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통신의 발달
[이슈메이커=경준혁 기자]
[로그人 I - 소통(Communication)] 통신, 그 소통의 역사
유선에서 무선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소통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통신의 발달
만일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대개의 언어학자들은 인간만이 언어다운 언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새에게 날개가 있듯이, 물고기에게 지느러미가 있듯이, 인간에겐 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이 언어만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절대적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류의 발생과 함께 시작된 통신
동물의 의사소통 행위를 연구한 학자들에 의하면 어류는 약 10~15, 조류는 15~25, 포유동물은 20~40가지의 신호를 쓴다고 한다. 인간의 언어는 적어도 수만에서 수십만 단어가 있으니 동물의 언어가 가진 단어 수는 우선 양적인 면에서도 인간의 그것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언어가 단지 ‘대면(對面)’ 관계에 그쳤다면 현재 인류의 문명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를 형성하고 생활해나가면서 인간은 ‘언어’를 좀 더 먼 곳까지 전달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멀리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은 타인을 통하거나 빛, 연기, 소리 등의 수단을 사용하게 된다. 서부극에 나오는 인디언의 횃불 신호 혹은 아프리카 토인의 탐탐(길쭉한 북)이 그 한 예이다.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던 와중에 탄생한 ‘문자’는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이끈다. 문자를 통해 인류는 멀리 떨어진 이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죽은 뒤의 후대에도 말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자가 발명됨에 따라 통신은 발전되어 석반, 금속판, 목판, 동물의 가죽에 문자를 조각하여 그 내용을 전하게 되었다. 조직적인 통신제도가 역사적으로 등장한 것은 페르시아 시대 키루스왕에서 다리우스왕에 이르는 3대 동안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를 위해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한 역제(驛制)다. 일정거리마다 사람이나 말을 두어 언어를 전달하도록 했던 이 제도는 이후 로마 제국에 계승되어 퍼져나간다. 하지만 그 속도는 1시간당 고작 15km에 불과했다. 그 후 12세기 유럽의 주요지에 소재한 대학의 유학생과 그들의 고향인 유럽의 각지를 연결하기 위한 서간의 전달, 남부 독일의 슈바벤을 중심으로 한 정육업자의 통신, 1484년 스트라스부르를 중심으로 생겨난 은문갑을 사용한 통신 등이 존재했다.
▲클로드 샤프가 고안한 세마포어는 현재 군부대의 수기신호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
1790년 프랑스 혁명이 한창 중일 때에 클로드 샤프(Claude Chappe)는 되도록 단시간 내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의 개발에 착수했다. 이것은 탑의 지붕에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에 수평의 가로 막대를 붙이고 그 양쪽 끝에다 가동성 있는 짧은 막대를 단 것으로 탑의 내부에서 로프로 그 막대의 각도를 바꿀 수 있었다. 세마포어(Semaphore)라 불리던 이 장치는 현대적인 통신의 시초가 된다. 이 탑은 10km 내지 12km마다 설치되어 병사가 망원경으로 이웃 탑의 막대 모양을 보고 차례로 같은 부호를 다음 탑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1794년 파리와 릴 간에 설치된 세마포어의 처음 메시지는 프랑스군의 케즈노 탈환을 정부에 알리는 것이었다. 영국·네덜란드·프로이센의 대군에 포위된 프랑스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군에게 세마포어를 이용한 정보의 전달수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타이타닉 호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린 전신
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의사를 소통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미국의 화가였던 모스(Samuel Morse)는 프랑스 여행으로부터 귀국하는 도중, 대서양 정기 여객선에 때마침 함께 타고 있던 학자로부터 전기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어떤 영감을 얻게 되었다. 그는 뉴욕에 돌아오자 곧바로 베일(Alfred Vail)과 협력, 점과 봉선의 배열로 문자와 숫자를 표시하고 이것을 송신해서 전자석으로 펜을 움직여 기록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것이 모스 부호이다. 1845년 1월에 워싱턴과 볼티모어 사이에 전신회선을 만들어서 최초의 모스 부호 실험을 했다. 이때 송신된 말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What hath God Wrought)”이었다. 이 모스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통신의 역사는 비로소 전기통신의 시대로 들어섰다.
무선통신의 개념은 1893년 N.테슬라가 발명했다. 이후 1895년 이탈리아의 과학자 M.마르코니(Guglielmo M. Marconi)가 독일의 H.헤르츠가 발견한 전자기파와 프랑스의 E.브랑리가 발명한 검파기에 자기가 고안한 안테나와 어스를 결합하여 전파에 의한 통신방법을 사용해 무선통신에 성공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그 실용성에 주목한 각국은 앞을 다투어 무선 통신에 대한 연구와 실용화에 열을 올렸다. 특히 영국은 1896년에 마르코니 무선전신회사를 설치해 해상의 선박국과 육상국 사이 또는 선박국 상호 간의 교신을 시작했다. 장거리 무선 통신은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영국이 본국과 곳곳의 식민지를 결합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무선 전신의 가치가 날로 치솟자 1900년경에는 수많은 아마추어 무선통신 집단이 출현했고, 그들은 수신기의 성능과 안테나의 특성을 개량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된다. 특히 1912년에 발생한 타이타닉 호 침몰 사고가 무선전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되는 것을 계기로 무선전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급속히 확산됐다.
▲무선통신의 아버지 M.마르코니 |