐다며 메모지와 볼펜 등을 챙겨 나오거나 차를 마실 때도 티백을 꼭 2번 이상 우려 마시는 등 절약에 대한 그의 일화는 끝이 없다.

  그의 자린고비 정신은 이케아 경영방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케아 직원들은 해외출장 시에도 예외 없이 이코노미석과 저렴한 호텔을 이용해야 한다. 캄프라드는 자신이 쓴 책 ‘어느 가구상의 고백’을 통해 “이케아에서 낭비는 죄악”이라고 말하며 직원들에게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때문에 이케아의 모든 임직원 들이 이면지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이념은 이케아의 제품에도 그대로 주입됐다. 그는 이케아에서 파는 가구가 싸다는 데 그치지 않고 헐값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저가전략’이다. 이러한 저가전력은 이케아의 성공에 큰 밑거름이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 이케아가 가구공룡으로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캄프라드는 이케아가 다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케아의 존재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안겨주는 데 있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런 창업주의 생각은 스웨덴의 작은 마을에서 출발한 이케아를 전 세계에 걸친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타고난 장사꾼, 안티 서비스로 세계 점령

  캄프라드는 1926년 스웨덴의 알름훌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1년 중 절반은 눈보라에 휩싸이는 척박한 곳이다. 캄프라드는 어린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했다. 캄프라드는 5세 때 스톡홀름에서 고모의 도움을 받아 성냥 100갑을 사들여 1갑씩 팔며 이익을 남겼다. 당시 그는 기존의 우유 배달체계를 이용해 물건을 파는 수완을 보였다. 2년 후 품목은 더 늘어났다. 크리스마스카드, 장식품, 직접 잡은 물고기까지 온갖 종류의 상품을 팔았다. 11세 때 자전거와 타자기를 살 돈을 벌었다. 캄프라드는 “내 핏속에 장사꾼의 기질이 있었다”며 “용돈벌이 장사를 경험하다 점점 장사에 일종의 집착 같은 것이 생겼다”고 회고했다.

  1943년 그가 17세가 됐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으로 지금의 이케아를 세웠다. 이케아란 이름은 그의 이름 이니셜 I·K와 그가 어린 시절 누볐던 농장 엘름타리드(Elmtaryd), 고향마을 아군나리드(Agunnaryd)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들어졌다. 가구를 팔기 시작한 건 1948년, 지역에서 장인들이 수공예로 만든 가구들을 이케아 매장으로 들여와 판매했다. 높은 판매율에 고무된 캄프라드는 그의 나이 25세 때인 1951년부터 오직 가구와 가정용품 판매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는데, 당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주택 100만 가구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가구 수요가 급팽창했기 때문이다. 캄프라드는 경쟁업체에 맞서기 위해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조립식 가구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만 해도 스웨덴 가정에서 가구는 대를 이어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됐는데 이런 캄프라드의 발상은 시장에 충격을 줬다.

  이케아가 조립식 가구를 선보이게 된 일화가 있다. 1951년 이케아의 한 디자이너가 탁자와 씨름을 벌였다. 차 트렁크에 탁자가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던 것. 그는 결국 네 다리를 떼어낸 채로 차에 실었고 집에 도착해서 탁자를 다시 조립했다. 캄프라드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 플랫 팩(flat pack, 납작한 상자에 부품을 담아 팔고 이를 소비자가 직접 조립하는 가구) 콘셉트의 가구를 팔기 시작했다. 고객이 직접 이케아 창고에서 필요한 가구의 부품을 고르고 그것들을 집으로 가져가 ‘알아서’ 조립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엄밀히 말하면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종의 안티 서비스인 셈이다,

  캄프라드는 1958년 이케아 가구 전용 매장을 처음 열었다. 그는 이곳에서 사회적 통념을 깨는 가구를 내놓았는데, 창고의 수납장을 거실로 가져오고 양동이용 플라스틱으로 의자를 만들었다. 플랫 팩 콘셉트로 이케아는 운송비와 창고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사회주의 국가이던 폴란드로 생산공장을 옮기면서 인건비도 줄일 수 있었다. 캄프라드는 그만큼 제품 가격도 낮췄다. ‘반(反) 서비스적’이지만 ‘최대한 많은 이들이 즐길 수 있게 저렴하게 제공한다’는 신념을 지킨 것이다. 저렴한 이케아 가구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 결과 올해 창립 72주년이 된 이케아는 연간 7억 명이 매장을 찾고, 매출액은 44조원이 넘는(이상 2013년 기준) 세계적인 가구 메이커로 성장했다. 




은퇴 아닌 은퇴 “죽을 시간도 없다”

  캄프라드는 1973년 스웨덴의 세금을 참을 수 없다며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겼다. 당시 캄프라드는 “회사의 이익이 고객에 돌아가지 않는 사회구조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캄프라드는 평소 “돈이 없는 사람들이 대개 이케아의 상품을 산다”며 “그저 싸거나 조금 싼 게 아니라 사람들이 상품을 보자마자 헐값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런 저가전략은 다른 가구업체들을 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케아는 성장하기도 전에 가구업체들의 견제를 받았다. 가구 제조업체들은 이케아에 가구를 납품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케아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로 삼았다. 이케아는 스스로 가구를 디자인하고 팔았다. 캄프라드는 "가구는 단순하고 다루기 쉬워야 한다"는 철학을 확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로 나갔다.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특별한 가구매장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이케아만의 독특한 디자인의 가구는 물론이고 조립식 배송방식에다 식품매장이라는 색깔을 입혔다.

  여기에 캄프라드는 “배고프면 아무도 가구를 사지 않는다”며 가구업계 최초로 매장에서 음식도 제공했다. 이케아 매장을 찾는 고객들은 음식을 든든히 먹고 기본적으로 2시간 동안 거대한 이케아 매장을 둘러보고 더 많은 상품을 샀다.

   캄프라드는 언제나 “우리는 개념(Concept) 기업”이라며 “이케아의 존재이유는 고객들에게 더 나은 일상생활을 안겨주는 데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캄프라드는 스웨덴의 ‘스티브 잡스’ 같은 존재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비판도 끊임없이 나온다. 캄프라드는 이케아의 몸집이 커지자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들었는데 영리단체인 ‘잉카홀딩’과 비영리단체인 ‘스티슈팅 잉카재단’이 동시에 이케아를 지배하는 구조다. 여기에 캄프라드는 ‘인터 이케아 시스템’이라는 회사를 통해 세계 매장에서 벌어들이는 판매대금의 3%를 로얄티로 받는다. 그런데 이 회사는 또 다른 캄프라드의 재단인 ‘인터로고재단’이 지배한다. 이 재단은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탈세왕국’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케아가 저가전략을 유지하기 위해 제3세계 아동노동을 착취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스웨덴의 한 방송사는 1994년 파키스탄 아이들이 저임금을 받고 이케아의 양탄자를 짜는 장면을 방영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이케아는 아이들을 의무적으로 학교에 보내는 조건으로 납품업체와 계약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1994년, 그가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을 때 “깊이 반성한다”고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그때 캄프라드는 오너가 아닌 여러 직원들 중 한 명으로서 이케아 내 유대인 ‘동료’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캄프라드는 이미 1986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긴 바 있다. 그럼에도 고문으로서 이케아 경영 전반에 절약과 혁신 정신을 불어 넣으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찾아간 이케아 박물관 곳곳에는 캄프라드가 즐겨 말했다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Most things remain to be done. Glorious future!)’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죽을 시간도 없다’는 그는 은퇴를 죽음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언가를 끝낸다는 것은 수면제를 복용하는 것과 같다. 은퇴한 사람은 빠르게 시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목표를 성취했다고 자부하는 회사는 그때부터 빠르게 생명력을 잃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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