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의 잣대… 친근함의 표현인가, 성적 모욕인가?
성희롱의 잣대… 친근함의 표현인가, 성적 모욕인가?
  • 경준혁 기자
  • 승인 2014.10.23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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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이라는 자각 없이 저지르는 폭력이 피해자 양산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Sexual Problem] 성희롱의 잣대




친근함의 표현인가, 성적 모욕인가?


성희롱이라는 자각 없이 저지르는 폭력이 피해자 양산




최근 한 구인구직 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고, 특히 여성은 절반 이상이 경험했다고 한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느끼는 성추행의 사례들이 ‘음담패설 및 성적인 농담’, ‘외모, 몸매 비하 발언’, ‘노골적인 시선’ 등 가해자들이 일상적으로 쉽게 저지르곤 하는 행위들이었다는 점이다. 





세상이 삭막해 졌다?


  지난 8월 22일, 충주경찰서는 윤범로 시의회 의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윤 의장은 지난 8월 2일, 국제 우호교류 행사 환영 만찬에서 함께 앉아 있던 여성 공무원의 옷차림을 지적하면서 성희롱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충주시공무원노조, 충주시민연대, 충주여성단체협의회 등은 윤 의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최근 왕성한 방송활동을 벌이던 강용석 전 의원은 과거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했던 성희롱 발언으로 징역 2년을 구형받았다. 강용석 전 의원은 2010년 국회의장배 전국대학생토론회 뒤풀이 자리에서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며 여성 아나운서를 모욕하는 성희롱 발언을 한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


  이들 사건에서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문제 삼는 것은 발언 자체의 ‘수위’가 아니다. 그런 발언을 스스럼없이 사석에서 꺼내곤 하는 공직자의 ‘윤리 의식’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과거 ‘성희롱’ 혹은 ‘성추행’으로 분류되는 사건들은 대게 ‘과도한 신체접촉’이나 ‘강제적인 스킨십’의 상황을 동반했다. 그러나 최근 고발되는 성추행 사건들은 ‘피해자가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이나 발언’의 경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한 유명일간지의 논설위원은 “한때는 익살스런 얘기 잘하고 진한 농담 잘하는 사람들이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준이 달라지고 시대가 바뀐 것 같다. 함께 웃으며 주고받은 농담가지고 이럴 수 있느냐”라며 제 무덤 파지 않으려면 말조심에 신경서야 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또한 한 블로거는 “이 같은 농담들을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은 풍자로 보지 않고 난잡한 성적 윤리의 표출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여론이 풍자에 대해 너그럽지 못하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사회는 성적인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은 ‘성 담론’이 개방적이고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의미이지 무조건적인 ‘이해’와 ‘아량’을 베풀라는 의미는 아니다. 특히 성희롱 사례의 경우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 앞선 조사 결과에서 성희롱 및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의 대응 방법은 ‘그냥 참고 넘어갔다’가 절반 이상인 60%나 된다. 그 이유로는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 같아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다들 참고 지내는 것 같아서’ 등이 꼽혔다. 한 시민단체 회원은 “이해와 아량은 상호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지 보다 높고 강한 사람이 낮고 힘없는 사람에게 행하라고 강요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강자가 약자에게 행하는 폭력


  성희롱 문제의 경우 특정 계층에 국한되어 적용되어야 할 것은 아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잇따르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성적 윤리의 해이’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은 공공장소에서 음란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8월 13일 경 제주시 중앙로 인근 한 음식점 앞에서 바지 지퍼를 내리고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된 김 전 지검장은 혐의를 일체 부인했지만, 경찰 조사 당시 신분을 속이고 허위 진술한 점과 이후 CCTV 공개로 혐의를 벗긴 어려울 듯 보인다. 


  지난해 5월에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방미 수행시 주미 대사관 여성 인턴을 성추행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윤 전 대변인은 “허리를 툭 쳤을 뿐”이라며 해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사건 이후 대변인직에서 사퇴해 현재까지 칩거 중이다. 김형태 전 의원은 ‘제수 성폭행 미수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의원의 제수 A씨는 “남편과 사별 후 두 아들의 장학금 문제를 의논하자며 오피스텔로 부른 뒤 성폭행 시도를 했다”고 폭로했다. 일부 의원들은 국회 회의장에서 음란물을 감상한 의혹에 휩싸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의원뿐만 아니라 한 부장검사는 술자리에서 사법연수원생에게 “블루스를 추자”며 몸을 끌어안는 등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법무연수원 교수로 재직 중인 또 다른 부장검사는 저녁회식에 동석한 여성검사에게 “뽀뽀하자”고 요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물의를 빚었다. 


  앞선 연구결과에서 언급했듯 이러한 성희롱, 성추행은 대게 자신의 권력을 악용해 ‘저항할 수 없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상사가 부하들을 상대로, 교수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의사나 목사들이 환자나 교인들을 상대로, 혹은 장애시설의 장이 심신이 약한 원생들을 향해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들 가해자들은 ‘자신에게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 성범죄를 일삼고 있으며, 또한 자신이 이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지위에 있음을 정확히 자각하고 있다. 실제로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 이외에도 수많은 성희롱, 성추행 사례들이 피해 당사자의 두려움 때문에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울타리 안에서의 표현의 자유


  친근함의 표현이자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농담’이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 성폭행이나 성추행과 동일시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일부의 주장은 일견 정당하게 들린다. 폭 넓은 표현의 자유를 가진 나라 미국에서는 성차별적인 것을 비롯해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적인 농담들까지 스탠딩 코미디언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중된 수용에서 비롯된 잘못이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다니엘 토쉬(Daniel Tosh)는 한 토크쇼에서 “강간 농담은 절대 웃기지 않다”라는 여성 관객의 항의를 받고 “지금 저 여자가 여기서 강간당한다면 정말 웃기지 않나?”라고 응대했다. 그에게 강간농담은 즐겨 사용하는 유머소재였으며 크리스 락(Chris Rock)이나 댄 쿡(Dane Cook)같은 유명 코미디언들도 “검열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를 옹호했다. 하지만 여론의 뭇매에 토쉬는 결국 잔인한 성적농담을 가했더 그 여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영국의 정치학자 칼렙 용(Caleb Yong)은 “자유주의가 표방하는 ‘표현의 자유’는 ‘내가 싫어하는 다른 의견을 법의 이름으로 억압하지 말자’는 정신에 있지, ‘혐오를 자유롭게 표현해도 좋다’를 보장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회학자들은 ‘표현의 자유는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하며, 이는 적절한 장치를 통해 규제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미국의 한 교육학자 그룹은 놀이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을 체계적으로 관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개방형 놀이터의 아이들은 중앙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반면에, 울타리가 있는 놀이터에서는 공간을 훨씬 넓게 쓰더라는 것이다. 경계선이 뚜렷해지면 허락된 공간에서 더 큰 자유를 즐길 수 있다는, 이른바 ‘울타리의 역설’이론이다. 





명확한 잣대와 엄격한 처벌이 필요


  현대 사회에서의 성희롱 문제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성상담전문가들은 “가해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 문제로 상담을 해오는 피해자들의 경우 ‘해결할 방법이 없다’, ‘내가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라는 고민을 호소해 온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월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한 피해자와 그를 도와준 동료가 사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회사 측은 성희롱 가해자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렸다’고 밝혔으나 이후 피해자와 사실을 증언한 동료에게 근태불량을 이유로 정직 처분과 대기발령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상담전문가들은 이 밖에도 많은 수의 피해자들이 성희롱 고발 이후 부당한 대우나 왕따 등의 2차 피해를 입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의 성희롱 처벌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한다. 고용노동부의 성희롱 판단기준 예시에 의하면, ‘입맞춤, 포옹, 뒤에서 껴안기, 가슴·엉덩이 등의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 같은 기준은 오히려 성희롱을 경시하는 잘못된 사회풍조를 조장하고 있다. 안준성 변호사는 “현재 육체적 성희롱은 단순추행으로 간주되어 처벌이 어렵다. 형법상 처벌이 가능한 강제추행과 준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의 상황,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황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피해자의 약자적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입증을 요구하거나, 미온한 처벌로 이후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미국의 경우 성희롱을 강력히 처벌하고 있으며, 단계별로 별도의 형사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지난 4월, 국회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이 없는 ‘언어적 성희롱’ 처벌에 대한 법률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간 언어적 성희롱은 근거 규명이 힘들고, 그 피해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적인 테두리 밖에 있어왔다. 여성 및 시민단체들은 이 같은 문제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으나, 일부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한쪽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게 될 여지가 많아 법적 형평성을 무너뜨리고 ‘지나치게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모욕감과 피해를 주는 성희롱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조직문화를 오염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처벌받아야 할 범죄이다. 하지만 처벌만을 강요하기 이전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충분한 교육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확한 잣대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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