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인간관계마저 ‘포기’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인간관계마저 ‘포기’
  • 김진영 기자
  • 승인 2014.08.25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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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리 잃은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
[이슈메이커=김진영 기자]

[Social Unrest] ‘4포 세대’ 청년불안 가중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인간관계마저 ‘포기’


설자리 잃은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에 하나가 더 보태졌다. 이제 청년세대는 인간관계마저 포기하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취업률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취업관문은 갈수록 바늘구멍이다.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4포 세대’라는 신조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다. 

 




88만원 세대에서 ‘4포 세대’까지


  2007년 경제학자인 우석훈 박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를 ‘88만원 세대’로 규정하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화두에 올렸으나,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나는 아니겠지’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4년간 비싼 등록금을 들여가며 수학한 만큼 적어도 통계치가 말하는 대졸자의 평균 초봉(2007년 대기업 기준 3,218만원)은 받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담했다. 취업 자체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려워진 까닭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9세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0년 전인 2004년 66.3%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해 2013년 61.6%까지 떨어졌다. 매년 10만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경제활동 인구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20대 후반에 비해 20대 초반의 수치의 감소세가 두드러지는 점에 비춰볼 때 해가 갈수록 취업을 준비하는 기간, 즉 ‘스펙쌓기’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음이 확인된다. 2007년 20대 실업률 7.1%에서 2013년 7.9%로 소폭 상승했으나 통계상 유의미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점은 취업을 아예 포기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일명 ‘취준생’이 실업자 통계에 포함하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취업일선에서 밀려난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통계치는 더욱 높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반적인 견해다. 


▲20대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4년 66.3%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해 2013년 61.6%까지 떨어졌다. 매년 10만명에 가까운 젊은이들이 일할 곳을 찾지 못하고 경제활동 인구에서 탈락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사진은 청년실업네트워크의 일자리 촉구 기자회견 모습.



  비단 취업의 문턱만 좁아진 것은 아니다. ‘88만원 세대’에서 저자는 “지금의 20대는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곧 비정규직이 될 운명 앞에 서 있다. 8백만 명을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평균은 119만원이며, 전체 임금에서 20대가 평균적으로 받는 비율을 적용하면 88만원이 된다”며 비정규직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14년 대한민국은 이 같은 우려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2013년 8월 기준으로 20대 비정규직 근로자는 103만1000명에 달하며, 대졸 이상 학력의 비정규직 수도 188만9000명으로 지난 2004년 147만5000명에 비해 41만4000명이나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고용시장의 일선에서 밀려난 젊은 세대는 이어 ‘포기’ 세대로 규정됐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의미의 ‘3포 세대’라는 신조어가 처음 나온 때는 2011년이며, 여기에 ‘인간관계’를 포함한 ‘4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해가 지날수록 포기의 항목은 하나씩 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젊은 세대의 불안심리는 깊어만 갈 뿐 해소의 여지는 보이지 않는 암흑 같은 터널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에 내려진 ‘썩은 동아줄’


  젊은 세대의 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높은 교육열에 기인한 ‘길어진 가방끈’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고교 한 반을 통틀어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학생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80% 가까운 진학률을 보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양질의 고용시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졸자 간의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는 양상이라는 분석이다. 또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그러하듯 저성장과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들의 신규채용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3년 기준 15~29세 청년층 비경제활동인구(541만7000명)중 취업시험 준비자는 11.3%(61만4000명)인데 공무원, 교원, 공영기업체, 언론사 등을 준비하는 비중이 45.4%에 이른다.



  하지만 취업문제는 청년 불안의 단편일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이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도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없는 만연된 박탈감에서 비롯된다. 경제적 부흥기를 누린 과거에 비해 성공의 기회는 갈수록 줄어만 들고 시장, 교육 등 계층이동을 위한 희망사다리는 부재하다. 가난은 대물림되며 학자금 대출로 인해 취업 전부터 신용불량자가 되지만 임금은 생활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 학벌지상주의와 무한경쟁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성장기를 보냈지만 서울에 집 한 칸이라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20년을 꼬박 모아야 하는 암담함이 어깨를 짓누른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고령화 사회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복지제도의 혜택보다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관심도 없는 한국사회의 ‘미운오리새끼’로 전락해버렸다는 자조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난해 출간된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저자 한윤형 칼럼니스트는 청년들 스스로 ‘잉여’와 ‘루저’로 규정하는 세태에 대해 “오늘날의 잉여 인간들은 ‘학벌 사회’의 잉여 인간들이다. 오늘날의 루저 문화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빠져드는 정서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그래서 경쟁에서도 승리를 거뒀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날에 희망이 없는 그런 열패자들이다”라고 언급하며 “학벌 사회의 승자이면서 잉여 인간이 된 것이다”라고 서술한다. 또한 “청년 세대의 문제는 그들이 가장 힘든 세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한국의 사회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표층(表層)이기에 문제가 된다. 등록금 문제와 실업 문제는 그들만이 아니라 그들 부모 세대의 고난이다”라고 규정했다.  

 




반값등록금만 7년째…정치권에 20대는 ‘풍선껌’ 


  지난해 말 대학가를 점령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잉여’와 ‘포기’에 익숙한 청년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공통된 메시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대학생들이 선봉에 나서 대업을 이뤄낸데 반해 오늘날 청년들은 스펙쌓기에 내몰려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을 보여 ‘20대 개새끼론’까지 나온 상황에 뜻밖의 움직임이었다. 


  고려대 주진우 학생이 시작한 대자보 열풍은 서울,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상아탑으로 물결을 이어나갔다. 스마트폰과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손글씨를 적어야 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화답했다는 점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집단의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이를 타인과 공감하며 확산됐다는 점에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일제히 대자보 현상을 주목했다. 지난 1월 국회에서는 야당 주최로 당사자인 대학생과 야당 정치인, 시사평론가 등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회를 갖기도 했다. 청년들이 진단한 대자보 열풍의 근원은 ‘답답함’이었으며 이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자 하나의 분출현상으로 대자보의 가치를 재확인했다. 또한 일회성에 머물 것이 아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발전적인 형태로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의 외침에 많은 이들이 화답했지만 결국 대자보 열풍은 문제의식과 표출단계에서 머물렀을 뿐 세대결집을 이루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발제자로 참석한 경희대 홍성용 씨는 “대학생들이 정당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또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무관심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안철수 후보 당시에 그렇게 큰 지지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청년들이 기성정치와 제도권 현상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신섬함을 느꼈던 것”이라며 “정당의 역할이 그런 의견들을 모으는 것인데 그런 역할을 전혀 못해주고 있다. 철도 민영화 당시에도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노조가 아닌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득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정당이 제 기억엔 없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대자보가 일종의 목소리 단계라면 그 안에 담긴 불만이나 불편한 마음들을 사회적 성과로 만드는 것은 정치권의 역량이며, 정치라는 시스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두문정치연구소 이철희 소장은 “기반을 가지고 결사체를 만들어내는 노력은 필요하지만 정치적으로 오해받는 걸 꺼리는 문화 자체에 함몰되면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며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문제가 커지고 목소리가 커질 때 정치쟁점화 되면서 정치적 모색에 들어간다. 스스로가 자주적으로 자기 문제에 대해 구성원들끼리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주적 움직임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청년이 주가 되는 정치 결사체의 구성과 정치 참여에의 필요성을 연관 짓기도 했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권에서는 표심잡기 공약을 쏟아낸다. 하지만 선거용 반짝 캐치프레이즈일 뿐 당선 이후에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공(空)약이 되곤 한다. 청년층의 불안을 해소하고 계층 이동의 희망사다리를 재건하기 위한 정치권의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일자리 창출과 반값등록금 등이 있다. 이 중 반값등록금의 경우 2007년 대선 공약으로 내걸려 전국적인 논제로 떠올랐지만 이후 7년 동안 등록금 인상안만 동결되는 수준에 그치는 등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선거 때만 유권자 대접을 받는 청년층이, 단물만 씹고 버리는 정치권의 ‘풍선껌’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한 청년의 외침에 많은 이들이 화답했지만 결국 대자보 열풍은 문제의식과 표출단계에서 머물렀을 뿐 세대결집을 이루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를 보였다. 정치권이나 사회도 지켜보기만 할 뿐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응답하지는 않았다. ‘4포 세대’라는 신조어로 상징되는 청년 불안 현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리학적 문제와 다르지 않다. 결국 미래를 짊어질 청년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바라봐야 하며 이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의식으로  담론이 모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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