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힘 ‘수학’
세상을 바꾸는 힘 ‘수학’
  • 안수정 기자
  • 승인 2014.09.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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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 개발과 혁신·산업계 문제, 수학에서 답 찾다
[이슈메이커=안수정 기자]

[Mathematics] 수학의 가치 




세상을 바꾸는 힘 ‘수학’


신기술 개발과 혁신·산업계 문제, 수학에서 답 찾다




▲전문가들은 8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세계수학자대회(ICM)를 통해 우리나라 수학문화가 한 층 성숙해지기를 기대한다. ⓒICM 조직위원회




2014년은 ‘한국 수학의 해’와 동시에 서울에서 ‘국제수학자대회(ICM 2014)’가 개최된다. 수학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그 어느 해보다 수학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높은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이 수학이다. 수학을 대학 입학의 도구로 여기는 이들은 많아도 신기술 개발과 혁신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으로만 여겨지던 수학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산업·금융계와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미분·적분도 신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핵심 도구로 쓰인다. 여기에 해커로부터 정보를 지키는 정보보호 등 산업의 발달로 새롭게 대두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수학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수학이 만들어낸 ‘토이 스토리’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창조 경영의 아이콘’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Pixar)가 큰 역할을 했다. 1986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잡스는 픽사를 인수했고, 1995년 세계 최초의 장편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로 대히트를 치면서 그의 성공 가도에 날개를 달아줬다. 그가 1997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로 복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라는 ‘3총사’를 앞세워 모바일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었던 이면에는 ‘토이 스토리’의 대성공이 있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얼핏 보기엔 애니메이션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수학자들을 대거 고용했다. 이전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같은 그림이라도 크기에 따라 일일이 새로 그려야 했다. 작은 그림을 그냥 확대하면 해상도가 떨어져 중간 중간 선(線)이 끊어지거나 울퉁불퉁하게 보이는 ‘계단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에 잡스가 고용한 수학자들은 전통적 기법 대신 수학에 기반한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해 같은 그림을 여러 번 그리지 않고도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해냈다. 수학자들은 먼저 기하학을 이용해 작가들이 그린 작은 그림을 수식으로 변환했다. 다음엔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이 천체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개발한 미분(微分) 공식을 사용했다. 미분은 변화량을 예측하는 수학이다. 그림을 묘사한 수식을 미분하면 인물이나 배경 그림을 확대하더라도 선이 끊어진 부분이 어떻게 이어질지 정확히 예측해 계단 현상이 없는 선명한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수학 공식만으로 하나의 그림을 자동으로 늘리거나 줄여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덕분에 제작 기간이나 투자비를 훨씬 줄이면서도 생생한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이 가능해졌다.


  잡스가 개척한 수학 중시 전통은 나중에 픽사를 인수한 디즈니에도 이어졌다. 디즈니가 만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엄청난 파도가 배를 덮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장면이다. 스탠퍼드대의 응용수학자인 론 페드큐 교수는 공기나 물 같은 유체(流體)의 운동을 분석하는 수학 공식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을 컴퓨터 그래픽에 적용, 파도가 치고 수백만 개의 물방울이 튀는 장면을 정밀하게 묘사해냈다. 페드큐 교수는 이 성과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기도 했다.



▲수학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산업·금융계와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미분·적분도 디지털 애니매이션 그래픽 개발이나 신제품 개발에 핵심 도구로 쓰이고 있다. ⓒ‘토이스토리1’ 공식 포스터





구글 인터넷 검색·LTE 성공스토리에 숨어있는 수학적 원리


  세계 최대의 인터넷 회사인 구글도 출발점은 수학이었다. 구글의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서 응용수학을 전공했다. 브린은 같은 대학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던 친구 래리 페이지와 함께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해 정교한 검색 엔진을 개발해냈다. 브린이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하는 일련의 절차를 수식으로 만들면 페이지가 이를 하나하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변환했다. 검색어가 들어간 자료 가운데 다른 자료에서 링크를 얼마나 했는지를 수학 연산 조건으로 일일이 따진 다음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사용자가 원하는 최적의 결과를 제공할 수 있었다. 구글 검색이 정확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두 사람은 공동 창업했고,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초고속 무선인터넷 시대를 연 LTE(4세대 이동통신)에도 수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복잡한 파동(波動)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푸리에 변환’ 공식을 활용한 기술이다. 이를 통해 다량의 음성과 데이터를 신속하게 보내면서도 인접한 주파수들이 서로 간섭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마리아 에스테반 프랑스 국립과학원 응용수학연구소장은 “수학이 다양한 산업에 이용되면서 이제 순수수학과 응용수학의 구분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수학은 기초학문에서 벗어나 경제 전반에서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박형주 포스텍 교수(수학)는 “서울세계수학자대회를 계기로 수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산업에도 더 많이 활용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수학 활용하니 판매는 ‘Up’ 재고는 ‘Down’


  기업의 생산 현장이나 시스템에도 수학적 기법을 적용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한국에선 아직 걸음마 단계여서 실제 사례가 아주 흔한 것은 아니지만, 해외 기업의 경우엔 수학을 현장에 적용하는 경우가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기업들이 효율적인 경영에 있어 수학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웅진케미칼 마이크로필터(MF) 사업부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생산품종을 확대했다. 제품 다각화로 인해 작년 전체 생산량은 61%나 증가했지만, 주문을 냈다가 취소하는 고객들로 인해 재고도 동시에 늘었다. 골치를 썩이던 웅진케미칼은 이를 수학적 기법으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하는 애널리틱스(analytics) 전문가들을 찾았다. 이들은 데이터와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문제를 푼다. 딜로이트 애널리틱스와 KAIST 연구진은 웅진케미칼이 준 숙제를 풀기 위해 ‘정수 혼합 계획법’으로 이뤄진 수학적 최적화 방식을 개발했다. 영업에서 받은 주문 정보를 바탕으로 납기일 내 생산이 완료될 수 있도록 어떤 장비가 어느 날 어떤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지 산출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방법을 적용하니 과거 수작업으로 5시간 이상 걸리던 작업을 몇 분 안으로 단축할 수 있었고, 실시간 영업 및 제조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에 웅진케미칼 관계자는 “의사결정 시스템을 현장에 적용해 두 달 정도 가동한 결과 눈에 띄게 재고가 줄고 고객 제품 납기율은 100%에 육박했다”며 “공장에서 장비를 추가로 구매하거나 다른 투자를 늘리지 않고도 이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혁신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SPA 브랜드 자라도 수학적 최적화 기법을 적용한 의류관리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자라는 계절마다 1만 1,000여종의 상품을 생산하는데, 이 시스템은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를 파악하고 어느 매장에 어느 정도의 수량을 공급해야 하는지를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결정해준다. 


  그런가하면 인터넷 쇼핑시 신용카드 결제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활용되는 RSA 암호는 수의 구성원소인 ‘소수’의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RSA는 당초 숫자가 커질수록 소인수분해를 하기 어렵다는 점을 활용해 만들어졌다. 대부분의 전자상거래는 신용카드 결제 시 RSA 암호를 이용해 해킹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수학적 기법이 적용되면서 글로벌 컨설팅 기업들은 수학 및 기초과학자들을 영입하고 있다. IBM은 최근 비즈니스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는데, 새롭게 구성한 비즈니스 컨설팅 그룹 구성원을 수학자와 기초과학자들로 제한했다. 과거에는 경영 문제를 조직과 리더십의 문제로 제한했지만 이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빅데이터 이슈를 비롯해 수학적 기법을 활용할 곳은 무궁무진하다”며 “국내기업들은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수학적 기법을 어디에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수학 전공자, 최근 몇 년 새 금융·산업계 진출 늘어


  보험 증권 등 금융사는 물론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소비자 성향을 분석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수학과 전공자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수학과 졸업생들의 금융·산업계 진출이 늘고 있는가 하면 대학 수학과 입학 성적은 의예과와 더불어 ‘톱2’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과거 ‘수학 전공해봐야 사회에서 쓸모없다’는 인식을 깨끗이 불식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고용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의 2010년도 수학과 졸업생 진로조사에 따르면 수학과와 수학교육과 등 수학 관련 학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73.81%에 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대학 강사(25%)나 초·중·고교 교사(29%) 였지만, 기업 회계·총무과를 비롯한 사무직이 20%, 보험·자산운용·증권사 등에 진출한 금융업 종사자도 10.5%에 달했다. 이는 수학 전공자들이 대학교수나 교사 등 수학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에 취업했던 데서 벗어나 사회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박종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요즘 들어 학과사무실로 수학과 학생들을 채용하겠다는 기업 관계자들의 전화가 많이 걸려온다”며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더 많긴 하지만 업계 진출이 늘고 있는 건 분명하다”고 말했다. 


  수학과 인기가 높아진 이유는 수학을 전공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다양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박형주 포항공대 수학과 주임교수는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해서 손해인 경우는 많지 않다”며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이나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할 경우에도 수학전공자가 도움이 되면 됐지 불리하진 않다”고 설명했다. 





8월 13일 세계수학자대회 개막,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발표


  수학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면서 8월 13~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수학 천재 5,000명 이상이 한국에 집결한다. 4년마다 세계 각국을 돌아가며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는 전 세계 수학자들이 다음 세기에 풀릴 만한 수학 난제를 발표하고 수학 연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행사다. 189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된 이래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일본(1990년), 중국(2002년), 인도(2010년)에 이어 네 번째다. 개막 첫날에는 40세 미만의 뛰어난 수학자에게 주는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1936년부터 2010년까지 52명이 이 상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첫 수상자를 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필즈상은 개최국 국가원수가 직접 수상자에게 메달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2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수여했다. 


  금번 대회는 수학자만의 행사가 아닌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행사도 열린다. 박형주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포스텍 교수)는 “교사, 학생과 일반인도 수학의 새로운 면모를 경험하고 수학 문화를 향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직위원회가 내세우는 가장 두드러진 대중 강연은 미국 하버드대학 수학과 교수 출신의 펀드매니저이자 사이먼스재단 위원장인 제임스 사이먼스(James Simons, 사진)가 ‘자신의 삶과 수학 이야기’를 전할 강연이다. 해당 강연은 8월 13일 서울 코엑스 홀에서 저녁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5,000명 청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전문가들은 세계수학자대회를 수학자들만의 잔치로만 끝내지 말고 우리나라의 수학문화 수준을 한껏 높이는 계기로 삼는데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은 “수학자들은 항상 협력을 통해서 새로운 도약과 진보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세계수학자대회를 통해 우리나라 수학이 한 단계 발전하고 수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더 높아지며 수학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박형주 조직위원장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면서 우리 젊은 세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선수들과 직접 경기를 치른, 또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본 젊은 선수들은 두려울 게 없어졌죠. 막연한 ‘세계의 벽’이라는 게 사라진 겁니다. 경기를 지켜본 국민들이 축구를 이해하는 수준도 높아졌습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수학자대회를 통해 수학계에 대한 국민의 눈높이를 높이고, 젊은 수학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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